칼빈

존 칼빈, 기독교 강요, 1권5장,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우주와 사람의 창조에서 드러남

강대식 2014. 8. 18. 22:50

5장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우주의 창조와 그 지속적인 운행에서 분명히 드러남

 

하나님의 영광의 증표가 세상 만물에 분명히 새겨져 있음

 

복된 삶의 최종적인 목표가 하나님을 아는 데 있으므로, 하나님은 아무도 복을 접하는 데에서 제외되지 않도록 하시기 위하여 종교의 씨앗을 우리 마음속에 심어 놓으셨을 뿐 아니라, 우주의 구조 전체 속에 자기 자신을 드러내셨고, 또한 날마다 자신을 드러내시기를 기뻐하셨다.

 

주께서 옷을 입음 같이 빛을 입으셨다”(104:2). 이 말씀은 뜻은 주께서 자기의 의복의 광채 속에서 자기 자신을 보이기 시작하셨고, 우주 만물 속에서 그의 영광의 표지를 드러내어 보이셨으므로, 언제든 우리의 시선이 가는 곳마다 그것들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우주를 가리켜 보이지 않는 것들이 나타난 것이라고 멋지게 묘사하는 것이다(11:3). , 우주의 그 세련된 구조가 일종의 거울의 역할을 하여,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을 그 속에서 바라보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1:19-20).

 

하늘과 땅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지혜의 증거

 

하늘과 땅에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를 선포하는 무수한 증거들이 있다. 천문학이나 의학 등 모든 자연 과학을 통해서 면밀하게 탐구해야만 알 수 있는 다소 심오한 증거들 뿐 아니라, 전혀 교육을 받지 않은 무식한 사람들도 보기만 하면 곧바로 알 수 있는 그런 증거들이 무수히 널려 있어서, 눈을 뜰 때마다 그것들을 증언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게 무수하면서도 분명한 질서를 갖추고 있는 천체들 속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인간의 몸의 구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몸은 그 균형과 아름다움, 그 용도 등, 과연 그 지으신 이의 탁월하신 지혜를 선포하기에 충족하리 만큼 독창적인 구조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지혜의 탁월한 증거임

 

철학자들은 오래 전에 사람을 가리켜 소우주라고 매우 적절하게 표현하기도 했다.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의 권능과 선하심과 지혜를 드러내는 희귀한 실례요, 우리의 정신을 쏟기에 충족한 기적들이 그 속에 담겨 있다.

 

다윗은 인류가 창조주의 솜씨의 명확한 거울임을 선언할 뿐만 아니라 아직 어미의 젖을 먹는 어린 아기들까지도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할 훌륭한 혀를 갖고 있음을 선언하고 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나이까?”(8:4). “어린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으로 권능을 세우심이여”(8:2). 바울도 우리가 하나님의 소생이라는 아라투스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17:28).

 

인간의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

 

시편 기자는 구원의 소망이 없이 거의 잃어버린 바 된 상태에 있는 불쌍한 자들을 그 절박한 처지에서 갑자기 놀랍게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거론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사막을 헤매는 자들을 맹수들에게서 보호하시고 결국 바른 길로 인도하시며(107:4-7), 핍절하여 굶주리는 사람들에게 양식을 공급하시며(9), 감옥에 갇힌 자들을 그 처참한 감옥과 쇠사슬에서 자유케 하시며(10-16), 바다에서 파선을 당한 자들을 구원하셔서 포구로 안전하게 돌아오도록 하시며(23-30), 거의 죽은 자들을 질병에서 고쳐주시고(17-20), 열기와 메마름으로 땅을 태우시고, 혹은 은밀한 가운데 은혜로 물을 주셔서 땅을 비옥하게 하시며(33-38), 비천한 자들을 높이시고 높은 자들을 그 높은 위엄의 자리에서 내어 던지신다(39-40)는 사실을 말씀한다. 사람의 생각에는 우연히 일어나는 것으로 여겨지는 그런 갖가지 일들이 하늘의 섭리의 증거들이요 아버지 하나님의 자비하심의 증거들임을 보여 주고 있다.

 

하나님의 권능은 악인의 격렬한 분노가 한 순간에 무너져 내리고, 그들의 오만함이 사라지고, 강력하기 그지없던 그들의 요새들이 파괴되어 버리고, 그들의 병기들이 산산조각나고, 그들의 힘이 꺽이고, 그들의 책략이 수포로 돌아가 버리고, 하늘을 찌를 것처럼 날뛰던 그들의 오만함이 땅바닥에 떨어지는 데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요컨대, 하나님께서는 가장 좋은 방식으로 처리하지 않으시는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이르는 올바른 길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우리가 가져야 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그저 헛된 사색을 만족시켜주며 머리에만 합당한 그런 지식이 아니라, 정당하게 받아 마음에 뿌리를 내려서 열매를 맺게 되는 그런 지식이라는 점이다. 주께서는 그의 권능으로 자신을 드러내시며, 우리는 우리들 속에서 그 힘을 느끼며 그 은혜를 누리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그 지식에 의해서 훨씬 더 깊은 영향을 받기 마련인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을 찾아가는 가장 온전한 방법이요 또한 가장 적절한 순서는, 대담한 호기심으로 하나님의 본질에까지 뚫고 들어가 조사하기를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본질은 세심하게 탐구할 대상이 아니라 찬송하여야 할 대상이다- 그가 친히 우리에게 가까이 친근하게 다가오시고 또한 어떤 점에서 자기를 전하시는 바 그의 역사하심 속에서 그를 바라보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을 찾아갈 때에 우리의 영혼이 경이 속에 잠기게 되고, 또한 동시에 우리의 깊은 곳에서부터 감동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어거스틴이 가르치듯이 우리가 하나님을 파악할 수 없고, 그의 위대하심에 완전히 압도당할 수밖에 없으므로, 하나님의 역사하시는 일들을 바라보며 그의 선하심으로 우리 자신들을 새롭게 하는 것이 우리가 취해야 할 길인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목적

 

우리는 이렇게 해서 얻어지는 지식을 통해서 자극을 받아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되어야 하며, 동시에 그 지식으로 말미암아 일깨움을 받고 격려를 받아 미래의 생명에 대하여 소망을 갖게 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동시에 하나님의 너그러우심과 지엄하심에 대한 실례들이 아직 미숙하고 불완전한 것들이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이것들이 더 큰 것들의 서막에 불과하며 내세에 가서 비로소 그것들이 완전히 드러나게 된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한다. 불법이 그에 합당한 형벌을 받게 되고, 의가 그 상급을 받게 될 내세가 반드시 있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가 없다.

 

신자들이 주의 막대기로 채찍을 맞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보므로, 언젠가는 악인들이 그보다 더한 채찍을 맞게 될 것임을 확신하게 되는 것이다. 어거스틴은 다음과 같은 유명한 진술을 남기기도 있다: “현세에서 모든 죄가 다 공개적으로 형벌을 받는다면, 최후의 심판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며 또한 현세에서 공개적으로 형벌을 받는 죄가 하나도 없다면, 하나님의 섭리가 없다고 믿게 될 것이다”.

 

그 능력들의 실질적인 목적과 가치를 깨달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바로 우리 자신 속으로 내려가서 주께서 과연 어떻게 그의 생명과 지혜와 능력을 드러내시며, 또한 그의 의와 선하심과 자비를 행하시는가를 깊이 생각하는 것밖에는 없는 것이다.

 

- 존 칼빈, 「기독교 강요」, 상권(크리스챤다이제스트), pp 59-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