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존스

[스크랩] 로이드 존스, "복음의 부요함들" (로마서강해7권17장, 김영희강의안)

강대식 2015. 11. 12. 19:40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여--내가 너희 보기를 심히 원하는 것은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 주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 함이니”(1:9, 11)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 사도는 학식이 많고 자랑거리가 많은 사람이지만, 자신의 섬김을 하나님의 종이요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자신을 국한시키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심에 국한시키고 있다. 우리로 하여금 교회는 언제나 그래야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교회는 일반적인 문화 교육 기구가 아니다. 교회의 특별하고 고유한 임무는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심을 전하는 것이다. 바울처럼 교회는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심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해야 한다. 오늘날 교회들이 문화적인 공회가 되었고, 사회적 모임의 장소가 되었다. 교회는 영적인 공회이다. 우리를 함께 모이게 하는 오직 유일한 하나의 것은 그의 아들의 복음이다. 세상에서 여러 일들이 있고 그리스도인들도 그러한 일에 참여할 수 있다. 그것은 세상의 임무이며, 그 어떤 것도 교회 안에 들어오도록 허락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아들의 복음은 단순히 복음전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교회의 활동이 복음전도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늘의 현시점에서 교회가 언제나 전도만을 강조하고, 그래서 교회의 전 에너지를 전도에 쓰는 위험이 존재한다. 하나님의 아들의 복음은 복음전도적인 메시지로 출발하지만, 더 나아가고 있다. 성화 교리도 영화 교리도 칭의의 교리만큼 하나님의 아들의 복음의 일부이다. 그 어느 것도 배제시켜서는 안 된다. 만일 교회가 하나님의 뜻 전체를 설교하고 있지 않거나 성경의 모든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교리들을 설교하지 않는다면, 교회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에게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라”(1:28) 이것이 바로 교회에 주어진 사명이다. 진정으로 심령으로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의 복음으로 섬긴다는 것이요, 복음은 하나님의 아들이 오셔서 행하신 일 그것으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무엇이든지간에 복음의 일부이다.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 주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 함이니” - 그 이유 때문에 그처럼 로마에 가고 싶어 한다. 첫째, 사도는 자신 속에서 큰 영적 능력을 의식하고 있었다.(1:28, 고전2:4, 살전1:5) 그는 자기 속에서 힘있게 역사하고 있는 능력으로 일하였다. 분명히 오늘날 교회가 다른 무엇보다도 배워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능력이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며, 증인이 될 수도 없다.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4:33)라는 말씀을 대하게 된다. 그들에게서 말이 나갈 때 반석을 부수어 깨뜨리는망치와 같았다. 교회 역사를 통해서 부흥이 일어날 때마다 이 요소가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바울은 이 능력을 알았다. 그는 고린도에서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설교했다. 그것이 바로 섬김과 설교에 대한 바울의 개념이었다. 우리는 위험천만하게도 그것을 무시하고 태만해 한다. 능력이 없이는 변호인은 될 수 있지만 증인은 될 수 없다. 우리는 증인이 되라고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다. 이것은 설교자에게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각자에게 해당되는 진리이다.


둘째, “무슨 신령한 은사를 나눠 주어” - 사람들은 그가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로 갈 때 특별한 신령한 은사 줄 능력을 갖고 간다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울이 그들에게 나아가려는 것은 그들이 그리스도인의 삶을 출발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이미 복음을 믿었고, 이미 성령을 받아 거듭났다. 바울이 하고 싶어하는 것은 그들을 견고케 하려는 것이다. 바울은 어느 곳에서든지 사람들에게 특별한 은사를 줄 능력을 갖고 있다고 가르친 적이 없다. 그가 고전12장에서 말하는 것은 성령께서는 주권적인 방식으로 자기의 원하시는 대로 그 은사들을 나누어 주신다는 것이다.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바울이 아니라 성령이시다.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의 논증은 그러한 특별한 은사들을 소유하는 것이 사람들을 세워주기는 커녕 오히려 교만해지고 투기와 질투를 품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한 것들이 사람들을 세워주지는 못한다.

 

무슨 신령한 은사를 나눠 준다는 말은 강하게 해주고’ ‘굳세게 세워주고’ ‘확고히 해준다는 뜻이다. 그는 로마에 갈 수 없었다. 로마서는 하나의 개요이고, 요약이다. 만일 그가 갈 수 있고 시간을 드릴 수만 있었다면 그는 그 문제를 매우 상세하게 취급하여 행했을 것이다. 로마서를 숙고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려야 한다. 강해 모임에 참석해 왔던 어떤 사람이 목사님, 전 사도 바울의 서신을 다루어나가는 목사님을 사도 바울이 보았더라면 깜짝 놀랐을 것이라고 생각하곤 하지요지금쯤 그 친구는 하늘나라에서 저를 포함한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의 위대한 서신을 다루어나가면서 얻는 것이 너무 작다는 사실에 사도 바울이 깜짝 놀라고 있음을 발견했을 것이다. 사도행전에서 보면, 그는 에베소에서 18개월 동안 두란노 서원에서 말씀을 가르친 것을 보게 된다. 어떤 사람들이 해석하는 방식대로 한다면 어느 날 오후를 잡아서 자기가 쓴 모든 서신들을 다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가 로마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싶어하는 신령한 은사는 교리를 밝혀주고, 가르치고, 교훈하며, 세워주고, 그들로 하여금 뿌리가 박히게 하는 것이다.

 

우리 복되신 주님께서 대제사장 기도에서 아버지의 진리로 저희를 거룩하게 하옵소서라고 말씀 하셨다. 우리가 거룩하게 되는 것은 진리로 말미암는다. 성경을 아는 지식과 교리를 아는 지식으로 말미암아서 이다. 베드로는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른다라고 상기시켜 주고 있다. 잘 배우지 못한 사람은 언제나 굳세지 못하기 마련이다. 그 사람들은 교리를 알지 못하고 믿음의 터가 굳어지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은 피상적으로는 알고 있는 것 같으나 깊이까지 파고들어간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모든 신약 서신마다 사람들을 굳세게 하고 견고케 하고 뿌리가 내리고 터가 굳어지게 하기 위해서 쓰여진 것이다.

 

초대교회 시절에 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그 점은 진리이다. 바울은 에베소교회 장로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그의 은혜의 말씀만이 그 일을 해낼 수 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 아니라 진리이다. 우리가 그러한 교리들을 알고 진정으로 그 교리들을 활용할 때만이 굳세게 되고 요동치 않으며 이단과 오류를 분별해낼 수 있으며 기만을 당하지 않을 수 있게 된다. 영적인 생활에는 지름길이 없다. 성경을 연구해야 한다. 우리를 참으로 굳세게 하는 것은 말씀에 대한 깊고 철저한 지식뿐이다.


출처 : 청교도 아카데미 PBA
글쓴이 : 김영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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