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롬1:9)
사도 바울은 교회가 알았던 복음전도자들 중에서 가장 위대한 복음전도자였다. 동시에 가장 위대한 교사였다. 복음을 설교할 특권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그를 관찰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섬김에 관해서 말하는 것들에 주목하는 것도 중요하다. 특별히 하나님을 섬기는 바울의 자세에 관해서 관찰하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첫째,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 이 일에 관한 자기의 보편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내가 섬기는’ -그의 섬김은 ‘종교적인 섬김’의 개념으로 그것은 언제나 그 속에 예배와 숭앙의 요소를 담고 있는 섬김이다. 다른 신약의 저자들과 같이 바울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제사장들이라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 섬김은 제사장적인 섬김이다. 따로 떼어진 어떤 성직자 그룹만 제사장이라는 의미에서의 섬김이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어떠한 일도, 그것은 종교적인 섬김이요, 종교적인 행위이다. 그것은 언제나 예배의 요소를 띠고 행해져야 한다. 우리가 흔히 거짓된 구별을 하는 경향이 있고 우리 예배의 ‘영적인’ 부분과 ‘물리적인’ 부분으로 철저하게 인위적으로 분리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둘째,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 - ‘내 영으로’ 섬기는 하나님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사도가 하나님을 위해서 섬기는 방식이다. 설교자나 가르치는 교사는 그 점에 대해서 명백해야 한다. 배워야 할 요점은 첫 번째 그것이 진지한 섬김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온 마음과 온 존재를 통해서 즉 전인이 수반되어 하나님을 섬긴다. 그 뿐만 아니라 어떤 일을 하든지 위선이 없다. 예를 들어서 빌립보 사람들에게 투기와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어떤 사람이 복음을 설교한다는 단순한 사실이, 그가 진지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다른 동기를 가지고 있다.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궤휼 가운데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천거하노라”(고후4:2) 그것이 바로 바울의 방식이었다. 그는 하나님을 진지하게 섬겼다. 자기가 하나님의 면전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아시며 보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마음은 언제나 하나님을 향하여 열려져 있었다. 그것이 ‘내 심령으로’라는 말을 통해서 바울이 뜻하는 바이다.
영은 가장 내밀한 부분으로 존재의 진정한 생명적 요소이다. 그러므로 내 영으로 어떤 것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그것을 외면적으로만 행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복음을 전하는 일은 하나의 직업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소명’이다. 그것은 그의 뻐 속에 들어 있는 무엇이다. 예레미야는 그 점을 이렇게 표현한다.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20:9) 사도는 설교를 위해서 설교를 하지 않았다. 단순히 설교를 위해서 설교를 계속해 나간다면, 그들은 ‘심령으로’ 설교하는 것이 아니다. 불이 꺼져버린 것이다! 그보다 더 비극적인 것은 없다. 그것은 외면적인 섬김이다. 여기서 나는 내 설교를 듣고 있는 어느 사람에 못지않게 내 자신에게도 설교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사도 바울은 말씀을 전하는 방식에 있어서 하나의 연기자가 아니었다. 또는 학문적이고 초연적인 자세로 그 일을 해내지도 않았다. 어떤 그들은 놀랍게 자기를 과시하면서 강해하는 본문을 분석해내고 있었으나, 그 메시지는 듣는 사람과는 떨어져 있어 생명을 낳는 교제의 교통이 없었다.
‘심령으로’ 섬긴다는 것은 두 번째 육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영과 육은 서로 반대이다. 고린도전서 1장, 2장에서 사도 바울이 특별히 우리에게 설명해 주는 것이다. 때때로 모든 목회자들이 최소한 매 주일마다 이 두 장을 읽어야 한다고 느낄 때가 있다. 그 두 장의 말씀 속에서 사도는 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육체로 섬기는 것의 차이를 말하고 있다. 설교하거나 가르치는 사람은 누구라도 메시지 뿐 아니라 방식에도 관심을 가져야한다. 왜냐하면 어떤 방식을 쓰느냐에 따라 메시지가 약화되고 무산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도는 언제나 최선을 다하여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 하였다. 육은 언제나 자랑하고 과시하며 교만하다. 그런 사람들에게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설교자 자신이지 메시지가 아니다. 바로 그런 것이 육신적인 섬김이다. ‘심령으로’ 섬기는 사람은 자신에 관해서 말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려 한다. 고린도 교회에서 보듯이 어리석은 사람들이 어떤 인물을 중심해서 편당을 짓고, 그들은 메시지보다는 사람들을 따르고 있었다. 사도는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 “너희가 바울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혔느냐 너희가 무엇 때문에 나를 따르느냐”라고 말한다. 심령으로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것은 이 육신적인 성질이 없다는 것이다. 그 점은 강단에 선 사람 뿐 아니라 회중석에 앉아 있는 사람을 위해서도 중요한 것이다. 회중들은 흔히 설교자를 어지럽힌다. 설교자가 자기의 육신을 따라 말해가면 교리를 말할 때는 보이지 않던 즉각 관심을 보이며 재미있어 한다.
육신으로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의 문제만이 아닌, 자기의 학식과 지식과 총명을 과시하는 사람이다. 자신의 언변, 유창함, 어떤 논증 능력을 의지하고 있다면 그것도 또한 육신적인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에 갔을 때,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전하는 말로 하지 아니 하였다”라고 말한다. 그는 거기서 철학을 말할 수도 있었고 웅변적으로 말할 수도 있었다. 그는 웅변가도 아니요, 철학적으로도 말하지 않았고, 그의 외모도 약해 보였다. 그들은 바울을 멸시했다. 청교도였던 토마스 굳윈은 자기의 설교 원고를 검토하다가 화려한 문귀가 나오면 그 부분을 삭제해버렸다. 그는 자기의 기이하고 균형잡힌 문장이나 아름다운 말씨는 기억하면서도 그리스도는 망각한다는 것을 알았다. 육신적인 열심과 하나님께서 주신 열심이 있다. 그것을 구분하는 것은 매우 어려울 때가 있으나 자신에 대해 정직하다면 언제나 알 것이다. 어떤 사람은 천성적으로 분주하고 활동적인 사람이 있다. 그러한 것이 참된 열심은 아니다. 하나님이 주신 열심에는 언제나 고요함과 평강과 경배의 요소가 있고, 눈에 보기에 거북스러운 것이 전혀 없다.
하나님을 ‘심령으로’ 섬긴다는 것을 요약하면, 자기의 전 존재와 전 인품을 다 동원하여 그를 섬기고자 하는 것이다. 그의 섬김에는 신적인 열심히 있었다. 바울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철저하게 자신을 복종시켰다 그는 아무것도 유보하거나 남겨두지 않았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 하노라”(행20:24) 바로 그것이다! 바로 그러한 심령으로 하나님을 섬겼다.
제게 믿음을 주소서
산을 옮겨 평지로 만들 수 있는 믿음을
제게 어린애같이 기도하는 사랑을 주소서
주의 집을 다시 세우고 싶어하는
간절한 열망를 가진 사랑을
주의 사랑
그것이 내 마음을 다스리는 권세가 되게 하소서
그것이 내 속량받은 영혼의 열망이 되게 하소서.
보배로운 시간 아끼어
오직 이것만을 위해서 살리이다
오직 그들만을 위해서
시간을 쓰리이다.
--아직 내 구주를 알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서
그들을 위해서 받은 사명을
온전히 입증하는 데에만 내 시간을 쓰리이다
그리고 오로지 당신의 사랑을 불어넣는 데에만 시간을 쓰리이다.
주여, 내 재능과 은사와 은혜를
주의 복되신 손에 드리이다.
그러니 나로 하여금 당신의 말씀을 전파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살게 하소서
나의 모든 거룩한 순간이
죄인의 친구되시는 분을 반포하는데 쓰게 하소서.
내 마음을 넓게 하시고
내 마음의 불꽃을 더욱 활활 타오르게 하시고
내 마음을 끝없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우소서.
--그러나 나도 내 모든 힘 쏟아 당신과 같은 열심으로 그들을 사랑하리이다.
그들을 주의 열려진 곳으로 인도하소서
자기들을 위하여 죽은
목자를 가진 양들이 되게 하소서.
찰스 웨슬레의 찬송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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