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존스

[스크랩] 로이드 존스, "기도로 인내함" (로마서강해7권15장, 김영희강의안)

강대식 2015. 11. 12. 19:39

 


어떠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내가 너희 보기를 심히 원하는 것은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주어 너희 견고케 하려 함이니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도 다른 이방인 주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1:10-13)

 

어떠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복종하는 것보다도 사도 비울에게 있어서 더 특징적인 것은 없다. 그는 대단한 이지와 강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었고, 어떤 일을 하고 싶으면 꼭 해내고야 마는 사람이었다. 이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뜻에 철저하고 완전하게 복종하는 모습을 볼 때 은혜의 기적이 얼마나 놀랍게 작용했는지 알게 된다.

 

첫째, 사도의 강한 소원을 보게 된다. ‘어떠하든지’, ‘심히 원하는 것은’, ‘여러 해 전부터’(15:23) 사도는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방문하고 싶어 견딜 수 없는 마음이었음을 그들에게 밝힌다. 우리는 이로부터 위안을 받는다. 만일 하나님의 큰 뜻 안에서 이와 같은 비상한 사람에게도 그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면, 우리에게도 그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음을 기억하자.


둘째, 사도는 언제나 사도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뜻 안에서 행동하는 것을 보게 된다. “어떠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사도는 이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을 방문하고 싶어할 뿐 아니라 그렇게 할 계획도 세워놓았다. 분명히 사도는 전도 계획서를 작성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자기의 마음 속에 그것이 하나님의 뜻과 부합된다는 결정적인 확신이 들기까지 얼마나 세심한 주위를 기울였는지 모른다. ‘좋은 길이란 순조로운 길이라는 뜻으로, “어떤 방도로 하든지 내가 너희에게 나아갈 길이 분명히 밝혀지기를 바라노라라는 뜻이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길을 분명히 해주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자기 소원이 얼마나 강하든지 간에, 하나님의 뜻이라는 확신이 들기 전에는 움직이지 않으려 한다. 그것은 이 사람의 생애와 사역을 이해하는데 진수가 되는 요점이다. 그것은 자신과 자신의 생각을 철저하고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복종시켰다는 것이다.


셋째, 여러 가지 장애들을 인정했다는 것이다. 13절에서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지금까지 길이 막혔다라고 말한다. 바울은 자기의 삶 속에 얼마나 많은 장애요소가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또 하나님께서 자기의 종을 인도하시기 위해서 그 장애들을 어떻게 사용하셨는지도 보여준다. 이것은 하나님의 인도에 대한 교리에 있어서 진수적인 부분이다. 하나님께서는 때로 장애물을 통해서 우리를 향하여 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시는 적이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 장애요소들이 그리스도인이 가는 길에 어떻게 놓여 지는가?

그는 그러므로 또한 내가 너희들에게 가려는 것이 여러 번 막혔더니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15:22-23)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로마 그리스도인을 향하여 자신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라는 부르심을 입었음을 확신한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그리고 자기가 있었던 곳에는 복음을 전함을 받지 못한 지역에서 할 일이 많아 로마에 갈 시간을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로마에 가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 중 하나였다. 그리스도인이 나아가는 길에 장애요소들이 그와 같이 나타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가 더 나가지 못하게 붙잡아 놓고 계셨다. 아직도 그가 있는 곳에서 할 일이 있음을 그에게 보여 주셨다.또 다른 장애요소는 때때로 환경을 통해서 방해를 받을 수 있다.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고--”(고후1:7-8) 질병, 사건 등 우리가 제거할 수 없는 장애물은 세워놓을 수 있다.


특별하게 어떤 때에 사단이 우리를 방해하고 우리의 길을 막아선다. 그러므로 나 바울은 한 번 두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하였으나 사단이 우리를 막았도다”(살전2:18)


정말 사활적으로 중요한 또 다른 장애요소가 있다.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부르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16:6-7) 성령께서 아시아의 로마 제국 내에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했다는 것이다.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막으셨다. 우리 모두에게 있어서 정말 중요한 요점임에 틀림없다. 어떤 경우에는 그는 장애를 받았고, 다른 경우에서는 허락되지 않았고, 금지당하고, 애쓰지 못하도록 제어 당했다. 특히 금하시고’. ‘하지 못하게하신 분은 성령이라고 특별하게 말하고 있다. 성령께서 사람의 영을 억압하시고 직접 통제하시는 일이 여기에 표현되어 있다. 성령의 인도의 문제에 있어서 이것은 최종적인 권위와 표준이라고 서슴치 않고 말한다.

 

어떤 사람이 어떠한 일을 하려할 때 어떻게 결정을 내리는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생각을 주시고, 이해를 주시고, 그러면 우리는 그러한 것을 사용해야 한다. 즉 여러분은 손익을 따지고 이해와 상식을 사용한다. 그 모든 일은 합법적이다. 그런 다음 이렇게 말한다. “그렇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문을 열어주실지 아니면 닫으실지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일을 하신다. 우리는 그 일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여야 하고, 하나님께서는 원하시면 환경들을 조성하신다. 우리가 억지로 열려고 해서는 결코 안 된다. 이상의 두 시금석보다도 훨씬 중요하고 사활적인 것은 우리 영 안에서 증거 하시는 성령의 증거이다. ‘마음속에무언가 불안하고 불확실한 느낌이 있으면 움직이지 말고 행동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성령의 금함이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도가 말할 수 있는 한 말씀을 전하는 것은 옳았고, 환경이 좋아서 전도하기에 밝아 보였다. 그러나 성령께서 비두니아에서도 말씀을 전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셨다.

 

불확실하면 기다리라. 다른 모든 것이 다 잘 되어가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성령께서는 어떠한 일을 최종적으로 금하실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이 진리임에도 불구하고, 사도는 여전히 계속해서 간구하고 있다. 어떠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방해를 받았다고 해서 절망으로 포기하지 않고 낙담하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과 쟁변하거나 하나님을 향하여 불만을 품지 않는다. 여러분은 몇 년 동안 어떤 일을 위해서 기도해 왔을지도 모른다. 여러분이 느끼기에 이제 그것이 허락되는가 보다 하는 때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때는 오지 않았다. 여러분은 슬퍼하는가? 여러분은 투정을 부리며 계속 기도해 봐도 소용이 없어라고 말했는가? 이 하나님의 종은 비록 방해를 받았고, 길이 열리지지 않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이라고 말하면서도 여전히 마음의 소원을 하나님께 표현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이 사람의 삶의 궁극적인 비밀이었고, 그가 하나님 나라에서 위대하게 쓰여진 비밀이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류의 방식을 통해서 그의 생애 있어서 가장 위대한 일들 가운데 어떤 일을 하도록 인도하셨다. 사도행전 16장을 다시보라. 하나님께서 아시아와 비두니아로 가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신 이유는 하나님의 뜻은 바울이 유럽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다른 곳에서 여러 장애물들을 만나게 하신 것은 바로 그 일을 이루시기 위함이었다. 바울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마 그는 철저하게 좌절당한 느낌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어디에도 그러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여러 가지 장애를 만난다고 그 장애들을 경멸하지 말자. 장애물들이 우리를 인도하는 하나님의 방식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문을 닫으시면 또 다른 문을 열어 놓으신다. 때로 문들이 닫혀지는 것이 매우 중요할 경우들이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어떠한 일들에 마음을 쏟았기 때문이다. 우리에 주시는 용기로 인해서 뿐만 아니라, 하지 못하게 하시는 일들을 인해서도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장애물들이 전부 다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과 목적과 우리를 인도하시려는 뜻을 이루는 부분들이다.

 

바울이 급기야 로마에 이르게 된 것은, 결국 로마 황제의 죄수로 사슬에 묶여서 그 로마에 당도했던 것이다. 그는 그러한 방식으로 로마에 가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사람이 어떤 일을 꿈꾸기는 하되 그 일의 성패는 하나님께 달려 있다. 우리의 뜻을 결국 하나님의 뜻에 철저하게 복종시켜야 한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가?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갈 길이다. 우리는 야고보가 말하는 것처럼 살아야 한다.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하고 이것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4:13-15) 우리의 때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우리는 주의 뜻을 온전히 발견할 수 없다. 우리는 바울처럼 하나님께 간구를 드려야 한다. 그러나 즉각적으로 언제나 주의 뜻이라면이라는 말을 덧붙여야 한다. 더 위대한 표본은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22:42)

 

주께서 가신길

종이 어찌 밟지 않으리오

 

소원과 바램, 갈망을 가지는 것은 옳다. 그러나 언제나 매사에 하나님의 뜻에 철저하고 완전하게 우리 자신을 복종하는 것은 더 옳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삶은 영광스러운 놀램과 영광스러운 금지와 영광스러운 제약과 영광스러운 장애로 가득 찬 삶이다. 그런데 갑자기 우리가 바라던 그 일이, 우리가 복종하며 기도해 오던 그 일이 하나님 때와 하나님 방식으로 허락된다. 거기만이 오직 유일한 안전의 처소가 있고, 거기만이 평강의 자리가 있다. 범사에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복종하게 될 때 우리는 그것을 얻게 될 것이다.


출처 : 청교도 아카데미 PBA
글쓴이 : 김영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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