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목사들의 경제학 교과서로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분노할 줄 모르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공의와 정의가 하수같이 흐르게 할 책임이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권하고 싶다.
이 책은 출판 20일 만에 6쇄를 찍고 있다.
경제학의 기본은 알아야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바로 세워갈 수 있지 않을까?
현실적인 경제부터 아는 것이 경제를 알아가는 출발이 아닐까?
장하성 교수는 교려대학교 교수로 신뢰할만 하다.
우파도 좌파도 아닌 중도 개혁적 입장이다.
권력의 편에 서지 않으면 좌파로 모는 것은 색깔도 방향도 분별 못하는 색맹들의 소치이다.
성경이 말씀하는 하나님의 길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길이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는 길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중심이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중심이다.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다.
진리만이 자유케 할 수 있다.
서장: 정당한 분노를 해야 할 때다
경제 발전의 궁극적인 목적이 국민 삶의 질 향상이라면 성장은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결국 성장의 과실을 나누어 갖는 분배의 형평성이 이루어져야 한다.
기적에서 나락으로.
고도성장과 더불어 성장의 과실이 비교적 공평하게 향유되던 기적은 지속되지 않았다. 1960년대 초반부터 시작되었던 산업화 과정에서 기간마다 차이는 있을지라도 적어도 1980년대까지는 소득분배가 악화되지 않았다. 1990년대 중반까지는 소득분배의 형평성이 오히려 호전되는 양상을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다가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불평등은 악화되기 시작하더니, 그 속도가 매우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 20년 가까운 기간 동안 소득분배의 균형은 완전히 상실되었고, 이제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이 심해진 나라가 되었다. 불평등의 악화는 단지 소득에서만 그치지 않았다. 일자리 간의 불평등, 노동자 간의 불평등, 기업 간의 불평등, 세대 간의 불평등 등 거의 모든 지표에서 한국은 세계 최악의 위치로 떨어지고 있다. 거기에다가 경제성장의 하락이 뒤따랐다.
한국 경제는 저성장과 불평등 악화라는 두 가지 재앙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 경제에 관한 관심은 항상 성장에 집중되었다. 권력을 가진 정치권, 재벌, 관계뿐 아니라 학계와 언론계까지도 성장 지상주의자들이 장악해 왔다. 분배는 성장을 저해하는 ‘경제악’으로 여겼고, 정의로운 분배를 주장하는 사람을 ‘빨갱이’로 몰기까지 했다. 심지어는 성장을 위해서 인간이 추구하는 근본적인 가치인 자유와 평등 그리고 인류가 사회라는 공동체를 구성하면서 지켜온 정의와 민주라는 기본 질서까지 희생되어도 무방한 것으로 주장해 왔다.
경제가 성장했는데도 보통 국민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고, 불평등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성장의 낙수 효과는 허구로 판명났다.
이 책의 화두는 세 가지다.
1) 왜 불평등해졌는가?
경제적 불평등은 ‘가진 것’의 차이와 ‘버는 것’의 차이로 구분한다. 한국은 아직 재산 불평등이 소득 불평등을 만들어내는 주요한 원인이 아니다. 한국에서 불평등한 상황으로 인하여 절대다수의 국민들이 경제적 고통을 겪는 것은 재산 불평등보다는 ‘버는 것’의 격차, 즉 소득 불평등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그리고 소득 불평등의 근본적인 원인은 고용 불평등이다. 대다수 국민들의 일상적인 삶의 질은 ‘가진 것’보다는 ‘버는 것’이 결정한다. 한국의 소득 불평등은 재산격차가 아니라 임금 격차가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에 불평등에 대한 원인 규명과 대안 마련을 위해서는 관심의 초점을 재산보다는 소득에 맞추어야 한다.
버는 것의 차이가 불평등을 만들어서 중산층이 줄어들고 저소득층과 저임금노동자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임금 격차가 확대되는 이유는 고용 불평등과 기업 간 불균형이다. 즉 정규직과 비정규직 그리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임금격차가 갈수록 확대되고 있는 것이 소득 불평등을 악화시키고 있는 절대 원인인 것이다. 비정규직 임금은 정규직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비율은 노동법이 정하고 있는 고용 기간 2년이 지나도 열 명 중 두 명에 불과하다. 비정규직은 정규직으로 가는 징검다리가 아니라 빠져나오지 못하는 함정인 것이다.
한국에는 약 50만 개의 기업이 있다. 한국 모든 기업의 매출액 중에서 재벌 그룹에 속하는 100대 기업의 매출액이 차지하는 비중은 29%이고, 중소기업은 35%를 차지한다. 이들 재벌 100대 기업이 고용하고 있는 노동자는 전체 노동자의 4%에 불과한 반면에 중소기업은 72%이다. 더욱 심각한 불균형은 순이익이다. 재벌 100대 기업은 한국 모든 기업의 순이익 60%를 차지한 반면에 중소기업은 35%에 불과하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하청 구조 정점에 있는 초대기업이 고용을 만들어내지 않으면서 이익을 독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절대다수의 고용을 담당하고 있는 중소기업은 정상적인 임금을 지급하지 못하고 간신히 생존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로 2차 하청 기업의 임금은 원청기업인 초대기업 임금의 3분의 1이고, 3차 하청기업은 4분의 1에 불과한 극심한 격차를 보이고 있다.
2) 무엇을 해야 하는가?
빈부의 격차가 아니라 소득의 격차라면 답도 달라져야 한다. ‘재분배’ 이전에 원천적 ‘분배’의 불평등을 바로잡는 것이 보다 더 시급하고 근본적인 불평등을 해소하는 방안이다.
임금과 고용의 불평등이 한국 불평등의 근본적 원인이라면 결국 불평등은 기업이 만들어낸 결과인 것이다. 국민총소득 중에서 가계로 분배된 몫이 지난 20년 동안 크게 줄었다. 압도적으로 많은 몫을 기업이 가져갔다. 정확하게는 대기업이 가져갔다. 경제성장의 성과가 가계, 즉 국민에게 분배되지 않고 대기업이 소유하는 기현상이 한국의 현실이다. 경제는 성장했지만 국민과 중소기업은 패자가 되었고, 대기업이 승자가 된 것이다.
소득이 없다면 결국은 소비도 수요도 투자도 성장도 있을 수가 없다. 임금 분배가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것이 한국의 불평등을 구조적으로 그리고 빠르게 완화할 수 있는 방안이다. 또한 임금 불평등은 고용 불평등과 기업 간 불균형으로 인해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를 줄이는 정책이 불평등을 완화하는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된다. 임금 분배 구조, 고용구조 그리고 기업 구조를 개혁하는 정책이 전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의 복지 예산을 늘리는 재분배의 확대만으로 불평등을 해소할 수 없다.
3) 누가 바꿀 수 있는가?
재벌 대기업에게 함께 잘사는 보다 평등한 한국으로 만드는 기적을 바랄 수도 없고, 기성 세대에게 세상을 바꿀 것도 기대할 수 없다면 누가 한국을 바꿀 것인가? 바로 미래의 주인이 바꿔야 한다. 20대와 30대로 정의한 청년세대 또는 젊은 세대만이 지금의 한국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세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이다.
청년세대의 꿈이 단지 ‘취업’으로 쪼그라든 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그들의 공포는 세상이 강요한 것이다. 기성세대가 만들었고, 바꿀 생각도 없는 불평등한 현실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청년세대의 아픔은 결코 스펙 쌓기와 자기계발, 긍정과 힐링으로 치유될 수 없다. 그들의 아픔은 세상을 바꾸지 않고서는 치유될 수 없다. 청년세대가 스스로 이를 깨닫고 자신만이 아니라 세상을 힐링하는 데 나서야 한다.
지금의 정의롭지 못한 한국을 기성세대가 만들었는데 청년세대에게 세상을 바꾸는 짐을 떠넘기는 것은 기성세대가 무책임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멘토질 같은 잔소리를 하려고 한다. 첫째, 청년세대는 기성세대가 강요하는 방식이 아닌 자신 세대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꾸어야 한다. 미래는 청년세대의 것이지 기성세대의 것이 아니다.
둘째, 청년세대에게 강요된 틀에 무조건 순응하지 말고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한국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 이러한 현실을 제대로 알고도 분노하지 않는다면 절망할 필요도, 아플 이유도, 힐링할 필요도 없다. 그저 맹목적으로 긍정하고 자기계발에 열중하면 된다. 청년세대의 분노는 정의롭지 않은 한국의 현실을 바꾸는 시작점이자 가장 중요한 점이다. 모든 행동은 인식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셋째, 지금의 청년세대가 겪고 있는 아픔을 적어도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어서는 안 된다는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 10년 전 ‘88만원 세대’였던 30대는 ‘3포 세대’로 추락했고, 다시 ‘5포 세대’로 진화하고 있다. 20대는 쓸모없는 나머지라는 ‘잉여 세대’라고 자조하고, 너무도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N포 세대’가 되어가고 있다. 청년세대가 이런 퇴보와 퇴행과 비정상의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정의롭지 못한 분배로 만들어진 불평등으로 인해서 절대다수의 국민들이 고통 받고, 성장의 혜택을 누리는 1%의 소수와 소외된 99%의 다수로 갈려서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지금 한국은 힘을 가진 기득권 세력들과 그들의 조력자들의 의도로 설계되고 실행된 결과이지 시장에서 스스로 진화한 결과가 아니다. 우리 모두가 현실에 순응하고, 세상을 바꾸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이 기적에서 나락으로 추락한 것이다.
역설적으로 다수의 국민들이 함께 나선다면 지금의 한국을 바꿀 수 있다. 청년세대만이 아니라 기성세대도 정의롭지 못한 현실에 함께 분노해야 한다. 불평등한 불의를 보고도 분노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마음까지 노예가 되는 것이다. 고통 받고 있는 다수의 국민들이 함께 분노하고, 기성세대가 세상을 바꾸려는 청년세대에게 응원을 보낸다면 한국은 정의로운 사회라는 또 한 번의 새로운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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