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 확고한 그리스도인들조차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주로 교회사역을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러면 직장에서 하는 일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물질적 필요 곧 식탁에 밥과 반찬을 올려놓기 위한 것 외에는 본래 영적 의미는 전혀 없는 것인가? 생계를 유지하는 순전히 공리주의적 방편에 불과한가?
변호사에게 있어서, 법은 어떤 절차나 논쟁 기술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잘못된 것에 대항하고 정의를 세우며 약자를 변호하고 공적 선을 증진하는 하나님의 도구다. 정의 권리 화해에 관한 성경적 이해를 법조계에 내놓는 것이다. 변호사는 진실이나 정의의 도덕 원칙과 상관없이, 자기 고객이 옳든 그르든 그를 변호하는 것이 마땅한 “고용된 총잡이”가 아니다.
우리 신앙이 삶의 나머지 부분과 분리된다면 우리가 신앙의 힘을 어떻게 온전히 경험할 수 있겠는가? 만일 우리가 출근 길에 우리의 속 깊은 믿음을 모두 내던져 버리고 직장에서는 순전히 “세속적” 사고방식으로 일하도록 요구받는다면, 어떻게 온전하고 통합된 삶을 살 수 있겠는가?
성과 속, 공과 사의 이분법들은 추상적인 개념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실로 개인의 삶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공적 영역이 종교로부터 자유로운 영역으로 차단될 때 우리 삶은 찢어지고 파편화되기 마련이다. 일과 공적인 삶은 영적 의미가 없는 것으로 치부되고, 우리 삶에 가장 깊은 의미를 부여하는 영적 진리들은 일과 외의 시간에만 적합한 여가활동으로 전락하고 만다. 복음은 제한되고, 삶의 모든 영역에 “스며들어” 끼쳐야 할 영향력을 빼앗기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 삶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는 이런 이분법을 어떻게 깨뜨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섬김이 우리 삶 전체를 밝게 비추는 불빛이 되게 할 수 있을까? 이것은 세속적인 것과 거룩한 것,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을 모두 단일한 틀 속에 통합하는 세계관적 관점을 발견함으로써만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정직한 일과 창조적 활동 모두가 주님께로부터 온 타당한 소명이 될 수 있음을 깨닫고, 일의 모든 분야에 적용되는 성경적 원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함으로써 가능하다. 이런 통찰력은 우리에게 새로운 목적의식을 채워 줄 것이며, 삶의 모든 차원에서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데서 오는 기쁨을 선사할 것이다.
변호사의 경우, 정직하게 법을 적용하는 일이 돈벌이와 소송에서의 승리를 훨씬 넘어서는 것임을 아는 것이다. 정의를 증진시키고 사회의 유익에 기여하는 것이 근본적으로 세상에서 하나님의 목적을 수행하는 길이다. 하나님께서 전문가로 사는 삶 속에서 그분을 위해 사는 법을 보여 주신 것이다. 사업을 운영한다거나 생계를 유지하는 일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일 속에서 실은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기쁨을 찾게 될 것이다.
우리 가운데 기독교 세계관의 개념과 삶의 기쁨을 서로 연계시킨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을 예배로 하나님께 바칠 때에만, 그분의 능력이 우리 존재의 모든 부분을 가로질러 흐르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성경의 하나님은 인간 영혼의 하나님일 뿐만 아니라 문화 명령에 순종함으로써 섬기기도 한다. 교회가 제자도를 진지하게 여긴다면, 신자들이 일요일에 교회문을 나선 후에도 계속해서 하나님을 위해 살도록 그 방법을 가르쳐야 마땅하다.
기독교 대학을 졸업했지만 기독교 세계관을 배운 적이 없다. 워싱턴의 고위 관리 한 사람이 언젠가 헌신된 그리스도인이자 동시에 전문가를 찾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르겠다고 한탄한 적이 있다. 문제는, 대다수의 그리스도인이 자기 직업에 대한 성경적 소명의식이 없는 것이다. 자기 직업을 하나님 나라를 위한 최전선의 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업 제조업 정치 공업 등의 영역에서 일하는 평범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관여하는 교회의 최전선 군사들”이라고 레슬리 뉴비긴은 썼다.
만일 우리가 평신도를 영적 전쟁에서 싸우는 최전선 군사라고 여긴다면, 교회가 얼마나 많이 변할지 한번 상상해 보라. “우리는 이 전쟁에서 그들을 지원할 책임을 진지하게 여기고 있는가?” “우리는 그들의 증언을 강화하기 위해, 그들이 날마다 직면하는 매우 곤란한 윤리적 문제에 대처하도록 돕기 위해, 그들이 치르는 일상적인 영적 전쟁과 관련해 전 교회가 그들 배후에 있다는 확신을 주기 위해 어떤 진지한 노력을 기울였는가?” 교회는 준비된 평신도들이 세상을 향해 복음을 전하도록 그들을 내보내는 훈련장에 다름 아니다.
- 낸시 피어시, 「완전한 진리」, pp 127-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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