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드 존스

[스크랩] "청교도들의 실패 요인(1640-1662)", 로이드 존스, "청교도 신앙 그 기원과 계승자들"에서 발췌

강대식 2016. 4. 21. 21:06

1962년 청교도의 난제들-

1640년부터 1662년이 주는 교훈들

 

청교도의 양심!” 그들에게 이보다 더 특징적인 것은 없다. 그들은 진리에 대해 정확히 알기 위해 면밀한 주의를 기울였지만, 단순히 이론적인 지식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그 진리를 이행하고 실천하기 위해서였다.

청교도들은 항상 적용을 크게 강조하였다.

 

우리 모두는 참된 신앙의 부흥과, 우리 가운데 계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의 나타나심, “마른 뼈들이 움직이고 서로 상합함,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의 진정성이 드러나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일반적으로 부흥보다 어떤 유의 개혁이 앞선다. 부흥에는 어떤 조건들이 있다. 역사가 우리에게 분명하게 보여주듯이, 먼저 그 사람들이나 개인을 준비시키신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다. 라오디게아 사람들과 같이 타락하거나 배도한 교회가 회개라는 선결 조건의 수행 없이 큰 축복을 받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1662년의 이 큰 사건은 영국 종교사에 있어서 중차대한 사건이라는 데 모든 사람들이 찬동할 것이라 생각한다. 이 사건은 300여년간 영국의 종교사와 신앙의 패턴을 결정하다시피한 전환점이었다. 어떤 의미에서 1640년부터 1662년의 기간은 종교 개혁과 거의 동등한 중요성을 가진다. 바로 이 시점에서 영국 국교회의 본질에 관한 최종적인 결정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영국의 종교개혁 시기부터 1662년까지 청교도들이 영국 교회의 상태에 만족했던 시기는 전혀 없었다. 그들은 종교 개혁이 불완전하다고 생각했다.

1662년의 결정은 반동적 종교개혁의 특징을 띠고 있다. 청교도들의 소망은 끝내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이 사건은 그들의 완전한 실패였고 모든 갈망하는 것이 무산되어 버린 사건이었다.

 

청교도들의 실패 원인

 

로드의 분명한 패배가 승리로 바뀌어 버린 이 엄청난 변화의 원인은 무엇인가? 로드는 고소당하여 사형 판결을 받았고 그 편에 속한 모든 것들이 패배한 것처럼 보였다. 찰스 1세가 처형되었을 때는 특히 그랬다. 완전히 패퇴할 것같은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662년에 그 사람들이 승리했다. 거의 완전히 멸절당한 것 같이 보이던 로드파가 다시 권력을 장악하였고 대단한 승리를 축하했다. 이 기간 동안 내내 상승세를 타고 있었던 청교도들은 특별히 무엇이 잘못되어 있었는가?

 

1) 종교와 정치의 혼합이다. 이것이야말로 청교도 역사에서 가장 마귀적인 것이다. 공동의 적을 이기기 위해 서로 타협하게 되었다. 교회 내의 종교를 정치와 혼합시키는 것은 언제나 위험하다. 1640년부터 1662년까지의 기간이 주는 교훈을 배워 그처럼 세상에 휘말리는 일에서 벗어나기 바란다. 우리는 영적 무기를 가지고 주님의 싸움을 싸워야 한다.

 

2) 훨씬 더 비극적인데, 그것은 청교도들 사이에 일어난 불행하고 후회스러운 분쟁이다.

청교도들 사이에 분열이 생겼다. 끊임없이 분쟁이 일어났다. 장로교파, 독립교회파, 5왕정파, 퀘이커파, 개간파, 평등주의파, --. 영국 국교회의 정책은 이들을 분열시켜 정복하는것이었다. 그것은 성공적이었다. 그 결과 1662년의 재난이 도래하게 되었다. 청교도들이 사분 오열되어 싸우고 있는 동안, 거의 대부분이 대륙으로 도피했던 로드파 사람들은 자기편 사람들의 회복을 위해서 계획을 세우고 모의했다.

 

3) 장로교도들도 국교회 사람들만큼 의회의 법령과 국가의 권세를 이용해 자기들의 특별한 교회관에 복종하도록 대중들을 억눌러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1644년에 그들은 국가의 권력과 의회의 입법 조치를 통해 자기들의 관점을 강요했다. 이러한 관점은, 궁극적으로 문제는 변덕스러운 대중들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을 뜻한다. 그 결과 크롬웰을 내세웠던 런던의 대중들이 1660년에는 찰스 2세가 돌아오는 것을 환영했다. 똑같은 사람들이 말이다. 법을 제정하는 권세와 교리를 강요하는 권세를 국가에게 주면 언제나 이러한 결과가 따라온다.

 

그들은 엄격한 종교적 행동을 의회의 법률 조항에 의해서 강요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스포츠나 오락 및 기타의 것들에 대해서 법 조항을 통과시켰던 것이다. 공화정 기간 동안 주어진 방법대로 살도록 강요받았던 런던 대중들은 그것들을 믿은 적도 없고 또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들은 매우 지치고 진력이 나게 되었다. 이것이 주요 원인의 하나가 되어, 왕정제로 다시 바뀌어 왕을 데려와야 한다고 하며, 삶을 망치는 청교도들을 제거해야겠다고 말하게 되었다. 도덕적, 영적 설득을 통해서가 아니라, 의회의 법률 조항을 통하는 식으로 도덕을 강요하는것은 그 자체에 대한 반작용을 낳게 되는 것 같다.

 

만일 이 모든 분파와 파당이 놀라운 기회를 맞았을 때 보조를 같이 하기만 했다면, 특히 찰스 2세의 복귀 때 그랬더라면- 그들이 보편적인 종교적 관용에 대해 보조를 같이 하기만 했다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장로교도들은 그 일에 동조하지 않았다. 반드시 장로교식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만일 청교도들이 어떤 한 체제보다는 보편적으로 종교적 관용을 위해서 함께 연합했다면, 그 당시와 그후 300년 동안의 역사는 매우 달라졌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너무 늦게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존 오웬이나 토머스 굿윈 등 다른 많은 사람들이 취했던 입장이 진리였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 때는 이미 해를 많이 받았고 영광스러운 가능성과 기회가 지나가 버린 때였다.

 

이 기간을 통해 배워야 할 교훈

 

1) 개혁적이고 청교도적인 관점에 따르면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이기도 한 구원의 복음이다. 분명히 우리가 어떤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주장하고 선포하며 변증해야 하는 것은 이 순전한 복음, 이 순전한 복음의 말씀이다. 우리는 이 점에 대해서 어떠한 타협도 용납하지 않아야 한다.

 

2) 믿음의 핵심에 대한 관점이 정반대되는 사람들이 같은 교회에 함께 있는 것을 관용해야 옳은가? 우리가 고수하는 거의 모든 것을 부인하는 사람들을 교회로 부르며 한 부류 속에 있는 것이 옳은가?

 

3) 영적인 방법으로 이러한 싸움을 싸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육신적인 무기를 통해서 싸워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반()정치적이고 반교회적인 자세를 가지고 싸우는 순간 우리는 파당 정신을 발전시켜 파당 이익의 차원에서 생각하고, 핵심적인 것들에 대해서 우리와 진실로 일치하는 사람들을 원수처럼 취급하기 시작하며, 반대로 대의는 이미 잃어버리게 된다. 우리가 그 좁은 파당 정신에 빠져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의 순결 및 번영보다 자기 편의 관점이 승리하는 것에 더 관심을 갖는 자세를 취하지 않게 지켜 주소서!

 

이 기간을 통하여 배워야 할 실제적인 교훈

 

사람들의 교활함과 간교함과 악의에 속아 덫에 걸리는 위험을 항상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청교도의 행동하는 양심은 그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그 너머까지 내다 본다. 청교도 지도자들에게 어떤 특혜를 부여함으로써 청교도들을 분열시키려는 수작들을 부렸지만, 그러나 그것은 엄격하고 단호하며 양심적으로 거절되었고 거부되었다.

이 사람들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서 타협할 수 없었으며, 그들의 양심을 팔 수 없었다. 그들은 차라리 광야로 나가 무섭게 따라오는 고난을 택했다. 이것이 바로 청교도의 행동하는 양심이다. 면밀함, 주의 깊음, 특히 바른 관점을 가질 뿐만 아니라 껼과가 어떻게 되든지 바른 견해에 따라서 행동하려는 면밀함, 이것이 바로 행동하는 청교도의 양심이다.

 

이 기간을 통해서 우리가 배워야 하는 궁극적인 교훈은 이것이다. “육체의 병기는 여러분의 기대를 저버린다. 여러분은 자신을 믿지 마십시오우리는 주와 그 힘의 능력을 미덩야 한다. 우리는 주 안에서 강하고 그 힘의 권능으로 강해져야한다.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고후10:4)는 것을 진실로 인식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진리가 무엇인가를 알게 된다면, 그것을 붙잡고 그것을 위해서 싸우며 모든 타협을 거절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에게 어떠한 대가를 요구한다 할지라도 말이다. 우리는 모든 유혹, 모든 제안, 모든 아첨, 명예를 주겠다는 속임수를 모두 거절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를 대적하여 사용되는 간계들을 간파하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어떤 직책을 주겠다든지, 어떤 명예로운 지위를 주겠다든지, 승진을 시켜 주겠다든지, 우리 교단의 어떤 자리를 주겠다든지, 그 밖의 다른 어떤 것을 준다 할지라도 말이다. 그래야 믿음과 교회의 순결성과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서 싸울 수 있다. 그들의 입장을 알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 입장에 입각하여 행동했던 이 사람들을 기념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자. 우리에게 이들의 자취를 따라갈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하소서!


출처 : 청교도 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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