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장 구약에 예표된 그리스도의 영광
우리는 성경에서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눅 24:27)라는 그리스도에 관한 기록을 본다. 그러므로 모세와 선지자들, 그리고 모든 성경이 그리스도와 그 영광을 증언한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것이 구약성경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생명과 빛의 방향이다. 그것이 없이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그 어느 것도 바르게 이해될 수 없다. 유대인들이 그러했다. 그들은 마음에 수건을 두른 것과 같았다. 사도가 선언한 바와 같이, 구약성경을 읽을 때 사람들의 마음에서 수건을 벗길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영광을 발견한 그 믿음뿐이다.
(고후 3:14-16, 개정) 『[14] 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벗겨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15]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그 마음을 덮었도다 [16]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
그러므로 구약성경을 통해서 신자들에게 그리스도의 영광이 제시되는 방식과 방편들에 대하여 간단하게 생각해보 보고자 한다.
1 율법에 기록된 예배와 그 예배의 모든 방편들을 정한 규례 속에 그 영광이 예표된다
율법의 제도는 하나님을 외적으로 예배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고안해 낼 수 있는 찬란한 여러 의식들보다 훨씬 더 탁월하다. 그리스도의 인격과 직무를 드러내어 그의 영광을 돋보이게 하려고 하나님의 지혜로 구상하고 만드신 제도가 그것이기 때문이다.
성막과 성전은 무엇인가? 성소와 그 곳에 있는 도구들은 무엇인가? 그곳에 있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말씀과 법궤, 그리고 그룹들과 속죄소 등은 무엇인가? 대제사장과 그 예복들과 행동 방식을 규정하는 여러 규례들은 무엇인가? 매년 지성소에 들어가 희생 제물의 피를 뿌린 것은 무엇인가? 그것들은 그림자이다. 그리고 그 그림자를 통해서 예표된 실체는 그리스도이시다
모세가 성막을 세우고 그 성막의 여러 섬기는 예법을 규정하기 위해서 행한 모든 일들은, 후에 나타날 그리스도의 일들을 예표하기 위해 미리 증언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이 바로 선지자들의 사역의 본질이었다.
(히3:5)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언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집에서 종으로서 신실하였고
2. 그리스도가 사랑과 은혜 가운데서 자기 교회와 교통할 것을 신비적으로 그린 것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영광이 표현된다
성경의 많은 부분에 이 점이 시사되어 있으며, 특히 구약에는 이것을 선언할 목적으로 계획된 책이 있다. 바로 솔로몬의 ‘아가서’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가서를 전혀 무시하지는 않더라도 가볍게 여긴다.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 외적으로 정해 놓은 여러 가지 제도들과 함께, 은혜와 믿음과 사랑 가운데서 그리스도와 내적으로 교통하는 것을 기록한 아가서는 구약의 백성들이 어떤 관점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았는지 그 실상을 알려 주고 있다.
기쁨과 감격의 거룩한 긴장감, 기쁨의 환희, 엄숙하고도 거룩한 만족, 불타는 듯한 사모하는 심정, 그리스도와 교제를 나누기 위한 방편에 부지런히 참여하는 일, 믿는 사람들의 영혼 속에서 이루어지는 그리스도의 영광의 발견, 이런 것들이 아가서의 말씀 속에 강조되어 있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를 열렬히 사모하고 그리스도의 탁월성을 거룩하게 찬탄하면서도 그런 것들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어느 날 우리는 그런 것들을 받을 만한 가치기 없는 사람으로 판단받게 될 것이다.
3. 그리스도께서 구약시대의 지도자 몇 사람에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심으로써 장차의 일을 나타내고 알리셨다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자신의 성육신을 넌지시 예시하기 위함이다. 물론 그 당시에 그리스도는 오직 하나님으로 계셨지만, 자신이 어떤 분이 되실 것인지를 전하기 위해서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리스도가 그 당시에 인성을 창조하셔서 그것을 자신에게 연합시킨 것은 아니다. 아브라함과 야곱과 모세와 여호수아와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식으로 나타나셨다.
또한 그분은 구약성경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교회 안에, 그리고 교회와 함께 거하셨던 신격이셨기 때문에, 그렇게 하시는 가운데 끊임없이 인간의 정서를 취하심으로써 언젠가는 인성을 입고 그 가운데 직접 행하시게 되리라는 것을 시사하셨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타락이후 구약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자신에 관한 모든 기록과 함께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여러 규례에 관한 모든 기록, 그리고 하나님께서 교회를 다루시는 방식에 관한 기록을 살펴보면, 한결같이 장차 이루어질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4. 예언적인 환상들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난다
사도는 이사야가 본 환상이 바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본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사야가 그렇게 말한 것은 주의 영광을 보고 주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요 12:41). ‘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라는 말은 그리스도께서 신격을 지니고 영광의 보좌 위에 높이 계신 것을 뜻한다. 이는 사람이 만든 장막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만드신 참된 장막이다.
이사야는 그 환상을 보고 두렵고 황망하여 어쩔 줄을 몰랐다. 그러나 그런 일이 있은 후에 그 영광스러운 분의 역사로 말미암아 새 힘을 얻었으며, 제단에서 집은 바 핀 숯으로 그 불의가 깨끗해졌다(사 6:6). 이것은 그리스도의 희생제사의 정결하게 하는 효력을 모형적으로 나타낸다. 이는 신자들의 영혼을 위한 양식이었다.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실 때에도 그리스도께서는 동일하게 영광스럽게 나타나셨다. 시편 기자가 그 영광에 대해서 묘사한 것을 사도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에 적용한다.
(시 68:17-18, 개정) 『[17] 하나님의 병거는 천천이요 만만이라 주께서 그 중에 계심이 시내 산 성소에 계심 같도다 [18] 주께서 높은 곳으로 오르시며 사로잡은 자들을 취하시고 선물들을 사람들에게서 받으시며 반역자들로부터도 받으시니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기 때문이로다』
불로 율법을 주셨기 때문에 겉으로 보기에 정말 무서움으로 가득 찬 일이었지만, 시편 기자는 그리스도께서 그 율법을 성취하셨다는 측면에서 긍휼이 가득 찬 일로 언급하고 있다. 그 율법을 주신 일은 거룩함과 무서운 저주가 함께 했기 때문에 그 일에 참여했던 자들에게는 죽음과도 같은 무서운 일이었지만, 그 율법을 완성하는 일은 생명이었다. 그 율법에서 나오는 용서와 의로 말미암아 생명이 된 것이다.
5.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심으로써 우리가 탐구하는 그 모든 영광의 주인공이 되셨으며,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교리가 계시되었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이 가장 분명하게 계시된 곳은 복음서이다. 복음서는 실제로 이루어진 후에 기록되었다. 그런데 이미 구약 속에 그 일이 많이 계시되어 있다.
(사 9:6-7, 개정) 『[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7]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이 한 가지 증거만으로도 유대인이나 소시니안이나 그리스도의 영광을 대적하는 모든 원수들을 패쇠시키기에 충분하다. 물론 그리스도께서 장차 육신을 입으실 것과 통치하실 것을 드러내면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선포했지만, 그 선포를 듣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많은 어둠이 남아 있었음을 인정한다. 비록 그들이 계시의 진리에 익숙해 있었고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이 어떻게 성취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어떤 개념도 형성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모든 예언이 복음서에서 설명되고 선포되어 그 신비한 의미가 눈에 보이게끔 우리에게 확연하게 드러났다. 그 예언의 모든 표현이 정확하게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지금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율법에 의해서 정죄 받을 눈멂이다.
6. 그리스도에 관한 약속들과 예언들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영광이 표증되었다
그리스도의 인격과 그리스도께서 오심, 그리스도의 직무와 나라, 그 모든 것 가운데 나타난 그리스도의 영광,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이 모두 구약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생명선이다.
그런데도 성경에서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거나 분간해 내지 못하는 것은, 우리 마음에 수건이 덮여 눈이 멀었기 때문이다. 구약에서 선포되고 표증된 그리스도의 영광을 발견하고 살펴보라는 의도가 없다면, 아무리 구약의 말씀을 묵상하거나 읽거나 연구한다고 할지라도 아무 유익이 없다. 그런 시각을 가지지 않으면, 오늘날까지도 그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봉함된 책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
7. 구약에서는 은유적인 표현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낸다
우리가 즉각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알게 하는 데에는 그런 방식으로 넌지시 표현하는 것이 매우 합당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쉽게 알 수 있는 것을 들어 영적인 능력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이런 가르침에는 신격의 무한한 겸비함이 나타난다. 영적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탁월함이 우리의 감각에 와 닿을 수 있도록 피조물들의 이름을 들어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사례들은 수없이 많다.
예들 들어,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와 순종의 향기를 장미로 표현하기도 한다. 또 그리스도의 은혜로운 아름다움과 호감을 백합화에 비유하여 표현하기도한다. 그리스도의 가치를 값진 진주로 나타내기도 한다.
복음서에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모세와 모든 선지자들의 글에 나타난 바 자신에 관한 것들을 열어 보여 주신다 모세와 모든 선지자들의 글에 내포되어 있는 것들을 묵상하도록 우리의 영혼을 격려하고자 그런 것들을 언급하신 것이다.
우리는 성경에서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눅 24:27)라는 그리스도에 관한 기록을 본다. 그러므로 모세와 선지자들, 그리고 모든 성경이 그리스도와 그 영광을 증언한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것이 구약성경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생명과 빛의 방향이다. 그것이 없이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그 어느 것도 바르게 이해될 수 없다. 유대인들이 그러했다. 그들은 마음에 수건을 두른 것과 같았다. 사도가 선언한 바와 같이, 구약성경을 읽을 때 사람들의 마음에서 수건을 벗길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영광을 발견한 그 믿음뿐이다.
(고후 3:14-16, 개정) 『[14] 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벗겨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15]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그 마음을 덮었도다 [16]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
그러므로 구약성경을 통해서 신자들에게 그리스도의 영광이 제시되는 방식과 방편들에 대하여 간단하게 생각해보 보고자 한다.
1 율법에 기록된 예배와 그 예배의 모든 방편들을 정한 규례 속에 그 영광이 예표된다
율법의 제도는 하나님을 외적으로 예배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고안해 낼 수 있는 찬란한 여러 의식들보다 훨씬 더 탁월하다. 그리스도의 인격과 직무를 드러내어 그의 영광을 돋보이게 하려고 하나님의 지혜로 구상하고 만드신 제도가 그것이기 때문이다.
성막과 성전은 무엇인가? 성소와 그 곳에 있는 도구들은 무엇인가? 그곳에 있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말씀과 법궤, 그리고 그룹들과 속죄소 등은 무엇인가? 대제사장과 그 예복들과 행동 방식을 규정하는 여러 규례들은 무엇인가? 매년 지성소에 들어가 희생 제물의 피를 뿌린 것은 무엇인가? 그것들은 그림자이다. 그리고 그 그림자를 통해서 예표된 실체는 그리스도이시다
모세가 성막을 세우고 그 성막의 여러 섬기는 예법을 규정하기 위해서 행한 모든 일들은, 후에 나타날 그리스도의 일들을 예표하기 위해 미리 증언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이 바로 선지자들의 사역의 본질이었다.
(히3:5)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언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집에서 종으로서 신실하였고
2. 그리스도가 사랑과 은혜 가운데서 자기 교회와 교통할 것을 신비적으로 그린 것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영광이 표현된다
성경의 많은 부분에 이 점이 시사되어 있으며, 특히 구약에는 이것을 선언할 목적으로 계획된 책이 있다. 바로 솔로몬의 ‘아가서’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가서를 전혀 무시하지는 않더라도 가볍게 여긴다.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 외적으로 정해 놓은 여러 가지 제도들과 함께, 은혜와 믿음과 사랑 가운데서 그리스도와 내적으로 교통하는 것을 기록한 아가서는 구약의 백성들이 어떤 관점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았는지 그 실상을 알려 주고 있다.
기쁨과 감격의 거룩한 긴장감, 기쁨의 환희, 엄숙하고도 거룩한 만족, 불타는 듯한 사모하는 심정, 그리스도와 교제를 나누기 위한 방편에 부지런히 참여하는 일, 믿는 사람들의 영혼 속에서 이루어지는 그리스도의 영광의 발견, 이런 것들이 아가서의 말씀 속에 강조되어 있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를 열렬히 사모하고 그리스도의 탁월성을 거룩하게 찬탄하면서도 그런 것들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어느 날 우리는 그런 것들을 받을 만한 가치기 없는 사람으로 판단받게 될 것이다.
3. 그리스도께서 구약시대의 지도자 몇 사람에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심으로써 장차의 일을 나타내고 알리셨다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자신의 성육신을 넌지시 예시하기 위함이다. 물론 그 당시에 그리스도는 오직 하나님으로 계셨지만, 자신이 어떤 분이 되실 것인지를 전하기 위해서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리스도가 그 당시에 인성을 창조하셔서 그것을 자신에게 연합시킨 것은 아니다. 아브라함과 야곱과 모세와 여호수아와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식으로 나타나셨다.
또한 그분은 구약성경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교회 안에, 그리고 교회와 함께 거하셨던 신격이셨기 때문에, 그렇게 하시는 가운데 끊임없이 인간의 정서를 취하심으로써 언젠가는 인성을 입고 그 가운데 직접 행하시게 되리라는 것을 시사하셨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타락이후 구약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자신에 관한 모든 기록과 함께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여러 규례에 관한 모든 기록, 그리고 하나님께서 교회를 다루시는 방식에 관한 기록을 살펴보면, 한결같이 장차 이루어질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4. 예언적인 환상들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난다
사도는 이사야가 본 환상이 바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본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사야가 그렇게 말한 것은 주의 영광을 보고 주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요 12:41). ‘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라는 말은 그리스도께서 신격을 지니고 영광의 보좌 위에 높이 계신 것을 뜻한다. 이는 사람이 만든 장막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만드신 참된 장막이다.
이사야는 그 환상을 보고 두렵고 황망하여 어쩔 줄을 몰랐다. 그러나 그런 일이 있은 후에 그 영광스러운 분의 역사로 말미암아 새 힘을 얻었으며, 제단에서 집은 바 핀 숯으로 그 불의가 깨끗해졌다(사 6:6). 이것은 그리스도의 희생제사의 정결하게 하는 효력을 모형적으로 나타낸다. 이는 신자들의 영혼을 위한 양식이었다.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실 때에도 그리스도께서는 동일하게 영광스럽게 나타나셨다. 시편 기자가 그 영광에 대해서 묘사한 것을 사도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에 적용한다.
(시 68:17-18, 개정) 『[17] 하나님의 병거는 천천이요 만만이라 주께서 그 중에 계심이 시내 산 성소에 계심 같도다 [18] 주께서 높은 곳으로 오르시며 사로잡은 자들을 취하시고 선물들을 사람들에게서 받으시며 반역자들로부터도 받으시니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기 때문이로다』
불로 율법을 주셨기 때문에 겉으로 보기에 정말 무서움으로 가득 찬 일이었지만, 시편 기자는 그리스도께서 그 율법을 성취하셨다는 측면에서 긍휼이 가득 찬 일로 언급하고 있다. 그 율법을 주신 일은 거룩함과 무서운 저주가 함께 했기 때문에 그 일에 참여했던 자들에게는 죽음과도 같은 무서운 일이었지만, 그 율법을 완성하는 일은 생명이었다. 그 율법에서 나오는 용서와 의로 말미암아 생명이 된 것이다.
5.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심으로써 우리가 탐구하는 그 모든 영광의 주인공이 되셨으며,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교리가 계시되었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이 가장 분명하게 계시된 곳은 복음서이다. 복음서는 실제로 이루어진 후에 기록되었다. 그런데 이미 구약 속에 그 일이 많이 계시되어 있다.
(사 9:6-7, 개정) 『[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7]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이 한 가지 증거만으로도 유대인이나 소시니안이나 그리스도의 영광을 대적하는 모든 원수들을 패쇠시키기에 충분하다. 물론 그리스도께서 장차 육신을 입으실 것과 통치하실 것을 드러내면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선포했지만, 그 선포를 듣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많은 어둠이 남아 있었음을 인정한다. 비록 그들이 계시의 진리에 익숙해 있었고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이 어떻게 성취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어떤 개념도 형성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모든 예언이 복음서에서 설명되고 선포되어 그 신비한 의미가 눈에 보이게끔 우리에게 확연하게 드러났다. 그 예언의 모든 표현이 정확하게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지금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율법에 의해서 정죄 받을 눈멂이다.
6. 그리스도에 관한 약속들과 예언들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영광이 표증되었다
그리스도의 인격과 그리스도께서 오심, 그리스도의 직무와 나라, 그 모든 것 가운데 나타난 그리스도의 영광,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이 모두 구약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생명선이다.
그런데도 성경에서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거나 분간해 내지 못하는 것은, 우리 마음에 수건이 덮여 눈이 멀었기 때문이다. 구약에서 선포되고 표증된 그리스도의 영광을 발견하고 살펴보라는 의도가 없다면, 아무리 구약의 말씀을 묵상하거나 읽거나 연구한다고 할지라도 아무 유익이 없다. 그런 시각을 가지지 않으면, 오늘날까지도 그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봉함된 책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
7. 구약에서는 은유적인 표현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낸다
우리가 즉각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알게 하는 데에는 그런 방식으로 넌지시 표현하는 것이 매우 합당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쉽게 알 수 있는 것을 들어 영적인 능력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이런 가르침에는 신격의 무한한 겸비함이 나타난다. 영적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탁월함이 우리의 감각에 와 닿을 수 있도록 피조물들의 이름을 들어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사례들은 수없이 많다.
예들 들어,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와 순종의 향기를 장미로 표현하기도 한다. 또 그리스도의 은혜로운 아름다움과 호감을 백합화에 비유하여 표현하기도한다. 그리스도의 가치를 값진 진주로 나타내기도 한다.
복음서에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모세와 모든 선지자들의 글에 나타난 바 자신에 관한 것들을 열어 보여 주신다 모세와 모든 선지자들의 글에 내포되어 있는 것들을 묵상하도록 우리의 영혼을 격려하고자 그런 것들을 언급하신 것이다.
출처 : 청교도 아카데미
글쓴이 : 박성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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