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존스

[스크랩] 로이드 존스, 로마서강해 1권, 4장 오직 값없는 은혜로 (2017수정 김영희강의안)

강대식 2017. 1. 24. 19:13

4장 오직 값없는 은혜로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구절에서 바울은 구속 방법에 대한 그의 일반적인 개요를 계속 말하고 있다. 이 말씀은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아니하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와 족히 비교될 수 있는 진술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믿음에 대한 하나의 완벽한 요지이다. 이 말씀을 분명하게 이해해야 한다는 것은 치명적으로 중대한 일이다. 그러므로 이 구절의 의미를 포착하지 않고 더 계속해 나간다는 것이 아무런 의미도 없다. 이 구절은 기독교 신앙의 본질적인 진술들 중 하나이고 그것의 모든 어휘마다 큰 중요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 구절의 진술은 세 가지 항목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구속이란 무엇인가? 둘째 구속이 어떻게 우리의 것이 되는가? 셋째 하나님께서 그러한 구속을 우리를 위해 주신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던가?

 

- 첫째, 구원이란 무엇인가? 구원이란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의 의미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것은 법적인 또는 법정에서 되어지는 일이다. 즉 우리가 의인으로 판단되었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 인정해 주시며 의롭다고 선포하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칭의는 우리들 안에서 실제적인 변화를 가져오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들에 대한 하나님의 선언인 것이다. 그것은 우리들의 행함에서 오는 열매가 아니고 우리들을 위해 행해진어떤 것이다. 믿음을 가지는 이 순간 우리의 것이 된다. 이 말씀은 진정한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큰 기쁨의 원천이 되는 것이다.

 

됨이라는 단어(현재시상)를 사용하였는데, 바울은 우리가 믿음을 가지는 바로 그 순간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 루터는 카톨릭 신자로 그는 현세에서는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없다고 가르침을 받았다. 그러나 큰 빛이 루터에게 비침으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것이 지금 이 순간에 즉각적으로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 결과 그는 기쁨과 확신을 가지게 되었으며, 이 구절이 종교개혁을 일으켰다.

 

- 둘째, 이 구원이 어떻게 우리의 것이 될 수 있는가? ‘값없이은혜라는 두 단어로 강조하고 있다. 그는 구원이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우리에게 온다고 말하고 있다. 즉 전적으로 무상이라는 것을 전력을 다해 강조하고 있다. 이 말 속에서 그는 우리는 전혀 그것을 받을 만한 어떤 자격도 없다는 것을 선언한다. 우리에 관한 한 그것을 받을 만한 어떤 이유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점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확실한 질문을 던져 보아야 한다.

값없음의 또 다른 사실은 구원이란 분명히 율법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는 뜻이다. 율법은 우리가 응해야 할 요구를 제시한다. 그러나 구원에는 그와 같은 것이 없다. 그것은 전적으로 값없는 선물이고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이다. 은혜라는 말보다 더 놀라운 말은 없다. 은혜라는 말은 전혀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준 과분한 총애나 자비를 의미한다. 그것은 하나님만의 자발적인 사랑의 실천에서 나온 결과이다. 구원은 단순히 값없는 선물만이 아니고 그와 정반대되는 것(진노)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베푸신 값없는 선물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세상에서 소망도 없고, 하나님도 없이 사는 동안에 우리에게 베풀어진 것이다.

 

이 위대한 은혜의 교리를 이해하는 가장 훌륭한 지름길은 율법과 대조시켜 보는 것이다.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다”(1:17). 율법과 은혜의 본질적인 차이는 율법은 죄됨을 나타내기만 하고 그것을 없앨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8:3) 이미 3:20에서 율법으로는 죄를 깨닫는다고 말함므로써 우리 죄를 사해주지 못함을 알려 주었다. 율법은 주로 죄를 통제하는 것이며 그것의 목적은 우리의 죄됨을 드러나게 하는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율법에는 값없는 또는 은혜로운 일이란 하나도 없다. “그러나 이제는”(:21) 율법이 줄 수 없었던 새로운 것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율법과 은혜는 정반대이다.

은혜라는 말이 당신에게 하늘 문을 열어 준다고 느끼는가? 그것은 참으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하나님께 도전했으며 불순종했고 반역했으며 죄를 지었던 것이다. 우리를 그와 화해시킨 것은 그의 은혜이다. 그리고 이것은 분명하고 명백하게 구원에 대한 유일한 방편인 것이다.

 

- 셋째 무엇이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이 말은 가장 중대한 말이다. 비록 구원이 값없는 선물로 우리에게 주어진다 할지라도 이것은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의 결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창조사역에서는 하나님께서 단순히 말씀하시고 명령하시면 되었다. 그러나 신약적인 복음의 본질은 그렇지 않으며, 오히려 하나님의 영원한 공의와 의 때문에 우리의 사죄에 앞서 어떤 것이 일어나야 함을 보여준다. 주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이 단순히 하나님은 사랑이며 그의 사랑 안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신다는 것을 말씀해 주시기 위함이라고 하는 생각은 전혀 그릇된 것이다.

 

말미암아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모든 일, 즉 그의 완전한 순종, 십자가의 죽음, 부활, 그 모든 일을 통해서만 구원이 가능한 것이라는 것을 명백하게 제시해 주고 있다. 하나님께서 용서하신다는 말씀만으로는 불의를 의롭게 하실 수 없다는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순히 구원의 길을 발표하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구원의 길을 닦기 위해서 오신 것이다. 복음이 말미암아(through)"란 말에 걸려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구속(속량)”이란 단어는 신약에서 10회 사용되고 있다. ‘구속의 헬라어 어원은 옷이나 갑옷을 풀어 느슨하게 하거나, 짐승을 풀어 놓는 것, 죄수의 착고를 풀어 주는 것으로 쓰여졌다. 그 후로 이 말은 속전을 받고 죄수나 노예의 사슬을 풀어 해방시키는 것을 의미하여 사용되고 있었다. 구약에서도 그런 의미라는 것을 발견한다. “---사람의 처음 난 것도 반드시 대속할 것이요 부정한 짐승의 처음 난 것도 반드시 대속할 것이며”(18:15) 의미를 종합하면 구속이란 속전을 지불하고 해방하는 권리를 사는 것으로 정의 된다. 구속은 단지 석방의 개념이 아니다. 구속은 값을 지불한 결과로써의 해방을 의미한다. 우리는 응분의 대가를 지불할 수 없다는 것으로 대신 지불이라는 사상에 접하게 된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속하여 인도하여 내기 위해서 오셨고 또한 그는 값을 지불하셨다. 그런고로 우리가 마귀로 인하여 포로로 갇혀 있던 감옥은 열리고 노예였던 우리는 자유롭게 된 것이다. 사도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이라는 교리를 사무치도록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에 대해 분명히 알아야 한다.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 돌려져야 한다. 자기의 공로로 우리를 사시고 자유롭게 하신 분은 그분 예수그리스도이시다.

그러나 이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모든 분기점이 이루어진 것이다. 구속을 가능케 한 것은 그분 주님이시다. 우리의 해방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값을 지불한 것은 그가 실제적으로 오셔서 사셨고, 죽으셨고, 다시 부활하신 일들 때문이다. 그것만이 유일한 길이다. 그를 떠나서는 어떠한 기독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가 오셔서 가르친 것만을 가지고 우리를 구원할 수 없다. 우리는 속함을 받아야 했고, 그는 갈보리 언덕 십자가에서 우리를 속하신 것이다.

 

우리 주님은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셨다. 사도들과 다른 추종자들은 주님의 말씀의 의미를 파악할 수 없었다. 그러나 주님께서 부활 후 그 말씀을 풀어 해석하였을 때와(24:25-26), 그들의 마음이 오순절 성령에 의하여 밝아지게 된 후에서야 그들은 정확하게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알게 된 것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바라볼 때 죄와 정죄감과 죄의 노예인 것밖에는 보이는 것이 없다. 그러나 우리가 그분을 바라볼 때 또한 그가 우리를 위해서 해놓으신 일을 알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화목과 죄와 사단의 속박에서 해방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이 이루어졌으며 열납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3:3)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고전1:30-31)

 


출처 : 청교도 아카데미
글쓴이 : 강대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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