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하나님의 자기 변호
(롬3:25-26) (25)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이 두 구절의 말씀은 전체 성경 가운데 이 두절의 말씀보다 더 중요한 구절은 없다는 것을 알게 할 것이다. 기독교회의 역사는 이 두 절 말씀이 성령 하나님께서 많은 영혼을 어둠에서 빛으로 인도해 내는 방편이었고, 불쌍한 죄인에게 구원의 지식과 구원의 확신을 최초로 주실 때 사용하셨던 말씀이었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 준다.
사도 바울의 위대한 좋은 소식은 지금 구원의 길이 있는데 그것은 율법과 별도의 것이며 우리가 율법을 준수하느냐에 달려 있지 않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거저 주신 길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대속하셨는데 그것은 ‘화목제물’과 ‘피’로 일어났다. 바울은 그 점에서만 머물지 않고 더 나아가 부언 진술을 한다.
- “세우셨으니” “세우셨다”는 말은 ‘확증하셨다’ ‘명백히 했다’는 뜻이다. 거기에 “그를 세우신” 분은 하나님이셨다. 그것은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의도된 일이었다. 그 일은 하나님의 공적인 행위이다.
무엇이 하나님을 그렇게 행하시도록 하였으며 왜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행하셨을까?
“나타내려” ‘보여주다’ ‘증명하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것을 보여주고 증명하고 있는데 그것은 “자기의 의로우심”이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의를 천명하시는 어떤 일을 행하셨다. 그것은 하나님 자신의 영광스런 속성 가운데 하나인, 하나님의 정당성과 고유한 하나님의 도덕적이고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신 의의 성품을 의미하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하나님은 그 자신이 자신의 의로운 성품, 자신의 고유한 의와 공평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으로” ‘---에 대하여’, ‘---을 이유로’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지난 죄를 간과하심을 이유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고 있다.
“간과”는 흠정역에는 ‘사면’이라고 되어 있는데 좋지 못한 번역이다. ‘간과’는 “불문에 부침”이라는 뜻으로 여기에만 사용하였다. ‘간과’는 바울이 의도적으로 택한 중요한 단어이다. ‘불문에 부친다’는 말은 ‘죄를 사면한다’는 것과는 달리 ‘지나치다’ ‘눈감아 버리다’ ‘고려하지 않다’, ‘고의적으로 눈감아 버린다’는 뜻이다. 이것은 바울이 ‘지나침’(유월)의 사상을 전해줄 목적으로 썼던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사면’과 ‘간과’의 차이는 ‘용서’와 ‘심판하지 않음’의 차이인 것이다. 용서한다면 확실히 벌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간과’ ‘지나침’ 등의 용어는 ‘사면’에 미치지 못한다. ‘과거의 죄를 지나침’, ‘눈감아 버리심’이란 뜻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지난(전에 지은)’은 ‘이전에 지었던 죄’라고 해야 할 것이고 바울은 아주 한정적인 시간을 말하고 있다. 그것은 다음 구절 ‘이때에’라는 것과 대조되는 시간이다. 전자는 ‘그때’요 후자는 ‘이때’이다. 그는 그때, 옛 시대, 즉 하나님께서 옛 시대에서의 죄, 옛 언약 아래서의 죄, 구약 시대에서의 죄를 간과하셨다고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때에 행한 어떤 일에 대해 무엇인가를 행하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제 세우셨다는 것이다.
‘길이 참으심’이라는 말은 ‘자제’ ‘관용하심’ ‘관용’을 의미한다. 바울이 말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갈보리 언덕에 벌려 놓으신 이 공적 행위는 구약시대에 대한 하나님의 역사였으며, 그 시대에 하나님은 자제하심과 관용하심 속에서 그때 사람들의 죄를 간과하시고 눈감아 주시고 지나치셨던 것이다.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않으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행17:30) 하나님께서는 모든 세대를 통해서 자신의 표시를 보이셨다. 그 목적은 사람들이 주님을 발견케 함인 것이다.
이 25절의 구절에 대한 진정한 주석은 히9:15에서 발견된다.
“이를 인하여 그는 새 언약의 중보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를 속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히브리서 기자는 옛 언약과 옛 언약 아래서 사람들이 하나님께 드린 희생 제물에 관해 명백히 알 것을 간절히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말하고 있는 것은 옛 제도 아래서는 근본적인 의미에서 죄를 처리할 방안이 없었다는 것이다. 구약 시대의 그것은 단지 죄를 간과하고 덮어두는 하나의 방편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 같은 옛 제사와 희생 제물들은 일종의 육체적인 정결을 위한 것들이었고 하나의 의식적인 결례였으며 그것들은 백성들을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할 수 있게 도움을 줄 뿐이었다. 구약 아래서는 참으로 죄를 처리할 수 있는 희생 제사는 없었던 것이다. 구약의 희생 제사는 장차 오실 이 희생(그리스도의)을 예표하고 있었던 것뿐이다.
- 그렇다면 구약의 성도들은 사죄 받지 못했단 말이냐? 그들은 분명히 용서함을 받았으며 그들이 용서함을 받은 것은 그들이 드린 희생 제사들 때문이 아니었다. 그들이 용서함을 받은 것은 그리스도를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것을 명백히 알지는 못했지만 그들은 그 교훈을 믿었고 믿음으로 제물을 드렸던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어느 날 한 희생 제물을 제시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으며 신앙으로 그것을 붙잡았던 것이다. 그들을 구원한 것은 신약 시대와 같이 그리스도에 대한 그들의 믿음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죄에 대한 심판은 죽음이라고 경고하셨는데, 어떻게 죄를 간과해 버릴 수 있는가? 짐승의 피가 죄를 없앨 수 없는 것은 명백하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죄를 지나쳐 버리실 수가 있는가? 바울 사도는 이제 하나님께서는 세계 무대에서 공적으로 갈보리의 그리스도를 통해 행하신 일로 그것을 우리에게 적나라하게 설명하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수십 세기 동안 그의 진노를 억제하셨던 것이다. 그것을 완전히 드러내지 않으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제 그것을 완전히 드러내신 것이다. 갈보리 언덕의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를 전 세상에 공개적으로 설명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 자신의 의와 거룩의 영원한 성품을 한꺼번에 변증하신 것이다.
갈보리 언덕에서 하나님은 죄에 쏟아 부을 진노를 그의 사랑하는 독생자에게 부으셨던 것이다. 우리의 죄 때문에 여러분과 제게 쏟아졌을 하나님의 분노가 그분 위에 부어진 것이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여전히 거룩하시며 의로우시면서 어떻게 죄인을 용서하실 수 있는가? 그 대답은 오직 갈보리 언덕에서만 찾을 수 있다. 그것은 영원토록 변함없는 계획이었다.
- 하나님께서는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셨는데 그러면 현재 우리가 짓는 미래의 죄를 어떻게 처리하시는가? 그 대답 역시 갈보리 언덕의 십자가 속에 있다.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요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요일2:2). ‘온 세상’ 하나님께서 지나쳐버리심으로 허용하여 두셨던 옛 제도 아래의 모든 죄들, 옛 제도 아래서의 믿는 모든 자들의 죄를 처리하신 것은 십자가 위에서이다. 이후에 저질러질 모든 죄들도 역시 거기 갈보리 십자가에서 처리되는 것이다. 그것을 수행할 방편이 제공된 것이다.
그분은 죄를 위해 ‘단번에’ 제물로 드려졌다. ‘단번에’ 모두 이루어졌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죄를 거기서 그분에게 지우셨다. 여러분이 아직 저지르지 않은 죄도 벌써 해결이 된 것이다. 오직 거기에만 용서의 방편이 있다. 전에 지었던 죄든 지금 지은 죄든 시간에 관계 없이 모든 시대의 죄, 어떠한 죄도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의롭다 하심이 여기에 존재하는 것이다.
-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갈보리의 십자가는 단순히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다는 것만을 그치지 않는다. 만일 십자가가 죄의 용서만을 나타낸다면 ‘피’라는 말에서 끝낼 수 있었다. 그러나 계속 26절로 나아가 부연하고 있다. 십자가는 하나님이 용서하신다는 사실 뿐만 아니라 계속 말하기를 하나님의 용서를 가능케 하는 방도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어떻게 하여 하나님은 용서하시면서 여전히 하나님답게 존재하고 계시는가? 십자가는 하나님을 변호하는 것이다. 십자가는 다른 무엇보다 더 영광스럽게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의, 공의, 거룩, 기타 모든 영광스런 하나님의 속성들을 보여 준다. 만일 여러분이 그 모든 것들을 알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십자가를 알지 못한 것이다.
어떻게 하나님은 의로우시면서 불경건한 자를 의롭다 하실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불경건한 죄인들의 죄를 당신의 아들 안에서 심판하셨다. 죄를 심판하셨다. 하나님은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신 것이다. 우리 대신 다른 분을 심판하셨기에 그는 우리를 값없이 용서하실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단번에 동시적으로 자기도 의로우시며 예수를 믿는 자를 의롭다 하시는 분인 것이다. 여러분이 십자가에 대한 관점과 이해가 이 모든 것을 함유하도록 확고히 하라. 여러분은 건성으로 “하나님은 사랑이며 용서하신다는 것이 전부다”라고 하지 말라. 이것은 영광스런 복음의 본질적인 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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