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소망 안에서의 자랑과 기쁨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롬 5:1-2)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한다” 이신칭의의 3번째 결과를 말하고 있다.
‘즐거워 한다’(흠정역)는 어휘는 적당치 않고 흡족할 정도로 강하지 않다. 바울이 사용한 어휘는 성경 어디에서나 ‘자랑하다’로 번역된다. 이 말은 바울 사도의 문체 중에서 가장 특징 있는 말들 중의 하나이다. 그는 ‘소망으로’ 내다보는 이 ‘하나님의 영광’을 자랑하고 기뻐 어쩔 줄을 모르는 것이다.
-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한다는 것은
첫째, 그것은 환호와 기쁨과 긍지를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 보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우리 믿음의 궁극적인 종국이요 모든 것의 최종적인 목표인 것이다. 구속과 구원의 진정한 목표는 끝내 우리들이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모습을 우러러 볼 수 있는 자리에까지 이르게 하는 것이다. 대제사장인 예수님도 이렇게 기도하셨다.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요17:24).
사도 바울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영광을 바라볼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사실 때문에 그 영광을 볼 것이 틀림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돌에 맞아 죽어가던 스테반이 마음을 쓰는 것은 고통이나 죽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의 모습 복되신 모습이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도 변화산상에서 예수님의 영광을 보았다. 바울도 3층천에 끌려 올라가 그 영광을 보았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 의롭다 함을 얻은 자는 누구에게나 이 복이 옴을 의미한다. 우리 하나님의 존전에 서게 되고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되 어떤 것도 가림 없이 볼 날이 오는 것이다.
둘째, 그것은 우리 자신들이 영광스럽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성화에 대해서는 많은 것을 이야기하지만 영화에 대해서는 조금밖에는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이었고 하나님의 영광을 반사해주는 자들로 창조되었다. 아담으로 인하여 잃어버렸으나 다시 이 영광을 소유할 것이다. 바로 그 점을 사도가 말하고 있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8:30) 이 모든 부요함이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로 말미암아 우리들의 것이 된 것이다.
우리의 육체는 타락의 결과로 고난을 받는다. 그러나 우리가 영화롭게 될 때 우리 몸이 완전해 질 것이고 죄의 모든 흔적은 우리 몸에서 사라질 것이고 죄의 모든 열매가 없어져 우리 모두는 아름다움으로 영화될 것이다.
“생각건데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8:18)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고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나니 그가 우리의 낮은(비천한)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빌3:21)
몸의 구속을 전파하는 것은 기독교의 메시지의 주요한 부분이다. 주님께서 지금 영화로운 몸을 입고 계신 것처럼 우리도 우리 몸의 영화를 받게 될 것이다.
셋째, 우리의 궁극적 영화가 이 세상에서 하나의 과정으로써 출발하였다는 분명한 가르침이 있다. 고후 3: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으로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 일은 현재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다. 우리는 주의 형상으로 변화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중생은 신적 생명의 씨앗이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들의 형상으로 새롭게 창조된 것이다. 그것은 이미 우리에게 일어났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진다면 이 영광의 일부가 우리 안에 있는 것이다. 그것이 아주 작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주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광에서 영광으로 변화되고 있는 것이다. 영화의 사역은 이미 우리 안에서 시작되었으며 우리는 그것을 완전히 내세에 속한 것으로만 돌려서는 안 된다.
- 여러분은 칭의에서 멈추어서는 안 된다. 여러분이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은 영화된 것이다. 여러분은 이 비약이 기쁜가? 칭의만 취하거나 성화나 영화만을 취할 수가 없다. 그것은 전부이든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든지 이다. 우리 모두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나의 영화는 현재 나에게 있어 성화와 그 안에서의 칭의만큼 확실하다. 모든 것을 보증해 주는 것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다. ‘우리가 이미 하늘 보좌에 계신 그리스도와 함께 자리를 같이한 것’(엡2장)이다.
우리가 1-2절(칭의의 결과들)을 확실히 알기까지는 다음 절로 나갈 아무런 자격도 없다. 여러분은 하나님과의 평화가 무엇인지 알았는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은혜 아래 서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그리고 은혜의 보좌 앞에 확신을 가지고 나가서 거룩한 담대함으로 기도하는가? 여러분은 이 하나님의 영광의 소망 안에서 기뻐하고 있는가? 이 문제에 관하여 어떠한 불확실한 점도 있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단순한 소망만이 아니다.
우리가 칭의의 원리를 이해한다는 것은 우리가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로 이것이 바울이 가르치는 바이다. 이 점에서 로마 카톨릭처럼 비성경적인 것도 없다. 칼 바르트도 구원의 확신을 가진다는 것의 가능성을 부인하였다.
여러분은 고후3:18에서 말한 바 같이 벗은 얼굴로 바라보는가? 여러분은 주님의 영광을 얼마만큼 거울로 보듯이 보았는가? 오늘의 교회는 마음 내키지 않는 사람들을 교회로 끌어들이는 데만 관심이 있다. 그러나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의 영광이 무엇인가를 알게 될 때, 우리가 영광에서 영광으로 변화되고 있다는 것을 그들이 보게 될 때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그들은 자청해서 우리에게 올 것이다. 조지 휫필드와 같은 사람이, 영광을 알아 그것을 보고 그것을 나타내기 시작할 때 그들은 모여들었다. 웨슬레나 그 동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교회들은 비좁아서 노천에서 설교해야만 했다.
만일 우리가 이 영광에 대해 복음을 전하려 한다면 교회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 영광을 느끼는 면에서 무언가 모자라고, 그 영광을 기뻐하지도 않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교회 밖에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세의 얼굴 속에서 그 하나님의 영광의 광체를 보았을 때처럼 그들은 우리의 말을 듣기 시작할 것이다. “이 사람들을 보라. 그들이 이 세상에서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장벽’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사건에도 불구하고, 평화로운 저들의 삶과 성품의 놀라움을 보라.” 그들은 우리의 비밀을 알아보려 할 것이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살고 싶다면 그 답은 고후 4:17-18이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세상과 세상의 외면적인 것에서 돌아서서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에 시선을 돌리고 그것에 온 정신을 집중시키라. 그것은 의지와 훈련의 노력을 요구한다. 그것은 성경연구에 열심을 내고 그것을 묵상하는 것을 의미한다. 성경 말씀을 통해 주님을 찾으시라.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그를 나타내시기를 구하라. 그리고 주님께서 자신을 여러분에게 나타내시기를 간청하라. 여러분이 그에 대해 어렴풋한 그림자를 붙잡기만 하면, 그리고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는 영광을 포착하기만 하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자랑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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