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존스

[스크랩] 로이드 존스, 로마서강해 2권, 6장 부끄럽게 하지 않는 소망 (2017수정,김영희강의안)

강대식 2017. 4. 7. 16:28

6장 부끄럽게 하지 않는 소망

 

(5:5)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1-2절에서 사도는 이신칭의의 결과인 우리 구원의 확실성과 최종성을 보여주려 한다. ‘하나님과의 평화를 가져다 줌과, ‘은혜 안에 서 있게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게함으로써 이다. 3-4절에서 우리가 당하는 시험과 환난이 그 소망을 요동케 하기는 커녕 그것을 더욱 확신케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절정이 5절이다. ‘소망이 부끄럽게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가 의미하는 바는 이 세상에서나 최후 심판날에 부끄럼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 “소망이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1차적으로 이 세상에서 결코 부끄럼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무엇이 일어나든지 그것은 문제가 아니다. 시련과 문제들과 환난과 고난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소망을 갖고 있으면 결단코 부끄럼을 당치 않을 것이요 부끄럼도 느끼지 않을 것이요 절망하지도 않을 것이요, 밑으로 뚝 떨어졌다고 느끼지도 않을 것이다.

바울은 딤후1:2에서 이를 인하여 내가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왜냐하면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는 믿음과 신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실망하지 않는다.

기독교 신앙에 관해 분명치 않은 사람은 환경을 부끄러워한다. 바울은 옥에 갇혀서 죽을 날만 기다리면서 디모데에게 말하고 있다. 1:8에서 그러므로 네가 우리 주의 증거와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 말라고 한다.

 

소망이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은 긍정 대신 부정법을 사용함으로 적극적으로 역설하고 있다. 바울이 정말 의도하는 바는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거나 부끄러워할 일이기는 커녕 오히려 그것을 자랑하게 된다는 것이다. 진정으로 이 소망을 얻을 것을 아는 사람은 시련과 환난들을 극복할 뿐 아니라 그것들을 자랑할 것이고 그것을 영예롭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한다는 것은 우리가 넉넉히 이긴다고 하는 말을 달리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넉넉히 이기느니라(8:37). 우리는 시련을 참아내고 그것을 통과할 뿐만 아니라 환난을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자랑할 수 있다.

 

-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때문이니)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였다. 순교자들은 그래서 죽어가면서 잔인한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미소를 지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그들이 다가가고 있는 영광을 보았고 그 영광을 어렴풋하게나마 체험했기 때문에 그들은 그 영광을 확신했던 것이다.

우리들에게 이 최종적인 확신을 주는 것은 무엇인가?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바울은 때문이다라고 그 이유를 말하고 있다.

첫째,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하였다.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이 아니라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다.

둘째, “부은 바 됨” ‘흘러 넘친’, ‘퍼부어졌다는 의미이다.(2:17)

셋째, “안에는 각 부분에 침투하여 흘러나오기까지 채워지는 것을 의미한다.

넷째, “우리의 마음마음은 우리의 됨됨이와 성품의 핵심이다. 이지와 정서, 느낌 감수성을 내포한다.

성령은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졌다. 성령은 우리들로 하여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풍부하게 확신하도록 하신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흘려 넘쳐난다면 아무런 의심도 없이 확신하게 될 것이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관련된 이 확신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것은 성령께서 하신 것이지 논리의 귀결로써 도달한 것이 아니다. 우리의 지적인 추론을 초월하여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주시는 성령에 의한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확신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가장 중대하고 가장 큰 가치를 지닌 것이다. 슬프게도 20세기에 있어서 이 가르침처럼 무시를 당했던 진리의 국면은 없다고 확신한다. 이것은 믿음으로 그것을 가지라고 하는 해로운 가르침이 낳은 열매들 가운데 하나이다. 이것은 믿음으로 가지는 것이 아니다.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해 주시는 것이다. 베드로는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 사이의 관계는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한다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에게 가능한 최고의 확신 형태이다. 성령께서 그것을 우리 마음에 부은 것이다.

 

몇 가지 간증)

1797년에 죽은 헨리 벤이 헌팅톤 백작 부인에게 어린 다섯 자녀를 두고 아내가 죽은 직후에 쓴 편지, “저는 하나님의 마음은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랑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이 확증은 어떤 추론이나 논리로 된 것이 아니라 내 영혼에서 육체적인 눈에 비치는 태양처럼 비추는 하나님의 빛에 의하여 된 것입니다. 그녀는 갔습니다. 그런데도 만사가 형통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내게 주신 성령의 권능으로 소망에 겨워 있습니다. 제가 환난 가운데서 더욱 더 즐거워합니다. 곧 슬픔의 사람은 마른 땅에 강물과 같고 흑암 중에도 노래를 부릅니다.”

 

찰스 시므온, “이것은 그것을 받지 못한 이들은 이해하지 못하지만 대부분의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은 확신에 차서 누리는 하나의 축복이다.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묘사해야 좋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그것은 주로 영혼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확신에 의해 일으켜진 마음에 인침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메드리의 존 프레처의 저서에서, 주님은 나는 자신을 나타내리라고 하신다. 그것은 성령께서 오실 때 현실화될 일에 관한 주님의 약속이다. 우리는 그것을 믿음으로 가지는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것을 알고, 맛보았고, 그것을 느꼈다. 그것은 성령에 의해 심령에 인침을 통해 느끼게 되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것은 직감적인 무엇이요, 체험적인 것이다. 그것은 감정과 느낌에 영향을 준다. 그것은 직접적이고 직관적인 것이지, 간접적이고 중개를 통한 것이 아니다. 분명히 성경 전체에서 이보다 더 값진 것은 없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거기에 대해서 듣는 것이 얼마나 적은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다 이 체험을 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열려 있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을 받아야 한다.

 

폐병을 앓다가 36세의 나이로 죽은 리차드 로바츠, “내가 3주일 전 병이 악화되고 난 뒤 주님께서 가까이 계셔서 당신의 사랑을 아주 비상한 방법으로 내 영혼에 확증시키셨다. 나는 나의 무가치함과 지난날의 불신앙을 깨닫고 깊이 겸손해졌다. 그러나 만세 반석 위에 굳건히 서 있는 자신을 느꼈다. 그리고 말할 수 없는 기쁨으로 몸에서 내가 떠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 가지 일이 내 마음을 가득 채웠다. 즉 내가 전에 하나의 모든 충만으로 충만한 것같이 느꼈던 바로 그 위대한 일이다. 전에는 만족할 정도로는 느끼지 못했었다.”

 

토마스 굳윈, “주님께 그것을 간청하라. 주님께 그것을 간청하라. 그것을 구하고 포기하지 말라. 이것은 눅11:13을 그 나름대로 표현한 것이다. 굳윈처럼 주님께서 친히 나타내 주십사고 구하시고 간절히 바라라. 그에게 구하라. 적은 것으로 만족하지 말라. 그는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에게 그리고 이렇게 간절하게 그를 찾는 이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시기를 약속하셨다. 지난 역사의 모든 성도들을 헨리 벤이 묘사한 바와 같이 부어진 사랑과 이 직감적인 지식을 간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연역의 논리의 결과가 아니다. 우리 생명의 중심에서 솟아나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이시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늘에서 비추는 태양 빛 아래 있는 것처럼 그 사랑을 확신케 하는 것이다.

 

-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분의 마음에 부은 바 되었는가? 여러분은 말할 수 없는 기쁨과 충만한 영광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즐거워하고 있는가? 내가 볼 때 그것은 기독교와 교회를 창설했던 초대교회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주어졌던 것이 아닌가 한다. 그것은 오순절 날의 사람들에게 일어났고 전 교회 역사를 통해서 셀 수 없이 많은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일어났다. 그것은 진정으로 그것을 찾는 이들에게 일어났다. 왜 여러분이 그것을 몰라야 하는가? 왜 하나님의 사랑의 햇빛 속에서 여러분이 녹아지기 위해서 온 우주의 어느 것보다도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더 확실히 알지 않는가? 하나님께 그것을 구하라.

소망이 부끄럽게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되었기 때문이다.”


출처 : 청교도 아카데미
글쓴이 : 강대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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