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환난과 믿음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롬 5:3-5)
1-2절에서 바울은 우리에게 이신칭의의 결과로서 우리의 구원을 확신할 수 있는 근거를 말했다. 그것을 말하고 난 뒤 바울은 “이뿐 아니라”는 말로 계속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우리가 구원받았으며, 하나님의 자녀들이며 우리를 기다리는 그 영광을 받기로 되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또 다른 증거는 시험과 고통과 환난을 당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혹독하고 날카로운 시험과 환난을 겪어내야 한다. 이것은 지극히 중요한 과제이다. 신약성경 가운데 이 주제보다 더 자주 다루어지고 있는 것은 없다. 주님께서 친히 그 문제를 주님의 공생애의 마지막 부분에서 다루기 시작하셨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
바울은 교회를 둘러볼 때마다 “우리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행14:22)고 강조하였다. 이 세상에서의 시험과 고통과 시련을 대하는 방식보다 그 사람의 신앙고백을 시험하는 더 중요하고 예리한 시금석은 없다. 시련과 환난은 기독교 신앙과 이단들을 구별해주고, 시련과 환난은 ‘신앙주의’와 참된 믿음 사이를 분간해준다.
이단들은 처음에는 많은 것을 나타내 위장을 하고 그 점에 대해서는 어떤 것도 가르치지 않고 가르칠 수도 없다. 왕상18장의 갈멜산의 엘리야는 혼자 850명의 거짓 선지자들을 맞아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들의 신 바알에게 도전했다. 그들은 부르짖고 기도했지만 응답이 없었고 하나님께서는 불로 응답하셨다. 진리와 거짓 사이를 시험하는 방법은 위기의 시기에 또는 그것이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때에 무엇이 일어나는가를 살펴보는 것이다.
우리가 정말 도움이 필요할 때 그것을 주지 못하는 믿음이 있다면 그것은 기독교 신앙이 아니다. 시련과 환란은 언제나 우리가 ‘신앙주의’라 묘사할 수 있는 것과 참된 믿음 사이를 분간해 준다.일종의 신앙주의만 갖고 있는 사람은 시험과 환난이 올 때 전부 실패하게 된다. 우리 주님은 이것을 씨 뿌리는 비유 가운데서 가르치신다.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마13:21).
- ‘환난’은 역경과 압박과 곤경과 어려움과 질병 또는 핍박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은 시련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1) 불평이나 불만을 토로하지 않으며 자기가 혹독하게 당한다고 느끼지 않고 자기의 신앙을 전혀 의심하거나 버리지 않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2) 단순히 철학적인 태도로 역경들을 견뎌내는 것만도 아니다. 자기에게 닥친 환난을 부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체념하는 것만은 아니다. 기독교는 단순한 금욕주의에 불과한 스토아주의가 아니다. 용기와 굉장한 의지의 노력으로 스토아 철학은 환난을 통과하여 나간다. 그리스도인의 태도는 그것이 아니다. 적극적인 체념이 아니다.
3) “다만 이 뿐만 아니라 역시 환난 중에도 즐거워(영광스럽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들을 자랑하고 즐거워하고 영광스럽게 생각하는 것이다. ‘중에도’라는 말이 가장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거워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훨씬 초월한다. 사도는 우리가 그 때문에 그로 인해서 기뻐한다는 것이다. 환난에도 불구하고, 환난 가운데에서라도가 아니라, 우리가 당한 환난 때문에 환난으로 인해서 즐거워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신약의 보편적인 가르침이다. 주님께서는 “의를 위하여 핍박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마5:41).
사도들,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행5:41).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고후4:17).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빌1:29).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약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약1: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험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그리스도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벧전4:12-14)
- 어떻게 실제로 이런 일을 이루어 나가는가?
그것은 어려움이 닥칠 때 적극적으로 기뻐하고 자동적으로 생각도 없이 하나님을 감사하고 찬양드리기 시작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그의 평강한 열매를 맺느니라”(히12:11) 사도는 자기학대(masochism)를 가르키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사도는 우리가 이런 일들을 좋아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가 말하는 바는 우리는 그것들을 기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자기의 믿음을 행사하여 환난을 즐거워할 수 있는 것이다. 시련과 환난이 올 때 처음에는 고민하고 불안해한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어 버리는 것이 아니다. 그 환난을 처리하기 위해 전진한다. 그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그 앎이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목적과 방법에 대한 지식과 통찰이다. 바울은 이 환난과 고난을 기뻐하고 자랑할 수 있는 이유는 환난이 인내를 이루는 줄을 우리가 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내는 정절을 의미한다. 또한 참아 견디어 내는 능력을 말한다. 확고부동한 것을 의미한다. 바울은 환난이 이런 인내와 계속 견뎌냄을 산출한다고 한다.
시험과 환난과 문제에 봉착하게 될 때 우리가 진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우리는 문제들만 바라보지 않을 것이다. 주님께서 하셨던 말씀과 약속들을 기억해 낼 것이다. 새로운 환경이 그로 하여금 새로운 은혜와 능력이 필요함을 깨닫도록 하면, 시험과 환난의 문제를 가지고 주님에게로 나아가게 된다. 시험과 환난은 늘 잊고 있기 쉬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잘하고 있다고 과대평가하고 있는 자신을 돌아보고 알게 한다. 그리고 그때 우리가 얼마나 주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지를 알게 된다. 시련은 우리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그려주기 때문에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해서 좀 더 균형 있고, 더 깊이 있고, 더 크고 진실한 관점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 결과 더 큰 시험이 올 때 흥분하여 당황하지 않는 견고한 사람이 된다. 세상에서 우리는 많은 환난을 당할 것이고 그 환난들은 우리들을 도와 견고케 해줄 것이다. 환난은 인내를 이루기 때문이다.
바울은 인내가 진정으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증거로 인도한다는 것이다. 환난은 우리를 테스트하고 우리가 진정으로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인내는 훌륭한 시금석이다. 그 시험에 합격하는 사람은 그가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는 증표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약1:2-3, 12) 인내는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자녀들로 인정받았는지 거짓 신앙고백은 아닌지 결정하는 시금석과 시험을 제공한다.
- 시련과 환난이 어떻게 이 일을 하는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험하고 있다는 바로 그 사실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는 것이다.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만일 너희가 징계를 받지 않으면 사생자요, 아들이 아니니라”(히12:8). 바로 그 점이 그리스도인이 시험받을 때 기뻐해야 하는 이유이다. 아직도 시련과 징계도 경험하지 못한 그리스도인은 다시 자신을 심각하게 시험해 보는 것이 좋다. 환난은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 줄 뿐 아니라 동시에 나의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시험하고 증명한다. “그가 나를 죽일지라도 나는 그를 믿겠노라” 참다운 그리스도인은 욥과 같이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베드로는 “너희의 믿음이 금보다 귀하다”(벧전1:7)고 했다. 금을 단련할 때 어떻게 하는가? 용광로 속에 집어 넣어서 불순한 모든 찌꺼기를 태워 없애서 순수한 금만을 얻게 된다. 환난과 시련도 그런 일을 한다. 환난은 우리를 시험하고 증험하고 우리 안에 참된 것을 제외하고 전부 제거해 버리는 것이다. 비행기를 만들거나 다리를 놓을 때 강철은 그 강도를 시험해 봐야 한다. 시험을 통과한 후에 우리의 믿음이 이전보다 훨씬 낳아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믿음은 순수하게 되고 더 강해진다.
-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이루나니” 환난은 우리로 하여금 인정(증명)받게 한다. 연단은 다시 소망으로 인도해서 소망을 이루게 한다.
이 소망은 2절에서 언급한 소망과 같은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의 소망 중에(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바울은 소망으로 시작하여 소망으로 끝난다. 우리는 의롭다 함을 받은 후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였다. 그러나 고난의 용광로를 지난 다음, 시련과 환난을 통과한 다음 나는 전에 가졌던 것보다 더 큰 소망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바로 그 때문에 우리는 이 환난 중에 기뻐하고 즐거워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 그리고 그의 독생자의 형상을 완전히 본받게 하도록 이끌어 가기를 원하신다. 환난은 우리들로 하여금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돌아가게 함으로써 또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줌으로써, 어떠한 시련과 어떠한 부족에도 충분한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와 권능에 대한 생생한 체험을 하게 함으로써,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목적에 대한 절대적인 증거를 주는 것이다. 우리는 환난을 주신 데 대해 하나님께 감사한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1). 나는 전보다 나아졌다. 하나님의 사랑을 더 확신케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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