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거널

[스크랩] 윌리엄 거널, "그리스도인의 전신 갑주", Ⅹ. 그리스도인의 투구

강대식 2017. 3. 31. 16:55

. 그리스도인의 투구

구원의 투구와....”(6:17)

 

전신 갑주를 구성하는 대부분의 무기가 그러하듯 투구 역시 방어용 무기에 속한다. 바로 그리스도인의 영적 전투에 있어서 방어가 우선적이고, 따라서 방어용 무기가 주된 역할을 맡는다고 성경은 암시한다.

 

하나님께서 모든 성도들의 마음속에 풍성한 은혜와 보물을 주셨는데 악의에 찬 사탄이 그것을 뺏으려고 치열한 전투를 벌인다. 이러한 사탄과의 전투에서 이기려면 먼저 그의 공격을 막아내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사탄과의 전투에서 승리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잃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사탄과의 전투에서는 공격보다 방어가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를 이루는 방어용 무기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를 알아야겠다. 그리스도의 군병으로서 당신은 하나님께서 주신 보배를 지키기 위해 항상 전신 갑주를 입고 방어 자세를 취하고, 사탄의 급습을 막아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당신 주변에 그어 놓으신 선 밖으로는 나가지 마라. 다시 말해서 사탄이 다가와 당신을 유혹하거나 공격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당신 (하나님이 정하신) 선 밖으로까지 나아가 일부러 사탄을 부추겨 공격을 유도할 필요는 없다.

 

사탄의 공격 무기가 그리스도인에게 해를 입힐 때라도 그리스도인은 사탄의 무기를 사용하여 반격을 가해서는 안 된다고 성경은 말한다.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벧전3:8-9). 전신 갑주에는 복수를 위한 무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즉 사탄의 불화살을 막기 위한 방패는 있으나 사탄에게 응수할 욕설과 같은 공격용 화살은 없다.

 

전신 갑주의 다른 부분과 투구와의 연계성에 대해

 

먼저 접속사 ‘And’를 주목해 보자. 전신 갑주의 각 부분은 하나로 섬세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각각 독립된 역할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고리고리가 연결되어 하나의 사슬을 이루듯 한 벌의 갑옷을 이룬다.

 

하나님의 모든 은혜도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하나가 강해지면 나머지도 강해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하나가 손상을 당하면 관계된 다른 부분에도 손상을 주는데, 예를 들어, 사랑이 식을 때엔 순종이 멈추게 된다. 순종이 비틀거리면 믿음이 약해진다. 약한 믿음은 소망을 흔들리게 한다. 소망이 동요하면 인내가 파손된다.

 

지붕 위의 구멍 한두 개를 수리하지 않고 방치하여 집 전체가 위험해지도록 만드는 사람이야말로 어리석기 짝이 없다. 혹시 당신은 전신 갑주의 어느 한 부분이라도 약해진 부분을 수리 보강하는 데 태만하지는 않은가?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들은 우리 몸의 각 지체보다 더 강한 결속력을 필요로 한다.

 

성벽의 작은 파손으로 인해 성 전체가 함락되는 수가 있다. 죄의 유혹을 받았을 때 그것을 하나의 죄로 여기지 마라. 죄도 쇠고리처럼 줄줄 연결되어 따라다닌다. 그러므로 당신이 가장 거절하기 힘든 하나의 죄를 끊어버린다면 그 뒤에 따라다니던 다른 죄들도 함께 단절시킬 수 있다.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2:10).

 

1. 구원의 투구, 과연 무엇인가?

 

사도 바울은 다른 서신서에서 구원의 소망의 투구”(살전5:8)를 쓰자고 하였다. 그 의미를 먼저 살펴보자.

 

투구에 비유된 구원의 소망의 본질

 

소망이란 하나님의 초자연적 은혜로서 믿는 이들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좋은 것을 아직 받지 못하거나 부분적으로만 받았지만 그리스도를 통해 온전히 다 받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바라는 것이다.

 

(1) 소망의 창조자

소망의 창조자는 모든 은혜의 하나님”(벧전5:10)으로 불린다. 이는 모든 은혜를 주실 뿐 아니라 지켜주시는 뜻으로 역사하시는 분, 다시 말해서 은혜의 씨를 뿌리시고 가꾸시는 분이라는 뜻이다. 인간은 작은 풀 하나도 만들거나 자라게 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마음속에 은혜의 작은 씨앗을 심거나 가꾸는 것도 불가능하다. 하나님은 창조주시다. 그들 안에 그 어떤 선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다.

 

(2) 소망의 주체

참 소망은 그리스도의 신부 외에는 가질 수 없는 귀한 보석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를 모시지 않은 것과 소망은 공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2:12). 떼려야 뗄 수 없는 혈족과 같은 소망과 믿음의 관계에 대해 살펴보자. 먼저 시간의 관점에서 볼 때 믿음과 소망은 그 어느 쪽도 다른 것보다 앞서거나 뒤서거나 할 수 없으나, 각각의 본질이나 역할로 따져보면 믿음이 소망보다 먼저이다.

 

먼저 믿음은 진실되고 신실한 말씀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통찰하게 한다. 그 다음 소망은 우리의 영혼을 부추겨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것을 기다리게 한다. 오지 않을 것이 확실한 사람을 맞이하기 위해 달려나가는 사람이 있을까? 하나님의 약속은 신부에게 보내는 하나님의 사랑의 편지로서 그 안에는 하나님의 마음과 장차 하실 일들이 소상히 기록되어 있다. 믿음은 그 편지를 읽고 기쁨으로 보듬어 안으며, 소망은 신랑을 태운 수레를 기다리며 창 밖을 내다본다.

 

(3) 소망의 객체(대상)

소망과 믿음은 둘 다 약속을 구심점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그 둘 사이엔 한 가지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믿음은 선과 악 두 존재를 모두 믿고, 소망은 악에 대해서는 가타부터 말하지 않고 선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약속을 근거로 하지 않는 소망은 내릴 바닥을 찾지 못한 닻과 같다. 소망의 닻이 내려질 곳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맺어진 약속이다. 다윗은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119:81)라는 고백을 통해 어디에 자신의 배를 정박시키고 닻을 내릴지 밝혔다. 그리스도인들이 품고 있는 가장 큰 소망을 이루시는 하나님은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신다(84:11).

 

하나님의 약속 안에는 온갖 좋은(good) 것이 담겨 있듯이 그 약속 자체가 선하다(good). 소망의 객체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모든 것이다. 하나님은 그 자체가 가장 선한 존재이며, 그분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을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가장 큰 기쁨이다. 그러므로 참 소망이란 이스라엘의 소망이요 생수의 근원”(17:13)이신 여호와께서 우리의 영혼을 들어 올려 가까이 이끄시기를 바라는 것이다.

 

소망의 객체는 좋은 것을 바랄 뿐만이 아니라 앞으로 성취될 언약을 믿는 것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11:1)라는 말씀처럼 미래는 소망의 근본 객체인데 이것이 바로 믿음과 다른 점이다. 믿음으로 인해 언약이 존재하고 천국과의 교통이 가능하며, 믿음으로 인해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천국에 이른 것처럼 살 수 있다. 믿음은 우리는 승리자가 될 것이라기보다는 우리는 승리자라고 현재 시제로 말한다. 그러나 소망은 될 것이다(shall)’라는 미래 시제로 언약을 대변한다.

 

소망은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을 기다린다. 그 약속이 성취될 때 소망의 자리를 기쁨과 사랑이 대신하게 된다.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었을 때, 사탄의 위협이 끝났을 때 모든 소망은 본연의 의무를 다하고 사라지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가 바라던 것이 실현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지옥에 떨어진 자는 그곳에서 벗어날 소망을 영영 잃은 채로 남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인하여 언약이 성취되기 때문에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의 도움을 받는다. 즉 우리의 모든 소망은 그리스도로 인하여 존재하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우리의 소망”(딤전1:1)으로 일컬어진다. 또한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을 통해 우리는 소망을 지닐 수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우리 안에 계신 성령으로 인하여 소망은 우리의 것이다.

 

소망이 구원의 소망으로 불리는 이유

 

(1) 구원에는 소망의 모든 객체가 내포되어 있다

구원이라는 단어에는 언약이 성취되고, 하나님의 자비가 충만한 천국의 기쁨이 담겨 있다. , 모든 좋은 것은 하나님의 언약 속에 다 내포되어 있으며 그것이 총집결된 것이 바로 구원이다. 따라서 구원은 그리스도인들이 바라는 것의 궁극적인 대상이며 그 안에 나머지 모든 소망들이 담겨 있다.

 

(2) 구원의 소망은 세상의 소망과 구별된다

자연인은 현세의 삶 속에 소망을 두고 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데려가지 않기를 바란다. 그들은 구원받는 것이 소망이라고 말하면서도 사실상 이 세상에 머무는 것을 더 바란다. 즉 그들의 구원의 소망은 천국에 있기보다는 끔찍한 지옥에서 벗어나는 것에만 있다. 그러나 논제의 핵심은 그들이 지옥이나 천국보다 이 세상 자체를 더 좋아한다는 것이다.

 

소망을 투구에 비유한 이유

 

(1) 투구는 영혼을 보호한다

투구가 몸에서 가장 중요한 머리를 보호하듯 구원의 소망은 인간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인 영혼을 보호한다.

 

(2) 투구는 마음을 담대하게 한다

투구가 병사의 머리가 다치는 것을 막아주듯이 구원의 소망은 그리스도인의 마음이 약해지는 것을 막아준다. 구원의 투구를 쓴 자는 누구든지 결코 수치를 당하지 않을 것이며 거룩하신 하나님 안에서 자부심을 느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직접 이것을 허락하시고 소망 안에서의 기쁨을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네가 나를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나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49:23). 하나님에 대한 확신은 다윗으로 하여금 원수들에게 둘러싸인 가운데서도 담대하게 했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27:3).

 

물 위로 머리를 들고 있는 한 물 속에 빠져죽지 않는다. 그 어떠한 위험 속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이 머리를 들 수 있게 하는 것이 소망이다.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속량이 가까웠느니라”(21:28).

 

2. 투구의 사용

 

소망은 그리스도인들이 죄와 사탄과의 전투를 지속하는 한 늘 필요로 하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투구는 특별한 경우에만 착용하고 보통 때에는 걸어 두었다가 비상 사태가 오면 다시 쓰곤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벗기시고 영광의 면류관을 씌워주실 때까지 늘 착용해야 한다. 소망은 그리스도인들이 전장에 나아가 마지막 전투를 마칠 때까지 함께 하며 기다린다. 그리스도인들은 땅 위에 사는 한 소망을 머리에 두고 살아야 하며, 소망을 머리에 두고 있는 한 천국 아래 거한다.

 

소망과 가치 있는 삶

 

(1) 소망은 정욕으로부터 자유케 한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이 다가왔다는 소망을 주었을 때 그들은 자유로이 박차고 일어나 약속의 땅을 향해 나아갔다. 천국에 대한 소망은 즉시 정욕들을 십자가에 못박아 버릴 방법을 찾게 된다.

 

(2) 소망으로 인해 세상의 즐거움을 거부하다

물질주의의 이 세상 조직은 사람들을 노예화시키고 발목에 족쇄를 채워 절뚝거리게 만든다. 구원에 대한 굳건한 소망만이 우리가 움켜쥐고 있는 세상 소망을 빼앗아 갈 수 있다. 천국에 시선을 두고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눈을 떼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3:20).

 

(3) 소망은 성도를 담대하게 만든다

이 소망을 일컬어 산 소망’(벧전1:3)이라고 했으며, 이것을 가진 자는 담대하다. 그런데 왜 소망을 지녔다고 하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데 축 늘어져 있거나 빌빌대는가? 그것은 그들의 소망 자체가 생기를 잃었기 때문이다. ‘소망이 없는 것생명이 없는 것은 같다.

 

(4) 소망은 거룩한 욕구를 자라게 한다

구원에 대한 우리의 소망이 높이 떠오를수록 우리의 마음은 거룩한 욕구로 점점 더 채워질 것이다. 영혼의 기쁨을 조금이라도 맛본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의 전체를 소유하고자 하는 열망이 있다. 현재의 소망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더 큰 것을 기대하게 한다.

 

소망은 엄청난 시련을 겪는 그리스도인들을 도와준다

 

구원의 소망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아무리 큰 시련도 견뎌내게 한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인내란 자기가 지고 갈 짐을 견뎌내는 것이다. 시련을 당할 때엔 그 짐이 너무 무거워 짐을 받쳐줄 널빤지 같은 것을 필요로 한다. 이 때 소망은 짐과 등 사이에 부드러운 완충 장치 역할을 하여 고통을 덜어준다. 반면에 소망이 없을 때에는 아주 가벼운 짐도 무겁게만 느껴진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언약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살전1:3)로 불린다.

 

고통받는 그리스도인에게 미치는 소망의 영향

 

(1) 소망은 고통받는 그리스도인들을 잠잠케 한다

소망을 지니고 있지 않는 사람은 염려가 생겼을 때 아우성을 친다. 그러나 소망은 우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에라도 어머니가 우는 아기를 가슴에 안아 잠재우듯이 혼란스러운 우리의 영혼을 잠잠케 한다.

 

(2) 소망은 고난받는 영혼을 기쁨으로 채워준다

소망은 고난받는 영혼이 눈물을 줄줄 흘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미소지을 수 있도록 위로한다. 이것을 일컬어 소망의 담대함과 자랑’(3:6)이라고 했다. 소망은 고난 속에서 더 큰 기쁨을 만들어 낸다.

 

(3) 소망은 고난받는 영혼을 고무시킨다

-소망이 전하는 기쁜 소식은 현재의 고통과 상처를 치유한다.

-소망은 현재의 고통을 다가올 구원의 기쁨과 비교할 바가 못 된다는 확신을 준다.

-고난을 배제한 구원은 우리 안에 거할 수 없다고 소망이 가르쳐 준다.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8:17).

 

하나님께서 언약의 성취를 지연시킬 때의 소망과 위로

 

하나님께서 언약을 성취하시기까지 소망은 현재의 짐을 가볍게 하고, 언약이 성취되기까지 기다려야 할 긴 시간을 짧아 보이게 한다. 따라서 소망이 없으면 힘도 없다.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3:26). 약속된 은혜가 주어지지 않을 때 소망은 신음하나 투덜대지는 않는다. 이 신음은 기도 가운데 하나님을 향해 우리의 영혼이 내뿜는 한숨으로 오히려 두려움의 짐을 가볍게 한다. 그러나 소망을 버린 영혼의 신음 소리는 하나님을 향한 분노로 내뿜어진다. 소망은 우리로 하여금 기다릴 수 있게 한다.

 

3. 구원의 투구에 관한 원리 적용

 

구원의 투구 본질

 

많은 사람들이 종이로 만든 모자보다 별로 나을 것이 없는 싸구려 투구로 만족하고 있다. 당신의 투구는 무엇으로 만들어져 있는지 확인하라. 왜냐하면 당신의 머리를 노리고 있는 뱀, 즉 사탄의 공격에 의해 투구가 깨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자는 모래 위에 세워진 소망으로 안위함을 얻는다. 그러나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소망의 뿌리를 성경에 두고 있다. 구원을 빙자한 여러 가지 소망들이 있지만 그 정통성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 아닌 한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구원의 투구를 가진 사람들을 위한 권면

 

(1) 말로는 형언하기 어려운 선물에 대해 감사하라

구원의 소망을 얻고서도 감사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난 도저히 믿을 수 없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유업을 잇게 하시나니.....”(벧전1:3-4). 구원의 소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2) 소망에 합당한 삶을 살아라

당신의 소망은 천국에 있고 당신은 지금 이 땅에서 살고 있지만 두 가지가 서로 부합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어떤 사람이 왕의 옷과 거지의 옷을 함께 걸치고 있다면 그는 사람들로 하여금 비웃음을 사게 될 것이다. 성경은 믿음과 일치되는 삶을 강조하고 있다. “성도들의 합당한”(16:2) 행동을 하고,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1:27) 살아야 한다.

 

누구와 교제를 해야 할까? 당신이 가지고 있는 소망과 같은 소망을 지닌 사람들이 아니겠는가!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벧후3:11-12). 모든 믿는 영혼은 그리스도의 신부이다. 신랑이 올 때 신부가 더러운 옷을 입고 맞이하겠는가? 그리스도인들이여, 소망은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무기이다. 또한 유혹에 이미 빠졌을 때에도 소망만이 그곳에서 헤어나올 수 있는 무기이다.

 

구원의 소망은 세상에 속한 어지러운 욕망들을 흩어버리고 대신 천국을 향한 마음을 뜨겁게 달군다.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벧전1:13). 우리가 어둡고 우울한 집에 거하기를 싫어하듯이 그리스도께서도 슬픈 마음속에 거하기를 별로 원치 않으신다. 모든 창문을 열어제치고 하나님의 언약으로부터 쏟아져 나오는 빛이 안으로 들어오게 하라. 소망에 어울리는 것은 기쁨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라. 여호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과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도다”(147:11).

 

왜 우리는 소망을 강하게 해야 하는가

 

약한 믿음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흔들리는 소망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방법을 부지런히 사용하여 소망을 세우고 그것을 견고하게 해야 한다. 닻이 걸리듯 언약 위에 안전하게 세워진 소망은 소망이 없는 사람들을 삼켜버리는 절망과 공포 앞에서 의연할 수 있다. 순금일수록 불순물과 다른 찌끼를 걸러내기 위한 연단을 거치며 그렇게 함으로써 견고해지고 값어치가 있어진다. 이렇게 단련된 소망일수록 더 강하다. 성경은 이러한 소망을 일컬어 소망의 풍성함”(6:11)이라고 했다. 이제 이러한 소망을 세우는 데 필요한 거룩한 열심을 세 가지 견지에서 부추기고자 한다.

 

(1) 이것은 당신의 의무이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부지런함으로 소망의 풍성함”(6:11-12)에 이르라고 직접 말씀하셨다. 그리스도인들은 많은 시험과 시련을 통과한다. 확고한 소망을 얻기 위해 힘껏 노력하라. 성경은 성도의 약한 은혜는 게으름탓으로 돌리고 있음을 주목하라.

 

(2) 소망을 강하게 하기를 거부하는 것은 그리스도와 그 구원을 하찮게 여기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것에 많은 가치를 부여할수록 그것을 얻기 위해 보다 열심을 낸다. 천국에 대해 별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은 그곳을 아주 우습게 여기는 것이다.

 

(3) 당신의 소망은 혹독한 시험을 거칠 것이다

현명한 뱃사람은 최악의 날씨에 대비할 것이다. 나중에 바다 위에서 어려움을 당하고 우왕좌왕하는 것보다 기상을 예측하고 미리 미리 준비하면 즐거운 항해가 될 것이다. 평화로운 때에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역경을 이겨내기 힘들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10:36)고 말씀하셨다. 인내는 소망의 등에 모든 짐을 지우므로 진정한 인내엔 참 소망이 함께 한다.

 

우리에게 얼마나 큰 고통과 시험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소망을 강하게 하기를 멈추어서는 안 된다.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고 강한 시련을 견뎌내려면 균형 잡힌 소망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3:6) 잡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약한 소망을 가지고 즐거워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 약한 믿음을 가진 자는 새는 배에 값비싼 짐을 싣고 가는 자와 같다. 가라앉으리라는 두려움으로 인해 그 값비싼 물건을 가지고 간다는 기쁨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이여, 여러분이 구원의 옷을 입고 천국 문에 이르기까지 이겨내야 할 많은 시련과 강한 유혹이 있다. 그러나 지금 소망을 굳건히 지키면 그 소망은 당신이 시련에 빠졌을 때 그것들을 이겨내도록 도와줄 것이다. 당신은 소망의 군대를 이끄는 왕으로서 시험과 고난과 싸워야 한다. 사탄은 당신의 소망을 향하여 활을 겨눈다. 약속의 병거에 소망을 붙들어 매고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싸우라. 그리고 절망하지 말고 사탄으로 하여금 당신의 영혼을 짓밟지 못하게 하라.

 

소망을 강하게 하는 법

 

(1)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공부하라

그리스도인들은 말씀으로 양육되기 때문에 말씀을 먹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시들시들하다 죽게 된다. 무럭무럭 잘 자라나는 아이는 젖을 충분히 먹는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양분을 공급하시고, 그 양분을 섭취함으로써 모든 은혜가 자라나게 하신다. 따라서 성경은 성도들의 강하고 견고한 소망을 위한 양분을 제공한다.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15:4).

 

마귀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말씀 속에 저장된 그리스도인들의 양식을 빼앗기 위해 열심히 일한다. 사탄은 단순한 게으름을 통해 사람들이 성경을 통해 얻는 안위를 빼앗아간다. 침대에 누워 가난을 탓하는 게으름뱅이처럼 이들은 성경을 읽지도 않고 의심과 두려움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한다. 스스로 일어나 말씀을 찾지 않는 한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채워질 수 없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제일 쉽게 안위함을 얻을 수 있다. 눈 앞에 빵을 놓고도 손을 뻗치기가 싫어 굶주리고 있는 사람을 누가 동정하겠는가?

 

사탄은 일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말씀을 잘못 적용하게 하여 그들의 영혼을 혼란케 한다. 사탄은 신학 분야에 있어 매우 뛰어난 학자이다. 그래서 성도들을 죄로 유인하거나 죄로 인해 절망에 빠지게 할 때에도 무엇보다 말씀을 사용한다. 그는 마치 부정직한 변호사와 같아서 뛰어난 법률 지식을 교묘히 사용하여 정직한 원고를 궁지에 몰아붙인다.

 

만일 사탄이 우리의 소망을 약하게 하고 받은 바 기업을 빼앗는 데 있어 그처럼 능수 능란하게 말씀을 사용한다면 우리는 소망을 지키고 올바로 설 수 있는 방어술을 익혀야 한다. 따라서 이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성경말씀이 당신 것이 될 수 있을 때까지 철두철미하게 공부해야 한다.

 

(2) 순수한 양심을 지키라

경건함으로 이 세상을 산다는 것과 복스러운 소망”(2:12-13)을 추구하는 것은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경건을 떠난 사람에게는 모든 참 소망이 결핍되어 있다. 경건한 사람은 경건한 삶에서 멀어진다는 것은 곧 소망과의 결별을 암시한다는 것을 알기에 주의한다.

 

날개가 부러진 새가 날 수 있는가? 믿음과 선한 양심은 소망의 두 날개이다. 만일 당신이 죄로 인해 양심에 상처를 입는다면 회개를 통해 용서를 구하는 믿음과 구원의 소망을 새롭게 하라.

 

(3) 하나님께 강한 소망을 구하라

다음의 말씀을 통해 바울이 로마의 성도들에게 어떻게 권면하였는지 보라.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15:13). 하나님은 소망의 하나님이시다. 갓 태어난 아이는 울음을 통해 배고픈 것을 말한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주시기를 원하나 당신이 그분께 외칠 때까지 기다리신다. 하나님께서는 들의 짐승들도 먹이시지 않는가? 하물며 그분의 집에 거하는 그리스도인들을 돌보시지 않겠는가? 그러니 당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보다 풍성히 주옵소서 하고 기도하라.

 

(4) 당신의 사랑을 증대시키라

사랑은 신비하면서도 소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사랑은 맹목적인 두려움을 없애므로 소망의 편을 든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요일4:18). 당신이 그리스도를 사랑하면 할수록 그분 안에서의 당신의 소망은 점점 강해지고 편한 마음으로 그분을 기다리게 된다. 사랑과 기다림은 성경 속에서 자주 짝을 이루어 등장한다(살후3:5).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을 기다리게 될 것이다.

 

(5) 소망을 단련시켜라

반복된 행동은 습관이 된다. 하나님의 약속은 이루어질 소망의 실체이다. 비록 넘어져도 그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일어서라. 어떤 상황에서도 전열을 가다듬고 하나님의 언약 위에 새겨진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보라. 소망이 생기며 더 강해질 것이다.

 

(6) 과거에 경험했던 하나님의 자비를 상기하라

미래에 대한 큰 두려움에 의해 부서질 때 하나님께서 지난 시간 동안 보여주신 은혜를 다시 떠올리라. 그리하면 고통의 밤을 위로와 소망으로 견뎌낼 수 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과거에 보여주셨던 은혜들을 자주 묵상하며 노래하였다. 그래서 그의 소망이 주춤할 때 그에게 임하셨던 하나님의 선하심을 상기하며 다시 힘을 얻었다. 그리스도인들이여, 당신의 소망이 난국에 봉착하였을 때 다른 각도에서 구원에 대한 기억을 새롭게 하라. , 전에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행하신 일들을 되돌아보라.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기억이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구원의 소망을 강하게 할 뿐 아니라 삶의 치열한 전투 속에서도 머리를 들게 한다. 하나님의 도우심에 대한 기억들은 다가올 역경과 기도 가운데서 확실히 소망의 반석이 되며 능력 있는 기도의 주제가 될 것이다.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전에 베푸셨던 일들을 떠올리며 그것을 아뢰면서 그분의 끊임없는 도우심을 바란다. 전에 경험했던 하나님의 자비를 현재에도 나타내 주시기를 간청하면서 그 분의 응답을 기다리는 것이다.

 

당신이 인내하지 못하고 고난을 당해 절망할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자주 당신을 도와 그것들로부터 끄집어내셨는지 기억하라. 다가올 고난으로 인해 당신의 믿음과 소망이 흔들릴 때 하나님께서는 과거에 보여주셨던 은혜들로 인해 꿋꿋이 서기를 바라신다.


출처 : 청교도 아카데미
글쓴이 : 유정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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