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도 아카데미

[스크랩] 로이드 존스, 로마서강해 2권, 11장 큰 것에서 작은 것으로 발전된 논증 (2017 김영희강의안)

강대식 2017. 6. 1. 09:28

11장 큰 것에서 작은 것으로 발전된 논증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5:10)

 

9절에서 이미 말했던 것을 반복하고 있다. 그것은 그 주제의 위대성 때문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 관해 무엇을 말하든 간에 더 말할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영원토록 우리를 사로잡을 주제이다.

우리가 분명히 해둘 것은 우리의 구원과 구원의 최종성에 관해 확신하는 것이다. 바울은 그의 위대한 논증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를 위해 그의 아들을 보내사 십자가에 죽게 하셨다면 그 나머지 모든 것들은 필연적으로 따라온다는 사실을 연역해 냈다. 즉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더욱더 사실임에 틀림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순전히 논리이다. 그 다음 것이 필연적으로 따라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은 우리가 그토록 큰 일을 완전히 이해할 때만 가능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미 해놓으신 이 큰 일이란 무엇인가?

-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 관해 무엇인가를 해놓으셨던 것이다. 우리는 법적인 입장에서 하나님과 원수 되는 신분에 서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원수로 보셨고 우리는 하나님께 대하여 원수였다. 비록 우리가 그런 상태에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바울은 11:28에서 유대인들에 대해, 복음으로 하면 저희가 너희를 인하여 원수된 자요, 택하심으로 하면 조상들을 인하여 사랑을 입은 자라라고 한다.

 

- “우리가 원수되었을 때에 하나님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화목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에서의 변화를 의미한다.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태도가 있기 전에,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의 변화를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너희가 그 안에서 원수였을 동안에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태도가 자기 아들을 보내사 너희를 위해 죽게 하셨을 정도라면 하나님께서 지금 너희를 그 자녀로 여겨주시는 일은 쉽지 않겠느냐?고 하는 것이다.

특별히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들이셨을진대 결단코 그것을 무효화시키실 리가 만무하다. 이 대목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관한 것이지,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에 관한 것이 아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기만 하면 구원의 확실성과 최종성을 알게 되리라는 것이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으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고후5:18)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우리에게 돌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 일을 하셨으며 더 이상 우리를 원수로 여기지 않으시기 위해서 그 일을 하신 것이다. 바로 그것이 화목의 요지이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은 그 일 다음에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귀추인 것이다.


- “그 아들의 죽으심첫째, 이 모든 것이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루어졌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이 화목을 이루시고 관계상의 변화를 가져오는 방식이다. 사도의 논증은 더 큰 것에서부터 작은 것으로 발전되어 나가는 것이다. 요한복음 3:16이 바로 그 점을 말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멸망을 당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우리가 하나님과 더불어 화목되는 것은 아들의 죽으심으로 인한 것이다. 사람들은 그들이 말하는 소위 피의 신학이라고 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흘리신 피를 떠나서는 아무런 명목상의 신학적 가치가 없게 되는 것이다. 피는 화목과 칭의와 구원의 근거가 되는 것이다.

 

둘째, 하나님께서 우리와 그 자신을 화목케하신 유일한 방식이다. 왜 하나님에게는 아들이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는 길 외에는 다를 방도가 없었을까? 오직 한 가지의 답변만이 있을 뿐이다. 하나님의 공의 때문이다. 하나님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3:26) 하나님은 언제나 자신의 전 존재로서 행하신다. 언제나 사랑하시면서 동시에 언제나 공의로 행하신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의 공의나 의와 상관없이 행사된다고 해서는 안 된다. 또 그의 공의나 의가 그의 사랑과 서로 떨어져서 행사된다고 해서도 안 된다. 이 속성들 사이에 어떤 칸막이를 두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는 죄를 벌하셔야만 하고 그래서 분노하셨던 것이다. 독생자 안에서 죄를 형벌하심으로써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보실 수 있으시고 우리를 값없이 용서하실 수 있는 것이다. 그의 공의는 만족되었다.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여 하심이라그리스도께서 자기들의 죄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을 믿지 않는 한 어떠한 사람에게도 화목은 없다.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은 그의 모든 영광스런 속성들이 함께 발현되는 것이다. 갈보리 언덕에서 그 아들의 죽으심과 예수의 피에서 공의와 사랑이 그 영광을 입고 모두 함께 비춰 나오고 있는 것을 본다.

 

-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더가장 큰 그 모든 일을 하셨으니 하나님께서는 그보다 작은 일을 하실 것이다. 이제 부자관계가 되었다. 이제 그의 사랑은 여러분을 버리지 않을 사랑이다. “구원을 얻는다는 말은 온전하고 최종적인 구원을 뜻한다. 일단 칭의만 이루어지면 나머지는 자동적으로 온다.

 

- “우리가 그의 살으심으로 인하여 구원을 받을 것이라 좀 더 바른 번역은 우리가 그의 생명 안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하여야 한다. 바울의 진술은 “by가 아닌 'in'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그의 살으심 상태에서 구원을 얻은 것이다. 전에는 원수들이었으나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 생명 안에 있다. 만일 하나님이 그의 아들을 우리가 원수로서 외인이었을 때에 우리를 위해 보내셨다면 지금 자녀들로서 안에 있는 우리를 위해서는 얼마나 더욱 많은 것을 하시겠는가!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어떤 일에도 실패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의 자유는 절대적으로 확실하고 안전하다. 7:22-25,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저희 제사장 된 자의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을 인하여 항상 있지 못함이로되 예수는 영원히 계신고로 그 제사장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내가 죄에 빠지면 나는 사귐을 잃어버리는 것일까? 아니다.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만일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다(요일1:7,9) 그리스도는 우리가 하나님과 더불어 화목되기 위하여 죽으셨고 살아나시고 우리 중보자로서 우리를 위하여 대언기도를 드리고 있다. 그는 여러분이 떨어져 나가게 내버려 두지 않고 죄로부터 우리를 지켜 주신다.


우리는 그에게 접붙여졌고 그의 생명을 누리고 그로부터 생명을 받는다.

우리가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1:16). 우리는 세상과 육체와 마귀와 싸워야 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우리를 파멸시킬 수 있는가? 결코 그럴 수 없다. 만일 그가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면 그는 우리를 떠나가게 하시지 않는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을 통과하여 결국 즉 영광에 이르게 할 것이다. 만일 하나님이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공의와 영원한 의의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었다면 그가 세상과 육신과 마귀의 보다 작은 문제들에게 낭패당하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

그리스도는 벌써 그 자신의 죽으심 가운데서 그것들을 정복하셨다. 마귀는 힘을 잃었다. “세상의 임금들이 쫓겨났다”(12:31). 그리스도는 승리하셨고, 그는 영광 안에서 살아나셨고, 우리는 그 안에 있다.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우리는 그에게 연합되고 그 안에 있고 그의 몸의 여러 지체들과 그의 살과 뼈의 부분들이 되었다. 우리는 그의 생명 안에 있고 그리스도에게 접붙인 바 되었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전12:27).

 

12절부터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지 더 이상 아담 안에 있지 않다는 커다란 원리를 다루어나가기 시작한다. 여기서 그는 그 첫 실마리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이제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 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 있기 때문에 영구히 안전한 것이다.

 

우리가 원수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생명 안에서(‘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는 잘못된 번역) 구원을 얻을 것이라 우리는 그와 함께 살리심을 받았으며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와 함께 하늘에 앉힌 바 되었다.(2:5-6).

하나님께서 이 위엄에 찬 논증을 풀어나갈 수 있도록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사

우리가 우리의 위대한 구원을 즐거워하게 하소서!

 


출처 : 청교도 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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