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15 주일설교
본문: 딤전 1:12-16
제목: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기독교는 말만 하는 종교가 아니라 본이 되게 하는(본을 보이는) 종교이다.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벧전2:20)
제자가 될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매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한다고 하셨다.
십자가를 지신 분이 자기 십자가를 지라 하시니 본을 따라 그 자취를 따라가야 한다.
주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는 본을 또한 보이셨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느니라”(요13:15)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요13:14)
바울은 예수님을 대적한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지만, 죄인 중의 괴수였지만,
주님이 직분을 맡게 하고, 긍휼을 입게 하고, 주의 은혜가 넘치도록 풍성하게 하신 것은,
후에 예수 믿는 자들의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과연 바울은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너무도 귀한 본이 되었다.
나중에 그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4:16)고 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11:)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빌3:17)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도,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라’고 하였다.(딤전4:12)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주시는 말씀이다.
그리스도를 본받고 바울을 본받은 최고의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들이 바로 청교도들이었다.
그들은 성경 밖에서 가장 성경적인 사람들의 본이 되었다.
현대 교회는 이 본을 잃어버리고 외면하고 무시함으로 세속화되고 있다.
바울이 본이 된 것은 교육과 훈련으로 된 것이 아니었다.
그의 많은 죄와 악행에도 불구하고, 주의 긍휼하심을 입고, 주의 은혜를 넘치게 받고,
충성되이 여겨 직분을 맡게 하셨기 때문이었다.
1. 본이 되게 하기 위해 직분을 맡기셨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딤전1:12)
직분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기 위한 것이다.
사도의 직분은 말할 것도 없고, 집사직, 권사직, 장로직, 목사직, 교사가 다 해당된다.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엡4:11-12)
직분을 맡은 자들이 할 일은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는 것이다.
하나님은 바울에게 직분을 주시고 능하게 하셔서 사도직을 감당하게 하셨다.
이에 바울은 자기 목숨조차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충성을 다했다.
바울만 직분을 맡은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다 직분을 맡은 사람들이다.
성령으로 거듭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그리스도의 몸을 구성하는 지체들이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직분자들은 마디와 힘줄 역할을 해서 다른 지체들을 연합해야 한다.
그것이 참된 교회이다.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심으로 자라느니라”(골2:19)
우리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리스도를 머리로 연결하는 마디와 힘줄이 있어야 하고
그들을 통하여 공급함을 받고 연합이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나도 다른 지체들의 마디와 힘줄이 되어서 공급해주고 연합하여야 한다.
공급과 연합을 통해 하나님은 그 교회를 자라게 하시는 것이다.
나를 머리이신 그리스도에게로 연결해주고 공급해주는 마디와 힘줄이 없다면,
그리고 내가 누군가를 그리스도에게로 연결해주고 공급해주는 마디와 힘줄이 되지 않는다면,
내가 과연 그리스도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참된 지체인지 돌아보아야 한다.
사도들에게 명하신 분부는 교회에서 직분을 맡은 자들에게 다 해당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19-20)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는 일은 직분자라면 누구나 해야 할 일이다.
최소한 한 사람에게는 내가 그리스도에게로 영혼을 인도하는 마디와 힘줄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할려면 마디와 힘줄을 통해 내가 먼저 공급을 받고 연합을 이루어야 한다.
공급할 복음도 없고 연합할 상대도 없다면 마디와 힘줄 역할은 시작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여러분 주변에 관심을 갖고 찾아보면 그 대상이 있을 텐데 무관심이 기회를 놓치게 한다.
사망의 냄새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면 영혼들은 관심을 갖고 찾아 올 것이다.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전1:21)
여기서의 전도는 사람을 무조건 교회로 끌어오는 것이 아니다.
전도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삶으로 향기로 보여주는 것을 말한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사는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란다.
그러면 우리가 땅에서 구하는 것, 염려하는 모든 것을 하나님은 더해 주실 것이다.
충성되이 여겨 직분을 맡기셨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바울은 주님의 기대에 어그러지지 않고 직분을 감당하는 일에 있어서
정말 참된 본이 되어 주었다.
바울을 본받아 우리도 본이 되자.
2. 본이 되게 하기 위해 긍휼을 입게 하셨다.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딤전1:13)
긍휼을 확실히 입지 않고서는 직분을 충성되게 감당할 수 없다.
긍휼을 많이 받은 자가 주님을 사랑하고 그의 명령을 충성되이 수행한다.
많이 사함을 받은 자가 주를 많이 사랑하고, 적게 사함을 받은 사람은 주를 적게 사랑한다.
주님께서 한 바리새인의 초청을 받아 그의 집에 갔다.
죄 많은 여인으로 소문난 한 여인이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었다.
바리새인은 이를 보고 ‘선지자라면 이 여자가 어떤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마음에 생각했다.
주님은 비유를 들어 말씀했다. 오백 데나리온 빚진 자와 오십 데나리온 빚진 자가 있는데
채권자가 둘 다 탕감을 해준다면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고 물었다.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 ‘네 판단이 옳다’고 하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닦았으며,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눅7:44-47)
바울은 전에는 예수님과 제자들을 특심하게 박해하고 비방하고 죽이고 폭행했다.
스데반 집사를 돌로 쳐서 죽일 때 바울은 그들의 옷을 맡은 증인 노릇을 했다.
주님을 만난 것도 다메섹에 가서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고 예루살렘으로 끌어올려고
가는 도중이었다.
그런데 주님은 그러한 바울을 긍휼히 여기셨다. 그는 참으로 엄청난 죄사함을 받았다.
바울이 주님께 얼마나 못되게 굴었고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 중에 괴수’였는데,
주님은 친히 나타나셔서 그 모든 것에 대해서 긍휼을 베풀어 주시고
그를 충성되이 여기셔서 직분을 맡기셨다.
바울은 그것을 감사하고 있고 주님을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충성을 다했다.
사함을 받은 일이 많은 그는 참으로 주님을 많이 사랑하였다.
그의 몸된 교회를 세우기 위해 그 많은 고난을 받으면서도 혼신의 힘을 다했다.
자기가 누구였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바울은 자기가 비방자였고 박해자였고 폭행자였음을 알았다.
자기가 죄인 중에 괴수인 것을 또한 알았다.
주님이 먼저 일체 오래참으심을 보이시고 후에 주를 믿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신 것을 알았다.
우리도 바울 만큼은 아닐지라도,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여 주시기 전에는
작은 바울들이었음 알아야 한다.
우리도 얼마만큼 많이 죄사함의 긍휼을 입었는지 돌아보고 깨달아야 한다.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할 때마다, 성찬식을 대할 때마다, 눈물로 우리를 씻어야 한다.
긍휼함을 입은 것을 깨달은 만큼 주님을 더욱 사랑하고 충성되이 직분을 감당할 것이다.
일만 달란트 빚을 주님께 사함 받고도 우리는 우리에게 오백 데나리온 빚진 자에게
긍휼 없는 정죄를 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긍휼이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셨다.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였음을 감사하고 있다.
(최고의 긍휼이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15)
우리도 주님이 먼저 우리에게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셨기 때문에 구원에 이르렀다.
우리도 주의 긍휼을 얻었기에 후에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본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임하셨음을 전파해야 할 것이다.
3. 본이 되게 하기 위해 은혜가 풍성하게 하셨다.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딤전1:14)
긍휼히 여기셨을 뿐 아니라 주님은 바울에게 은혜를 풍성하게 부어주셨다.
우리 작은 바울들에게도 주님은 똑같이 은혜를 풍성하게 부어주셨다.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은혜가 넘치도록 풍성하게 하셨다.
은혜가 넘치도록 풍성하게 와야 믿음도 성장하고 그 믿음은 항상 사랑으로 역사한다.
믿음도 사랑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그리스도 예수의 은혜를 통해 역사한다.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롬5:15)
그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의의 선물이고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하는 선물이다.
아담이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과 통치권을 회복하는 것이다.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은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하리로다”(롬5:17)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넘치게 주시고,
그 생명으로 왕 노릇, 왕권 통치권을 행사하게 하시는 것이다.
죄를 이기고 세상을 이기고 사탄을 넉넉히 이기고 은혜와 평강을 누리게 하신다.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고 죄인 중의 괴수였던 바울에게
긍휼을 입게 하시고 은혜를 넘치게 부어주셔서 직분을 맡기니까
바울은 충성을 다하여 그 직분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였다.
본이 되게 하려 하신 대로 바울은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훌륭한 본이 되었다.
우리 작은 바울들도 그리스도를 본받고 바울을 본받아 후에 믿는 자들의 본이 되어야 할 것이다.
12-16절 말씀은 작은 바울이었던 내가 25년 만에 돌아와, 사명을 위한 금식기도를 할 때,
나를 종으로 부르신 응답이기도 하였다.
성경을 읽는 중에, 오늘 본문 말씀이 성경 위로 튀어올라오는 경험을 하였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기도에서 찬송 두 곡으로 응답을 주셨다.
285장(주의 말씀 받은 그 날) ‘이 복된 말 전하는 일 나의 본분 삼았도다’
321장(날 대속하신 예수께) ‘내 몸과 맘을 주 위해 다 쓰게 하소서’
이 찬송을 부르는 동안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져서 주체할 길이 없었다.
오늘 본문을 바울에게만 준 말씀이 아니고,
교회 직분을 맡은 내게 주신 말씀으로 받고 긍휼과 은혜를 회복하고
충성되이 여겨 맡긴 직분에 더욱 충실하고 헌신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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