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22 주일설교
본문: 딤후 4:6-8
제목: 나의 달려갈 길
우리의 믿음은 경주로 비유된다. 달려갈 길이라는 것이지요.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히12:1).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고전9:24)
게으른 사람들은 믿는다고 하면서도 달려가질 않는다.
“게으른 자는 그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하느니라”(잠26:15)
게으른 자는 달려갈 수 없고 약속을 기업으로 받을 수 없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겨야 한다.(롬12:1)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푯대로 하여 달려가야 한다.
바울은 달려가기 위해 생명조차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했다.
“내가 달려갈 길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
믿음의 경주를 마치는 데는 생명을 걸어야 한다는 말씀이기도 하다.
자기 십자가를 매일 지고 주님을 따르라 하심도 생명을 걸라는 말씀일 것이다.
십자가는 생명을 걸고 하나님의 선한 뜻을 이루는 곳이니까요.
1.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칠 때가 나의 떠날 시각이 되어야 한다.
“전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딤후4:16)
전제는 포도주와 같은 음료를 부어드리는 제사이다.
영어에서는 drink offfering, 헌주라고 번역한다.
제물을 드릴 때는 항상 정해진 양의 포도주를 함께 부어 드리도록 하였다.
“전제로는 포도주 사분의 일 힌을 쓸 것이며”(렘23:13)
(숫송아지에는 반 힌, 숫양에는 삼분의 일 힌, 어린 양에는 사분의 일 힌)
전제는 포도주를 부음으로써 피의 제사를 상징한다.
바울은 이 ‘전제’를 자신의 순교의 죽음과 관련시켜 말하고 있다.
다른 번역은 ‘나는 이미 부어드리는 제물로 피를 흘릴 때가 되었다’고 했다.
바울은 성도들의 믿음의 제물 위에 자신을 전제로 드릴지라도 기뻐한다고 하였다.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빌2:17)
회심 후 바울의 생애는 피와 땀을 쏟는, 전제로 부어지는 생애였다고 할 수 있다.
어느새 벌써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다 부어질 때가 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그 때가 바로 세상 떠날 시각이요 달려갈 길을 마칠 때인 것이다.
전제는, 우리 주님이 그 본을 보이셨다.
주님은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서 희생제물로 드리면서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전제로 부었다.
“이것은 죄 사함을 받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26:27-28)
은혜 언약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그 언약을 인쳐 주시는 피인 것이다.
언약은 피로 인을 친다. 그 은혜에 의하여 우리는 구원을 받은 것이다.
율법의 행위로는 우리가 구원 받을 수 없기에 그 은혜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게 하셨다.
야곱은 전제물을 자기가 세운 돌기둥에 부었다고 창세기에 기록하고 있다.
돌기둥을 베고 잠이 들었는데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축복의 약속을 받고서는
그곳의 이름을 벧엘이라고 하였다.(창35:14-15)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는 것도 부어주시는 전제의 표현을 하고 있다.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욜2:28)
그래서 주님은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다고 하셨다.
예배는 우리 몸을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이요, 전제로 나의 피를 붓는 것이다.
그것이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요, 하나님께 참되게 예배하는 것이다.
이렇게 참되게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12:1)
우리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이 영으로 드리는 예배임을 기억해야 한다.
이스라엘은 전제물을 우상에게 부음으로써 멸망을 당하였다.
“나 여호와를 버리며 나의 성산을 잊고
갓(운수신)에게 상을 베풀며 므니(운명신)에게 섞은 술을 가득히 붓는 너희여,
내가 너희를 칼에 붙일 것인즉 다 구푸리고 죽임을 당하리니”(사65:11-12)
자신의 피와 땀을 쏟아 붓는 곳이 어디이고 무엇을 위한 것이냐가 사활을 결정한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우리의 전제물을 쏟아 부어야 한다.
땅에다 보물을 쌓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늘에 보물을 쌓기 위해 전제물을 쏟아야 한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고 보물 있는 곳에 내 마음이 있게 마련이다.
어느새 벌써 우리의 세상 떠날 시각도 가까이 오고 말 것이다.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이 언제까지인지 알게 하사 내가 연악함을 알게 하소서”(시39:4)
다윗의 기도이다. 우리도 드려야 할 기도이겠지요.
세상과 우상에만 전제를 쏟아 부은 사람들은 이를 갈며 슬퍼하는 날을 맞이할 것이다.
하나님께,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전제를 쏟아 부은 사람들은 영광스러운 날을 맞이할 것이다.
2. 달려가며 선한 싸움을 싸우고 믿음을 지켜야 한다.
“선한 싸움을 싸우고 --- 믿음을 지켰으니”
우리는 피흘리기까지 죄와 싸워야 한다.
죄를 짓게 하는 3대 요소가 있다. 육체와 세상과 마귀이다.
이것들이 죄를 짓게 하고 우리를 하나님과 멀어지게 만든다.
육체에 죄가 거하고, 그 육체는 세상을 좋아하고, 그 세상 배후에 마귀가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죄와 육체와 세상과 마귀는 한 묶음이고 우리가 선한 싸움을 해야 할 대상이다.
공중 권세 잡은 자가 세상 풍속을 따르게 하고 마음과 육체가 원하는 대로 살게 한다.
“그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엡2:2-5)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고
악의 영들을 상대하는 것이라 하였다.(엡6:10)
베드로도 야고보도 마귀를 대적하라고 한다. 친하지 말고, 순종하지 말고.
근신하고 깨어 있지 않으면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삼킬 자를 찾는다고 하였다.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는지 분별해야 한다.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세상에 나와 있기 때문이다.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바른 진리의 말씀으로 분별해야 한다.
세상과 친구가 되면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
세상에 있되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에 현혹되고 먹이감이 되지 않아야 한다.
세상에 있는 것들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에 삼킨 바 되고, 이생의 자랑으로 끝이나고 만다.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고 몸의 사욕에 순종치 말라고 한다.
우리 몸을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어주지 말고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고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일으킴을 받은 것은 새 생명으로 행하게 하기 위함이다.
육체가 맺는 열매들을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갈5:19-21)
성령이 오시면 성령은 우리에게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한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5:22-23)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이다.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불경건과 불의에 대해서는 하늘로부터 진노가 나타나고 있다.
또한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날에 임할 진노를 쌓고 있다.
죄와 싸우고 그 배후에 있는 세상과 육체와 마귀과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한다.
하늘에 시민권이 있는 사람답게, 하나님의 자녀답게 품위있게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한다.
육체와 정욕으로 세상 것을 얻기 위해 악한 싸움을 싸우는 것은 진노를 쌓을 뿐이다.
우리의 선한 싸움은 믿음을 지키며 싸우는 선한 싸움이다.
믿음이 있기에 선한 싸움을 싸우고 싸울 수 있고 이길 수 있다.
견실하며 흔들리지 않으며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것이 믿음을 지키는 것이다.
믿음을 지킬려면 무엇보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어야 한다.
믿음과 인내는 항상 한 쌍이다.
믿으면 인내할 수 있고, 인내하면 믿고 있는 것이다.
믿음의 시련들이 인내를 만들어내고 인내를 온전히 이룰 때
우리의 성품은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된다.
믿음과 인내로 모세는 광야 40년의 훈련 끝에 지상에서 가장 온유한 자가 되었다.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으라고 한다.
믿음을 지킬려면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로 우리 안에 풍성하게 해야 한다.
성경을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고 주야로 성경을 묵상하고 다 지켜 행해야 한다.
평탄하고 형통한 인생은 오직 말씀으로 자라나는 믿음에서만 이룰 수 있다.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면 교훈을 받은 대로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야 한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을 실상으로 붙들게 해주고, 보이지 않는 것들을 증거로 붙들게 해준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믿음으로 구원 받고 믿음으로 축복과 형통을 이루며 믿음으로 의인은 산다.
믿음으로 노아는 120년 동안 방주를 준비하였고 축복 받았다.
믿음으로 모세는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더 좋아하였다.
달려갈 길을 가면서 선한 싸움을 싸우고 믿음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
깨닫게 해주시니 감사와 영광을 주님께 돌린다.
3. 의의 면류관을 받도록 달려가야 한다.
선한 싸움은 싸워서 넉넉히 이겨야 한다.
선한 싸움을 싸워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을 계시록 2장, 3장에 말씀하고 있다.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고, 감추었던 만나와 흰돌을 주고,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신다.
흰 옷을 입게 하고,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고, 주의 보좌에 함께 앉게 하신다.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하신다.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4:8)
바울이 달려갈 길을 가고 선한 싸움을 싸우고 믿음을 지킨 목적을 말하고 있다.
이 땅에 쌓고 자랑하던 것들은 이 세상을 떠날 시각에 다 두고 가야 할 것들이다.
세상 마지막이 되면 다 불에 타고 허망하여질 것들이다.
지옥불 속에서 깨닫는 부자처럼 후회하고 슬퍼해봐야 그 날에는 소용이 없다.
주님은 분명히 다시 오시고 그 날은 모든 것을 심판하시는 날이다.
그 날에 예비된 의의 면류관을 받을 것을 바라보고 바울은 달려갈 길을 마쳤다.
의의 면류관은 생명의 면류관이요 영원히 썩지 않을 면류관이다.
주님 앞에서 거룩함과 의가 완전해지기에 ‘의의 면류관’이라 한다.
우리의 영혼과 몸이 의의 영광으로 변화되고 영원히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의의 면류관은 사도와 순교자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 주어진다.
우리의 소망과 사모함을 주의 나타나심에 두어야 한다.
바울은 전제와 같이 부어지고 세상 떠날 시각을 기쁨과 소망으로 맞이하고 있다.
달려갈 길을 마치고 선한 싸움을 싸우고 믿음을 지켰기 때문이다.
우리도 세상 떠나갈 시각이 가까웠을 때 바울의 고백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우리의 전제물을 오직 하나님께만 부어드리는 것으로 우리의 생애를 채우자.
의의 면류관을 바라보며 소망을 갖고, 오늘 주어진 일에 충실하자.
게으르지 말고 선한 싸움을 싸우며 믿음을 지키며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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