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장 좁은 문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마7:13-14)
- 13-14절은 어떤 견지에서 보든 가장 중요하고도 중대한 진술이다. 산상 설교를 분석하는 관점에서 볼 때 이 진술은 결정적인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우리 주님은 새 나라 곧 하늘나라를 기초하고 확립하시기 위해 땅으로 오셨다. 그가 세우러 오신 이 나라는 세상이 지금까지 알고 있던 어느 것과도 전혀 다르다는 것을 명백히 해야 한다. 그의 백성은 이 나라가 특별하고 유별한 그 어떤 것임을 인식해야 한다. 팔복에서 살펴본 그런 유의 사람이기 때문에 세상은 그들을 미워하고 박해하지만, 그들은 세상을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소금과 빛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시고 나서 이 모든 것을 실제로 적용하고 실천하는 일을 말씀하셨다. 그들이 살아야 할 삶은 그 당시 알려져 있던 최고의 종교인들보다도 전혀 달라야함을 자세한 교훈을 주심으로써 그 방법을 보여 주셨다. 그리고 이 세상의 삶에 대한 우리의 자세, 비판문제에서 다른 사람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다루셨다. 주님은 이 모든 것의 원칙을 설정하신 것이다. 주님은 원칙만을 설정하신 것이 아니고 그 원칙을 적용을 위해서 자세히 풀이해 주셨다. 여기서 주님의 방법이 모든 설교의 모형과 모범이 되어야 할 것을 생각하게 된다. 말씀과 진리를 실제에서 적용하지 못하는 설교는 참된 설교가 아니다. 우리는 성경의 진리를 실제 생활에 도입해야 하고 또 살아야 하는 것이다. 권면과 적용은 설교의 필수부분이다.
- 7장의 나머지 부분의 말씀은 청중들을 시험대에 놓으신다. 내 설교는 끝났다. 이 설교를 들은 너희는 자문해 봐야 한다고 말씀하신 셈이다. 우리의 반응은 어떠한가? 산상 설교를 감탄하는 것으로 끝내는가? 그렇다면 주께서 설교를 하시지 않았던 편이 차라리 나았을 것이다. 주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감탄이 아니라 실천인 것이다.
그런 다음 주님은 계속해서 시험할 것이 또 있는데 곧 열매를 시험하는 것이라고 하신다. 산상 설교를 찬양하면서도 삶에서 그것을 나타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을 조심하라고 말씀하신다.
마지막 시금석으로 환경에 의해 우리에게 적용된 시금석이다. 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폭풍이 위협할 때, 비가 내리고 홍수가 밀려와서 우리 삶의 집이 부딪칠 때 우리는 어떠한가? 이런 일들, 어둡고 위태한 순간에 우리로 하여금 설 수 있게 할 것을 우리가 가지고 있지 못하다면 아무 소용도 가치도 없으리라는 것이다. 7장의 나머지 부분은 우리로 하여금 가장 심각하고 엄숙하게 항상 심판에 비추어서 행하라고 권면한다. 이것은 산상 설교뿐만 아니라 신약성경 전체의 교훈인 것이다.
- 13, 14절에서 주님께서 권면하시는 삶의 특색은 ‘협착함’이다. 주님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이것을 우리 앞에 극적으로 제시하신다. 즉시 그리스도인의 현저한 특징을 생각하게 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부르시어 이런 삶을 살도록 명령하신다.
첫째, 그리스도인의 삶은 시작부터 좁고 협착한 삶이라는 것이다. 이 삶에 들어가는 입구부터가 좁은 길이다. 복음전도의 견지에서 볼 때 이것은 본질적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너무 정직해서 이 길이 매우 쉬운 것이라고 우리를 설득하지 않으며, 그 자체가 좁은 입구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라고 공공연하게 비타협적으로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부터 이것을 알아야 할 것은 절대 필요하다.
이 문을 출발하기 전에 이 인생길의 허두에서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이 길을 따라 가려 할진대 우리 뒤에 남겨두고 가야 할 것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 문은 한 번에 한 사람씩만을 허용하는 턴스타일과 같은 문이라 생각한다. 이 문은 너무 좁기 때문에 어떤 것도 몸에 지니고 들어 갈 수가 없다.
뒤에 두고 가야 할 것은, ① 세속이다. 여러분은 세상과 사람들의 관계를 끊는 것은 불가피하다. 기독교 생활은 인기가 없다. 지금까지 인기가 있어 본 적도 없다. 기독교 생활은 언제나 매우 개인적인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우리는 전통과 습관과 관습으로 가득한 세상에 들어와 있다. 그리고 이것들에 동화되는 경향이 있다. 우리 모두 그것들과 동류가 되고 싶어하는 것은 대다수에 있어 사실이다.
우리가 개인적인 존재라는 점을 자각하는 일보다 더 어려운 일은 없다. 전에는 군중과 어울려 미친 듯이 치달려 갔지만 이제는 갑자기 정지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되는 첫 단계이다. 대다수 사람은 한 방향으로 가고 있으나 그는 무리를 떠나 다른 방향으로 가야 하는 것이다. 이 문은 영원한 재판장이신 하나님 앞에 책임 있는 존재임을 그에게 자각시킨다. 이 문은 좁고 협착하며, 나에게 심판을 대면케 하며, 하나님을 대면케 하며, 삶의 문제와 나의 존재와 나의 영혼과 그 영원한 운명에 대면케 하는 것이다.
② 바깥 세상의 ‘길’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대중을 떠나는 것과 대중의 ‘길’을 떠나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물리적 의미에서 세상을 떠날 수 있고 대중과 사람들을 떠날 수는 있다. 그러나 고독한 독방에도 여전히 세속 정신이 함께 있을 수 있다. 세상을 기쁘게 하는 것들을 문 밖에 남겨두어야 하겠다는 것이다.
산상 설교에서 명령하신 ‘누구든지 네 오른 빰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누구든지 너를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너희 원수를 사람하며 너희를 핍박하고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런 명령을 본능으로는 순종하지 못한다. 이런 것은 우리가 싫어하는 것이다. 주님은 우리가 자기 백성이 되려면 타락한 것과 본능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 등, 우리의 타락한 성품이 좋아하고 행하는 것들을 밖에 두고 떠나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세상과의 근본적인 단절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을 떠날 뿐만 아니라 세상의 길도 떠나는 것이다.
③ ‘자아’를 남겨둬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아를 바깥에 두고 떠나는 일이다. 자아는 옛 아담이요, 타락한 성품이다. ‘옛 사람을 벗어버려라’는 말씀은 그것을 문 밖에 두고 떠나라는 말씀이다. 이 문을 두 사람이 함께 통과할 여지는 없다. 그러므로 옛 사람은 뒤에 두고 떠나야 한다. 복음은 자아와 교만을 부끄러워한다. 우리는 모두 교만한 성품으로 태어났고, 세상은 출생 때부터 우리의 교만을 북돋기 위해 할 짓을 다한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심령이 가난해지는 일이다. 가난한 심령은 교만을 부끄러워한다. 좁은 문 입구에는 ‘여러분 자신을 밖에 남겨두시오’ 란 벽보가 붙어 있다.
자아는 줄곧 십자가에 못박혀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자기비하와 겸손의 삶이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이것이 첫째로 오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지니라” 우리 자아에 대한 권리를 부인하고 자아를 밖에 남겨 두고 문을 통과해 들어가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2:20)고 말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둘째, 이 문은 또 다른 면에서 좁고 협착하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어렵다. 이 삶은 너무 영광스럽고 놀라우므로 쉬울 수가 없는 것이다. 이 삶은 그리스도 자신과 같은 삶을 의미한다. 이 삶은 지금까지 인류에 알려진 가장 숭고한 삶이요, 이 때문에 어렵고 좁고 협착하다. ‘찾는 이가 적음이라’ 산상설교의 말씀을 생각해 보라. 이 삶이 그처럼 어렵기 때문에 협착하지 않을 수 없음을 발견할 것이다.
그 문이 좁고 협착하다는 것은 그것이 항상 고난을 수반하기 때문이며, 참되게 살 때는 항상 박해를 수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든 사람이 내게 칭찬하는 말을 듣고 싶어 하며, 미움과 비판을 받을 때는 매우 괴롭고 안달이 난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이 좁은 길에 들어서면 그렇게 되리라고 경고해 주셨다. 가장 가깝고 소중한 사람들로부터 오해받을 준비도 해야 한다. 이것은 매우 힘들고 어려운 것이다.
셋째, 이 길은 문만 좁을 뿐 아니라 길도 좁다. 이 삶은 항상 끝까지 ‘믿음의 싸움’인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이 시작에는 어려워지게 되어 있으나 뒤에 가서 아주 쉬워진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여러분은 신약성경에 대해 거짓된 교훈관을 가지고 있다. 마지막 순간까지 여러분에게는 원수들과 대적들이 있을 것이다. 낙심 되는가? 그분을 따라가는 것은 가장 영광스런 일이 아닌가?
참된 복음 전도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의 삶의 전체를 제시하는 전도이다. 비용을 계산해보지도 않고 망대를 세우는 일은 없어야 한다. 우리 주님은 비용을 계산해보며 해야 할 것에 직면해 보라고 말씀하신다. 우리의 특권은 이 세상을 벗어나 그분을 따라가는 특권이다.
- 그리스도인들이여! 휴식을 찾지 마시오.
안일의 꿈이랑 멀리 던져 버리십시오.
그대들이 원수에게 둘려 있으니 깨어 기도하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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