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적인 조항들의 준거는 교리의 본질에서 나온다/ 투레티누스, ‘변증신학 강해’
첫째로, 근본적인 조항들과 그렇지 않은 조항들 사이의 구분은 교리 자체의 본질과 조건에서 도출될 수 있다. 교리들 중에는, 구원의 필연적인 원인들과 조건들, 즉 목적과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수단들이 포함되어 있음이 분명하다. 이는 원인이 부정되면 결과도 파괴되고 수단이 거절되면 목적도 달성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를 택하는 하나님의 은혜와 우리를 구속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와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성령은 구원의 으뜸가는 원인이며, 하나님에 대한 도구적인 믿음(요3:36-37)과 회개와 회심은 필수적인 조건인데(히6:1,마3:2), 우리는 이 모든 교리를 근본적인 것이라고 진술한다.
둘째로, 근본적인 조항들과 그렇지 않은 조항들의 구분은 성경 자체의 선언에서 도출된다. 왜냐하면 구원을 위해 필히 알아야 하고 모르거나 거부하면 구원에 치명적인 위험을 초래하는 내용들은 근본적인 교리라고 여겨지는 것이 합당하기 때문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교리와, 죄에 대한 교리(요일1:10,엡2:1), 그리스도의 인격과 본성과 사역에 대한 교리(고전3:11,행4:12,요일4:3,엡2:11-12), 복음에 대한 교리(롬1:16-17,갈1:8-9), 믿음에 대한 교리(히11:6,막16:16)와 행위 없는 칭의에 대한 교리(로3:27,갈2~3장), 성화와 하나님 경배에 대한 교리(엡2:10,히12:14), 부활과 영원한 생명에 대한 교리(고전15:14,딤후2:8,롬10:9) 등이 포함된다.
세 번째 표지는 사도 시대 교부들이 사도들의 문헌에서 근본적인 교리의 총화를 담아낸 사도신경에서 얻어질 수 있다. “신경”이라는 말은 사도신경이 기독교의 상징이요 인증처럼 여겨졌기 때문에 도입된 단어다. 그러나 여기서 정확히 관찰해야 하는 것은 1) 이 신경이 믿음과 관련된 이론적인 조항들만 다루었고 예배와 관련된 실천적인 조항들은 다루지 않았기 때문에 근본적인 조항들과 동일시될 표지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2) 우리가 믿어야 할 것들, 즉 하나님의 은혜와 그리스도 만족과 섭리와 보존에 대한 것들이 여기서는 명시적인 문구 자체로 제시되어 있지 않고 언급된 말들에서 추론과 유비의 방식으로 쉽게 연역될 수 있도록 암시되어 있다는 점이다.
3) 이 신경은 단지 문자와 관련하여 이해되지 않고 의미와 관련하여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교부 힐라리우스가 언급한 것처럼 “성경의 존재감은 읽기가 아니라 이해에 있기” 때문이고, 히에라니무스가 지적한 것처럼 “근본적인 것들은 문자에서 발견되지 않고 의미에서 발견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비록 이단들이 사도신경의 수용을 말하지만, 신경의 진정하고 고유한 의미를 거절하기 때문에 수용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은 소키누스주의자들이 그러하다. 교황주의자들도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자신들의 신앙을 헛되게 고백하고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수난, 죽음, 지옥 강하, 보편 교회, 죄 사함 등과 관련된 여러 근본적인 조항들의 의미를 훼손했기 때문이다.
정통주의자들 중에서 일부는 더 많은 믿음의 조항들을 고수하고 일부는 더 적은 조항들을 고수하기는 하지만, 그들이 의견을 달리하는 것은 실체에 있어서가 아니라 언어와 표상하는 방식에 있어서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조항들,
즉 성경이 영감된 것이고 신앙의 유일하고 완전한 규범이라는 교리,
하나님의 일체성과 삼위성에 관한 교리,
구속자 그리스도 및 그의 완벽한 만족에 대한 교리,
죄와 그로 말미암은 형벌로서 죽음에 대한 교리,
율법과 구원에 대한 율법의 무능성에 대한 교리,
이신칭의 교리,
은혜와 선행의 필연성에 대한 교리,
성화와 하나님 경외에 대한 교리,
교회와 죽은 자들의 부활과 마지막 심판과 영원한 생명과
그러한 내용들과 관련된 것들에 관한 교리들에 있어서 동의하고 있다.
이 모든 교리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서로 의존하고 있어서,
어떤 교리를 제거하면 다른 교리들도 파괴된다. (pp 114-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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