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 신앙

[스크랩] 존 카튼(John Cotton,1582-1652), 복음적 성화와 율법적 성화/ 원종천

강대식 2018. 9. 24. 11:11

존 카튼(John Cotton,1582-1652), 복음적 성화와 율법적 성화/ 원종천

 

그는 회중을 두 집단으로 구분하였다. 한 집단은 카튼이 언약자라고 여기는 내적 집단이었고 그는 이들을 하나님의 진정한 백성으로 보았다. 나머지 사람들은 외적 집단으로 분류했다. 내적 집단은 영국교회의 의식을 따르기 거부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계약자들은 주님께 드리는 예배를 정결히 하기 위해 주님과 그리고 서로간의 언약을 맺었다. 그러나 이들이 다른 회중들과 분리되었던 것은 아니다.

 

존 카튼은 은혜 언약을 통하여 믿음과 성화의 조건을 강조하기보다는 이 조건을 갖추도록 역사하시는 성령의 사역과 그 결과로 나타나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초점으로 잡았다. 카튼은 신학적으로 은혜언약의 조건성 강조와 성화를 통한 구원의 확신의 강조는 은혜언약의 중심인 그리스도로부터 초점을 놓친다고 생각했다.

 

성화보다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이루어진 칭의에 비중을 두고 그 성화가 어디에서 나오는가가 더욱 중요하다. 그리스도의 힘으로부터 나오는 성화인가 아니면 율법에 순종하려는 나의 힘으로 나오는 성화인가 하는 것이다. 성화를 언약의 중심의 자리에 놓으면 불확실성과 오해가 나올 수 있다. 그리스도로부터 나오는 것은 복음적 성화이고, 자신의 힘으로 나오는 것은 율법적 성화인데, 카튼은 율법적 성화의 위험성을 지적하며 성령께서 우리의 영에게 증거해 주시는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의 확신이 우리에게 더 근본적이고 확실한 구원의 증거가 된다는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언약관계에서 성화를 통하여 자신이 언약관계에 있음을 확인하기보다 그 성화의 근원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만드는 것이었다. 자신의 성화를 보라고 할 때에 자칫하면 그것이 자신의 노력과 업적을 보라는 말로 들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외적 성화 자체만으로는 성화의 진실성을 알 수 없고 그 성화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었다. 그는 오로지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 연합이 이루어지면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되었음으로 그의 거룩함이 우리에게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나타나는 성화가 진정한 성화이요, 은혜언약의 증거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초점은 우리의 성화가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이 된다.

 

카튼은 성화를 중시하며 거룩한 공동체의 삶을 추구하던 뉴잉글랜드의 은혜언약 사상에 율법주의적 성화의 위험성을 보았고, 그 상황에서 복음적 성화를 강조했던 것이다. 그는 기계적이고 논리적으로 흐르기 쉬운 삼단논법이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지적하면서, 성도들로 하여금 자신의 성화보다는 성화를 가져다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한 것이다. 카튼은 순수한 신학적 견지에서 칼빈주의 개혁신학에 입각한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를 절대적으로 수호하여, 인간 쪽으로 초점이 흐르는 것처럼 보였던 뉴잉글랜드 청교도 언약신학의 경향을 절대적 하나님 중심의 언약신학으로 세우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인간의 역할과 책임을 강조했던 청교도 언약신학이 한 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치는 신학적 문제를 보았다.

 

개혁은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참여를 요구한다. 칼빈주의 사상은 예정론을 위시하여 하나님의 주권 사상이 분명히 옳고 성경적이기는 하지만, 이것의 부작용으로 올 수 있는 소극적 신앙과 나태의 병을 청교도들은 방치할 수 없었다. 이것은 투쟁의 신앙이었다. 개인의 개혁을 통한 교회개혁이 그 이상이었다. 이것은 성경적인 하나님 주권과 은혜를 전제로 하면서도, 칼빈주의 예정론이 가져올 수 있는 운명론적이며 수동적인 태도로부터 능동적이고 자발적이며 참여적인 신앙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당시는 개혁의 시기였고, 투쟁의 시기였다. 외형적인 개혁은 침체되어 소망이 없는 것으로 보였다. 이에 청교도들은 영국정부가 탄압의 영향을 미칠 수 없는 개인과 가족의 단위로 적극적이고 능동적이며 열정적인 신앙을 불러일으키도록 개혁의 방법을 바꾸어 국민들의 영적 개혁을 시도했다. 이것이 1640년대에 영국 혁명을 위한 발판을 마련해 준 것이다.

 

원종천, ‘청교도 언약사상’, pp 102-123


출처 : 청교도 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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