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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존 오웬, "그리스도의 영광", 12장 그리스도의 영광을 이 세상에서 믿음으로 보는 것과 하늘에서 직접 보는 것의 차이Ⅰ

강대식 2018. 11. 28. 03:39

12장 그리스도의 영광을 이 세상에서 믿음으로 보는 것과

하늘에서 직접 보는 것의 차이

 

믿음으로 보는 것과 하늘에서 보는 것은 우리 영혼의 신령한 두 세력이다. 이 땅에서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서 은혜와 거룩과 순종함에 참여하게 된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직접 보는 것으로 영원한 복락과 영광에 참여하게 된다. 그러나 이 두 경우 바라보는 대상은 같다. 그 대상은 그리스도의 영광과 그 영광의 구성 요소들이다. 그러하기에 여기서는 이 세상에서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는 것과 하늘에서 직접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는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1. 이 세상에서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는 것

 

이 세상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는 것은 흐릿하고 어두우며 불분명하고 어른거린다. 그래서 사도는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고전13:12)라고 말한 것이다. 여기서 거울이란 우리가 보는 것을 도와주는 물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바라보는 것의 형상을 반영하는 반사경이나 그런 거울을 말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직접 보지 못하고, 불완전하게나마 그의 형상이나 그를 비춰 주는 거울을 보는 것이다.

 

사도는 거울로 보는 것에 우리가 지금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는 것이 불완전함을 천명한다. 그럼에도 완전하게는 아니지만 더 온전하고도 충분하게 우리에게 나타내 보인 복음서가 바로 그러한 거울이다. 그것이 없이는 그리스도를 전혀 발견할 수 없다. 물론 복음서를 통해서 본다고 하여도 그리스도의 영광의 여러 가지 국면을 그대로 다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우리가 그분에 대하여 지극히 조금밖에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 욥이 하나님에 대하여 말한 것과 같이 말이다. 보라 이런 것들은 그의 행상의 단편일 뿐이요, 우리가 그에게서 들은 것도 속삭이는 소리일 뿐이니 그의 큰 능력의 우렛소리를 누가 능히 헤아리랴”(26:14). 정말이지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개념은 얼마나 불완전한가! 그 개념들을 파악하는 데 우리의 지성은 얼마나 연약한가! 그리스도의 영광의 여러 국면들 가운데 우리가 완전하게 이해하는 것은 전혀 없다. 믿음으로 이해하는 대로 우리가 이해하는 것을 부단하게 묵상할 수가 없다.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고후4:6).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에게 주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계시하시되, 우리가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찬탄하고 복종할 수 있도록 계시하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 그리스도의 영광을 부단하고 분명하게, 그리고 줄기차게 보지는 못한다. 우리가 보는 것으로 하지 않고 믿음으로 하기때문이다.

 

그리스도와 우리 사이에는 큰 장벽이 있다. 그리고 거울과 창문을 통하여 보는 것같이,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방편들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이해하고 바라보는 데 불완전할 뿐 견고하지 못하다. 그 장벽은 바로 우리가 지금 죽을 몸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분을 그 모습 그대로 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장벽이 제거되어야 한다. 그 전에는 복음의 여러 규례들을 창문으로 삼아 그리스도를 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런 창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기만 하더라도 믿는 자들의 영혼이 충분히 새 힘을 얻을 수 있다.

 

우리가 보는 것은 지속적이지 못하며 불완전하고 간헐적이다. 그래서 우리는 대부분 금방 잃어버린 것으로 인하여 신음하며 울부짖게 된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42:1-2).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도와 그 영광 보게 된 후에도 곤고함에 빠져 고통스러워한 적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주님께서는 여전히 그러한 창문들을 통하여 자신을 어른거리게 하신다. 이렇게 자신을 어른거리게 하시는 것이라고 불리는 그리스도의 영광의 발현은, 말씀 사역을 통하여 설명되는 복음의 약속들로 말미암는다. 그 복음의 약속들을 통하여 제시된 그리스도는 얼마나 보배롭고도 우아하신가! 그러나 우리는 부분적으로만 볼 뿐, 부단하고도 항상 동일한 충만함으로는 보지 못한다.

 

어떤 경우에는 구름 속에 있는 해와 같다. 해가 구름 속으로 들어가 버리면 해가 어디쯤에 있는지 알 수 없다. 이처럼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얼굴을 가리시면 누가 그 얼굴을 볼 수 있겠는가? 욥이 말한 것과 같다.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23:8-9). ! 주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우리에게 밝히 보여 주시기를 기뻐하실 때면 우리 영혼은 그 사랑에 얼마나 더 사로잡히게 될까!

 

2. 하늘에서 직접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는 것

 

1) 하늘에서는 우리가 바라볼 대상이 실질적이고도 구체적일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인격 자체와 그 모든 영광을 끊임없이, 그리고 바로 앞에서 보게 될 것이다. 더 이상 복음서에 대략적으로 그려진 것과 같은 식으로 그리스도가 표현되지 않을 것이다. 사도는 그것을 거울로 희미하게 보는 것과 비교하면서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고전13:12)라고 말한다.

 

하늘에서는 우리의 육안을 그대로 사용할 것이다. 그러나 그때에는 우리의 육신적인 감각이 돌아오되, 그리스도와 그 영광을 바라보는 큰 일을 감당하기에 합당하게 돌아올 것이며, 그 정도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렇게 직접 보게 될 때 그 시각이 지성적인 것이 된다는 점이다. 우리가 보는 대상은 그리스도의 인성만이 아니라, 인성과 연합되어 있는 신성도 함께 보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무한한 지혜와 사랑과 능력의 탁월하심이 항상 우리 눈앞에 드러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복은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을 것’(살전4:17 참고)이라는 데 있다. 그래서 주님께서 친히 아버지께서 계신 곳에 함께 있어 그 영광을 보게’(17:24 참고)하여 달라고 기도하신 것이다. 그때 그리스도의 영광의 탁월함은 얼마나 놀랍겠는가! 그리스도를 직접 보는 것이야말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성도들이 탄식하며 기다리고 있는 바이다. 그러한 것을 간절하게 소망하지 않거나, 영혼과 마음이 자주 그 영광에 대한 간절한 소원으로 사로잡히지 않거나, 그러한 영광을 생각함으로써 고통 중에 새 힘을 얻고 그것을 가장 큰 기쁨으로 여기지 못하는 사람들은 눈이 먼 육신적인 사람들이요, 멀리 보지 못하는 근시안적인 사람들이다. 진정으로 영적인 사람들은 그런 영광을 부단히 생각함으로써 자신을 부추기고 새롭게 한다.

 

2) 하늘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는 능력을 받게 될 것이므로 그 일은 아주 현실적일 것이다

 

지상에 살 때에 마음이 가지는 모든 희미한 것과 견고하지 못한 것과 여러 가지 면에서 무능한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이다.

죄로 인하여 우리 마음은 성경이 증거하는 대로 허망하고 우둔하며 부패하게 되었다. 또한 결코 영적인 것들을 올바르게 분변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런 것들은 이 세상에서 은혜로 말미암아 제거되고 치유되는데, 이런 치유는 부분적인 것이지 완전히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영광 중에는 우리 마음에 있었던 흠이나 티나 주름 잡힌 것들이 전혀 존재할 수 없다(5:27). 그때에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분변하는 신령한 시각의 순전한 행사 한 번만으로도, 우리가 이 세상에서 마음으로 이룰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복락과 만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은혜의) 빛과 새 영광의 빛이 우리 마음에 심길 것이다.

사람의 본성에는 사람의 일을 분변하는 능력이 있다. 그러나 사도가 선언하듯이 그런 본성의 빛으로는 신령한 일을 분변할 수 없다(고전2:11-15 참고).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주기 위하여 부르신 사람들에게 믿음과 은혜의 빛, 신령하고도 우월한 빛을 주신다. 그렇다고 해서 이 새 빛이 사람의 본성의 빛을 없애거나 지워 버리거나 소용없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태양이 떠오르면 별들의 빛이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 빛이 여전히 있는 것과 같다. 새 빛은 본성의 빛을 인도하여 그 원리와 대상과 목적을 바르게 보게 한다.

 

이제 우리는 신령한 일들을 분변하게 하고, 앞에서 묘사한 불완전한 방식이나마 그리스도의 영광을 볼 수 있게 하는 믿음의 빛을 받았다. 그러나 하늘에는 마음을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나게’(12:3 참고) 만드는 초월적인 영광의 빛이 있을 것이다. 은혜의 빛이 본성의 빛을 폐하지 않고 도리어 개선시키고 강화시키듯이, 그 영광의 빛도 믿음과 은혜의 빛을 폐하거나 파괴하지 않는다. 오히려 연합하여 그것을 절대적으로 완전하게 할 것이다.

 

영화롭게 된 몸은 그 모든 감각도 그에 걸맞는 쓰임새를 가지게 될 것이다.

첫 순교자인 스데반은 죽기 전에 미리 그 영광에 대해 무언가를 본 것 같다.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6:15)과 같았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에게 비췬 이 영광의 빛으로 말미암아 그의 육신의 눈이 꿰뚫어 볼 수 있는 힘과 능력을 부여받았다. 그래서 그는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7:55)을 보게 된 것이다.

 

완전히 영화롭게 될 때 이렇게 그 영광을 직접 보는 힘과 작용이 어떠할 것인지, 아니면 그로 인하여 우리 영혼에 허락될지도 모를 신선함과 달콤함이 어떠할 것인지에 대해 누가 단정하여 말할 수 있겠는가? 스데반보다 훨씬 더 영화롭고도 순전하게 강화된 우리의 눈으로 직접 영광이 충만한 그리스도를 뵙는 것은 얼마나 영광스러울까!

 

3. 직접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는 데 대한 갈망

 

우리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그렇게 직접 부단하게 보기를 간절히 바라며 갈망한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그렇게 되도록 기도하셨다. 사도도 그것이 우리의 최상의 소망이라고 증언한다. 우리의 본성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상태가 바로 그것이다. 그런 상태가 될 때 우리의 영혼은 영원한 안식과 만족에 거하게 될 것이다.

 

이 땅에서 우리의 영혼은 여러 가지 연약함에 시달린다. 그리고 우리의 믿음은 무지와 어둠으로 인하여 역사하지 못하도록 방해를 받고 있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이 가장 좋은 지위와 경지에 이른다고 해도 구원을 위하여 탄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8:23).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사람들은 믿음과 신령한 빛 안에서 자라면 자랄수록, 현재의 짐을 더욱 예민하게 느끼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들의 완전한 자유에 이르기를 더욱 간절히 갈망하게 된다. 그 탄식에는 간절한 소원과 서러움이 한데 섞여 있다. 이러한 탄식이 계속적이고 습관적일 때, 그것이야말로 우리의 믿음이 이 세상에서 나타낼 수 있는 가장 훌륭한 효력 가운데 하나이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7:24).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가 이 땅에서 그리스도를 생각하면 금방 우리의 생각들에 대해 부끄러워지고 그로 인해 고통스러워진다. 그래서 우리의 생각들은 대체로 신음이나 탄식들을 발하게 된다. ‘! 우리가 언제쯤 그분께로 갈 것인가? 우리가 언제쯤 그분이 계신 그대로를 뵈올 것인가?’ 이렇게 이런 탄식은 하나의 고통으로 남는다. ‘선하신 주님께서 모든 믿는 사람들의 마음에 이러한 탄식과 신음을 더욱더 증가시켜 주옵소서!’

 

그리스도의 영광에 감동된 신자의 마음은 자석과 같다. 신자의 마음은 그리스도를 떠나 멀리 있을 때에 가만히 만족하고 있을 수가 없다. 비록 이 움직임이 약할지라도 계속해서 그리스도를 향하여 끌려가게 된다. 신자는 기도하거나 묵상하거나 은밀한 경건의 시간을 가지면서도 신음하며 탄식하고 한숨을 쉰다. 그것이 바로 신자의 마음의 생명력이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그리스도를 향해 움직여 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는 마음이 그 핵심이나 중심에 이르지 못하며, 그 중심의 진정한 안식에 이르지 못한다.

 

반면 저 하늘에서는 모든 것이 선명하고 맑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보는 가운데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될 것이며, 모든 것이 명확하게 드러날 것이다. 우리는 영원히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것이며, 그리스도께서 계신 그대로를 볼 것이다. 바로 이것이 천국이요 복락이며 영원한 안식이다. 하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모든 영광 중에 계신 그리스도의 인격을 부단히 보게 되는 것이다. 그때 우리의 총명의 눈이 너무나 영광스럽게 조명을 받아 그 영광을 부단하게 보고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안타까운 일이다! 이 땅에 있을 때 우리는 뒤로 물러가고, 우리의 묵상이 실패하며, 우리의 마음이 힘을 잃는다. 그리고 우리의 생각이 혼란스러우며, 우리의 눈이 이 영광의 광채를 보고서도 다른 데로 시선을 돌린다. 그래서 영광을 항상 묵상하지 못한다. 그러나 하늘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직접 보게 된다면, 우리의 영혼은 영원한 위안과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완전하게 보는 것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로 여기고 있는가? 만일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신다면, 그분이 우리 안에서 영광의 소망이 되실 것이다. 그리고 그 소망이 있는 곳을 더욱 강렬하게 소원하게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너무 사랑하고 세상에 속한 것들로 마음을 너무 가득 채운 나머지, 어서 속히 그리스도의 영광을 볼 수 있는 상태가 되기를 바라지 못한다. 그들은 안일함에 빠져,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기를기꺼워하지 않는다(고후5:8 참고). 이렇게 하늘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직접 보는 것을, 그리고 희미하게만 바라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도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조금밖에는 보지 못한다.

 

지금까지 그런 것들을 묵상하는 일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삶에서 소금이 되어 모든 것을 맛나게 하고 모든 것을 때에 맞게 할 것이다. 반면 이런 일에 신령한 부지런함이 부족하면 게을러지고 무분별해지며 우리의 신앙고백이 세속화되어 버린다.

 

복음의 복된 거울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는 신자들은 주의 영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형상을 닮아 자꾸 변해 간다. 반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자기 사랑이라는 저주스러운 거울을 통해서 그에 속한 형상으로 자꾸 변해 간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신 것처럼 우리도 부단히 바라면서 살아가는 것이 마땅한 도리가 아닐까?


출처 : 청교도 아카데미
글쓴이 : 유정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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