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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로이드 존스, `하나님 나라`, 6장 능력

강대식 2019. 1. 30. 22:10

6.   능력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전4:20)

 

고린도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교만한사람들이었다. “어떤 이들은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지 아니할 것 같이 스스로 교만하여졌다고 말한다. 이어서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들의 말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보겠으니”(고전4:18-19). 지금 우리도 기독교를 논하는 것을 아주 좋아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에게 충격을 주는 기독교에 관한 책들이 잇달아 나온다. 이런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며, 더 충격적인 책일수록 더 잘 팔린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 나라 또는 기독교나 기독교의 메시지는 지적인 관심의 문제가 아니다. 고린도 교회의 문제이자 우리 시대의 문제이기도 하다. 기독교의 메시지가 다른 많은 것들 가운데 하나의 관점이나 가르침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 인간과 삶과 죽음과 존재의 의미와 목적을 말하는 다양한 가르침 가운데 하나라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

 

더 나아가, 기독교의 메시지는 단순히 지적 동의의 문제도 아니다. 하나님 나라는 몇몇 명제에 대한 지적인 동의가 아니다. 하나님 나라가 단순히 지적 동의라면, 하나님 나라는 능력이 없으며 삶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이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교회 일에 매우 열심인 교인들이 많다. 이들은 신앙고백에 동의하며, 주일마다 신앙고백을 암송한다. 많은 것을 희생하면서 새벽기도까지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 가운데 삶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전혀 나타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자들이라고 바울은 말한다(딤후3:5). 끔찍하지만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이들은 말로기독교를 선택했다. 기독교는 이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이들의 삶은 실패였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 나라는 삶과 동떨어진 태도의 문제나 기독교의 메시지에 흥미를 느끼는 정도가 아니다. 하나님 나라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며, 사람들을 다스리며, 사람들에게 능력을 주는 것이다. 말이 꼭 필요하지만 말이 전부가 아니다. 능력과 증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입니까? 여러분의 삶은 어떠합니까? 여러분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가족이나 동료 교인들은 여러분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우리 시대에 이것을 이해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우리 시대에 기독교에 관한 말이 넘쳐 난다. 그렇다면 그 속에 능력이 있는가? 우리 시대의 기독교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저는 이러한 현상이 우리 시대의 교회 상태를 초래한 원인 가운데 하나라는 것을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 빅토리아 시대 말기와 20세기 초에, 교회 안에는 이 참 많았다. 많은 이야기와 설교가 있었고, 많은 책이 출판되었다. 그런데 거기에 능력이 있었는가? 없었다! 정작 기독교를 실천하거나 삶으로 보여주지 못했다. 주일에는 그리스도인이지만 주중에는 그리스도인이 아니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 나라가 무엇보다도 능력이라고 말한다. 이 부분을 분명히 하고 넘어가야 한다. 기독교의 메시지는 이 세상에 들어온 가장 큰 능력의 선포이며 역사이다. 기독교의 메시지만큼 개개인의 삶과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없다. 우리의 주된 관심은 철학이 아니라 역사라는 사실을 강조하는데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도 여기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역사를 지배하신다. 1963년이라는 연도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역사가 인정한 가장 큰 요소이며 가장 큰 능력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파멸의 시대에 우뚝 솟은 탑이다. 세상 역사를 읽어 보면, 기독교가 세상을 일깨운 가장 큰 힘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기독교의 메시지가 말 그대로 대로마제국을 바꿔놓았다.

 

종교개혁도 마찬가지다. 종교개혁은 우리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사실 가운데 하나이다. 사람들은 엘리자베스 시대를 자랑하며, 셰익스피어를 비롯한 문학과 그 외의 모든 것을 자랑한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이 모든 것이 종교개혁의 결과였다! 더 나아가 기독교가 온 세상의 삶의 현장으로 들어온 가장 큰 능력이며 가장 강력한 영향력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기독교는 개인뿐 아니라 사회를 바꾸어 놓았다. 교회사에 있었던 몇몇 대부흥의 이야기는 누구나 알고 있다. 위대한 역사가 레키는 프랑스가 프랑스 혁명 때 겪은 것을 영국이 겪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18세기의 복음주의 부흥 운동, 감리교 부흥 운동 때문이었다고 주저 없이 말했다. 부흥 운동은 사람들에게 교육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그 결과 학교가 생겨났다. 주일학교를 낳았고, 병원과 의료복지를 낳았다. 빈민구호법의 개혁을 낳았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성령께서 강하게 임하신 결과이다. 기독교는 능력이다.

 

기독교는 일으켜 세우며, 자유하게 한다. 그 무엇보다도, 기독교는 세상을 일깨우는 가장 큰 힘이다. 저는 단순한 사람들이 쉽고 꾸밈없이 복음을 전했음에도, 그 결과로 마을의 술집이 온통 텅 비어 버렸다는 이야기를 많이 알고 있다. 교회사에서 이런 일들이 많다. 예를 들면, 노스 웨일스에서 박람회가 여러 날 동안 계속 열린 적이 있다. 유흥과 술과 폭력과 싸움과 악으로 악명 높은 박람회였다. 그런데 존 엘리아스라는 사람이 설교를 하자 이런 일이 완전히 사라졌다. 이것이 능력이다. 이것이 기독교이다.

 

둘째, 기독교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여기에 핵심이 있다. 기독교는 일차적으로 우리가 행하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는 우리에게 무언가를 행하라고 요구하지도 않는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라고 했다. 그 이유는,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1:16)이었다. 사도행전 2장을 보라. 여기서 제자들, 다락방에 모인 그리스도인들은 함께 기다리며 기도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났다. 이들은 모두 성령과 능력이 충만해져 각기 다른 언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이 한 일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에게 일어난 일,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하신 일을 증거하고 있었다. 기독교는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다.

 

이것은 매우 기본적인 진리이다.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행하시는 것이다. 여러분이 기독교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가 여러분을 사로잡는 것이다. 강한 능력이 여러분에게 임하고, 여러분에게 무언가를 행하고, 여러분을 과거의 자리에서 새로운 자리로 옮긴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에 우리의 삶과 행동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기독교는 단지 표면적인 것이 아니라 창조자 하나님이 영혼 깊은 곳에 행하시는 것이다.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보다 더 큰 것은 없다.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활동,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이 우리 가운데 임할 때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능력은 무한하다. 그분은 영원한 하나님이며, 그분의 다른 성품뿐 아니라 그분의 능력도 영원하다. 하나님 나라는 다름이 아니라 그분의 연속적인 행위이다. 하나님 나라는 언제나 능력이다. 하나님이 친히 오셔서 사람들을 사탄의 나라에서 구해 내어 그분의 나라로 옮기시는 것이다. 구약성경에 이것을 잘 보여주는 멋진 예가 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강력한 바로의 힘과 통치 아래서 완전히 노예로 살고 있었다. 하나님 나라는 이스라엘을 이러한 상황에서 건져 냈다. 구약성경은 이 사건을 얼마나 자주 들려주는지 모른다. 시편 기자들도, 선지자들도 예외가 아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강한 손으로 구해 내셨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손으로 홍해를 가르시고, 전능하신 능력으로 이스라엘을 이끌어 홍해를 건너게 하셨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이다! 하나님은 광야에서도 이스라엘을 계속 인도하셨다. 만나를 주셨고, 메추라기를 보내셨다. 반석에서 물이 나게 하셨다. 이것은 처음부터 끝가지 능력이다.

 

그러나 능력으로 나타나는 하나님 나라를 제대로 보고 싶다면 신약성경을 봐야 한다. 특히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하나님은 천사장을 보내 마리아에게 그리스도를 낳으리라고 알리셨다.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1:35,37). 그리스도의 탄생도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으로 이루어졌다.

 

하나님 나라가 능력이라는 사실은 주님의 가르침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분의 말씀을 들은 모든 사람이 감동을 받은 것은 말씀이 그대로 나타나는 능력 때문이었다. 산상 설교를 마친 후,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고 말한다(7:28-29).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의 능력을 느꼈다. “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때까지 없었나이다”(7:46). 예수를 잡으러 간 대제사장의 수하들의 말이다. 그 말씀의 은혜뿐만 아니라 그분의 능력과 권세와 명료함에 감동했다.

 

동일한 능력이 그분의 기적에서도 나타난다. “이처럼 놀라운 권세와 능력을 가진 이 사람은 도대체 누군가?” “내가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11:15,20). 그러나 궁극적으로 그분의 능력은 우주가 목격한 가장 강력한 사건에서 나타났다. 주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1:4). 하늘에 오르셨고, 오순절에 성령을 보내셨다.

 

기독교는 단순히 좋은 조언이나 권고가 아니다. 기독교는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곧 사람들을 사로잡고 변화시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하는 능력이다. 이러한 능력이 항상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죄를 깨닫게 하는 것이다. 오순절에 베드로가 특별한 설교를 했을 때, 사람들은 마음이 찔려 외쳤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이들은 갑자기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느꼈다. 자신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았으며 자신들의 손이 죄악되며 그리스도의 피로 젖어 있음을 깨달았다. 여러분도 이렇게 부르짖은 적이 있는가? 여러분도 죄를 깨닫게 하는 능력을 알고 있는가? 복음 안에 있는 죄를 깨닫게 하는 능력을 체험한 적이 있는가? 심판을 생각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떨어 본 적이 있는가? 자신이 잃어버린 영혼이라는 것을 깨달은 적이 있는가? 능력으로 선포되는 하나님 나라는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깨닫고 두려움에 떨게 한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그 나라의 메시지를 믿고 이해하게 해주는 능력이기도 하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고전2:14). 그렇다면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대답은 하나뿐이다. 성령의 능력으로 믿을 수 있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전2:10,12),

 

이 말씀을 믿고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기뻐하려면 능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능력을 받았는가? 이것이 기독교이다. 기독교는 죄를 깨닫게 하는 말씀의 능력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여러분의 영혼의 구주로 믿게 하는 능력이다. 성령께서 이 능력을 여러분에게 주신다.

 

그러나 기독교는 새롭게 창조하는 능력, 사람들에게 새 생명, 다시 태어나며, 새 출발을 주는 능력이기도 하다. 인간은 본질상 잃어버린 자이며 죽은 자이다. 인간의 행위가 인간을 일으키거나 그리스도인으로 만들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새로운 생명을 주는 능력이 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며, 새로운 재능을 주며, 새로운 이해를 주며, 새로운 모든 것을 준다. 이러한 능력은 우리가 거듭날 때 나타난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우리를 회심시키는 것 또한 하나님의 능력이다.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로 하여금 죄에서, 세상에서, 악에서, 죽음에서 돌이켜 새롭고 깨끗하고 거룩한 생명으로 향하게 할 수 있다. “하나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오직 능력에 있다.” 여러분은 새로워졌으며,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가? 이것이 기독교이다.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5:16). 기독교는 여러분을 일으킨다. 기독교는 실패를 이길 수 있는 힘을 주는 새로운 생명의 능력이다.

 

하나님 나라는 삶의 시련과 고난을 견딜 능력을 준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로 모든 것을 견딜 수 있게 한다. 우리는 모든 시련과 고난을 이길 수 있다. 왜냐하면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기 때문이다(8:37).

 

마지막으로, 하나님 나라는 우리에게 죽음 앞에서도 미소지을 수 있게 한다. 우리는 승리와 기쁨 가운데 이 세상을 떠난다. 그 능력을 아는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4:7-8).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능력이다. 그러므로 여기 우리가 스스로에게 해야 하는 질문이 있다. “나의 삶은 어떤가? 나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 알고 있는가? 나와 함께 사는 사람들은 내 안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분명히 보고 있는가? 내 삶이 하나님이 능력을 보여주는가? 다른 사람들이 내 삶을 보면서 영향을 받는가? 나는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분이 여러분을 새롭게 하셨는가? 여러분 자신 속에 새로운 본성이 있는가? 없다면,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며, 여러분이 무엇을 알든 무엇에 관심이 있든 간에 여러분은 하나님의 나라 밖에 있다. 그리스도인은 성령으로 난, 위로부터 난, 거듭난, “말이 아니라 능력으로난 새로운 피조물이다. 이것을 알고 있지 못하다면 생명이 없다고 고백하라. 그리고 외치라. “하나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여러분이 진정으로 부르짖으면, 하나님의 능력이 여러분을 사망과 죄의 무덤에서 건져 내신다. 여러분 안에 새로운 생명을 주며, 여러분을 인도하고 이끌며, 마침내 여러분을 영원한 영광의 거처로 맞아들이신다는 것을 곧 알게 될 것이다!


출처 : 청교도 아카데미
글쓴이 : 강대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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