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장 회심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행 3:19)
1. 성경적인 일이다.
성경은 회심에 대하여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다. 어떤 교리를 좋아하고 싫어하는 문제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이 성경에 나타나 있는가이다.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18:3)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함을 받으라”(행3:19)
회심의 개념을 나타내는 성경 구절들 - 새롭게 되다, 변화 받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다,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킴을 받다, 빛에 비추임을 받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다, 거듭나다, 옛 사람을 버리고 새 사람을 입다 등, 똑같은 회심이라는 개념을 서로 다른 관점에서 바라본 것이다.
2. 현실적인 일이다.
이 시대는 거짓과 기만의 시대요, 허위와 위선의 시대라서 해로운 음식과 거짓된 저울이 널려있고, 종교 가운데에 허풍과 회칠한 무덤이 널려있다. 이로 인하여 기독교 신앙을 내세우는 모든 사람이 수상쩍은 사람 내지는 위선자로 취급을 당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회심 같은 것을 현실적인 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할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회심은 실제로 일어나는 일임을 강조하고 싶다. 사람이 자기가 한 때 싫어하던 것을 좋아하게 되고 좋아하던 것을 싫어하게 되는 것, 이것이 곧 회심이다. 성경은 회심한 사건들에 대해서 여러 가지 예를 보여주고 있으나, 유감스럽게도 많은 사람들이 신앙 문제에 있어서 아무 것도 그대로 받아들이려 하지는 않고 따지려고만 한다. 회심은 현실적인 일이다.
3. 꼭 있어야 할 일이다.
소위 교양 있고 품위 있는 사람들은 회심이 성경적 진리요 현실적인 일이긴 하나 이교도들에게나 도덕적으로 타락한 자, 죄수들 등에게나 필요한 것이라고 말한다. 교인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교인들에게 그렇게 말하는 것은 무자비하고 편협하며 그릇된 일이다” 이런 생각은 기만에 지나지 않으며, 이는 하나님의 말씀에 전혀 근거를 두지 않은 순전히 인간적인 발상이다.
회심이 꼭 필요한 이유는 모든 인간의 본성이 전적으로 타락해 있기 때문에 회심하지 않은 사람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나, 그분과의 교제인 기도, 그분의 명령, 그분의 성전, 그분의 날 등에 대해 조금도 기쁨을 느끼지 못한다. 형식상의 그리스도인이 될 수도 있고 습관적으로 종교인 같은 행위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회심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소위 신앙이라는 것은 한 조각 벽돌이나 돌 정도의 가치 밖에는 없을 것이다. 과연 죽은 사람이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겠는가? 회심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께 대하여 죽은 사람이다. 그들의 몸은 교회에 있으되 마음은 돈, 쾌락, 세상 일 등에 있고 교회에 있지 않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회심하지 않는다면 천국의 기쁨을 누릴 수 없다. 천국은 거룩함으로 다스려지는 곳으로서 죄나 세속적인 것들이 발붙일 틈이 없기 때문이다. 천국에 가려면 먼저 회심해야 한다. 세상 사람들이 구원을 얻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두 가지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대속과 중재하심, 그리고 우리 속에 성령께서 회심하게 하시는 은혜이다.
4.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나는 주저함 없이 회심은 가능한 일이라고 말하고 싶다. 회심이 가능하다고 해서 인간이 스스로의 능력으로 부패한 마음을 제거하고 새로운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담고 있는 내용 때문이다. 복음으로 말미암으면 불가능이 없다는 것이 곧 복음의 영광스러운 면이다. 주님 안에는 생명이 있으며, 그는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쥐고 계시며,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으셨고, 자기가 원하는 자를 일으키신다. 진흙으로 빚어졌던 아담에게 숨을 불어넣어 산 사람이 되게 하셨듯이 완악하고 죽은 심령 속에 영적인 생명을 불어 넣으신다. 그에게 불가능한 일은 없다. 그의 능력은 변함이 없고, 그의 크신 사랑도 한결같다. 예수 그리스도는 살아 계신다. 그러기에 회심이 가능한 것이다.
이뿐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그가 구원하고자 하신 사람들에게 보내 주신 성령의 무한하신 능력 때문에 회심은 가능하다. 죄인들에게 생명의 원천이 되시는 그리스도로부터 생명을 공급하시는 이가 곧 성령이시다. 성령은 태초에 “빛이 있으라”는 말씀이 울려 퍼지기 전에 수면 위에 운행하셨고, 지금도 죄인들의 영혼 위에 운행하시며 그들이 본성에서 어둠을 제거하신다. 성령은 단단한 것을 부드럽게 할 수 있고, 곧은 것을 굽게 할 수 있고, 영적으로 눈 먼 사람은 보게 하고, 귀먹은 사람은 듣게 하고, 저는 사람은 온전히 걷게 하고, 심령이 차가운 사람은 뜨겁게 하며, 무지한 사람에게는 깨닫게 하고, 영적으로 죽은 사람은 살리신다. 성령은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신다. 그러므로 회심이 가능하다.
여러분 자신의 연약한 심령을 바라보면 실망하기에 꼭 알맞지만, 그러나 그리스도와 성령을 바라보면 모든 것이 가능함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 누구도 절망할 필요가 없다. 회심하지 못하는 것은 영생을 얻기 위해 예수께로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5. 복된 일이다.
지금까지 한 말에 대하여 “다 맞는 이야기요. 그러나 과연 회심한다고 해서 사람이 더욱 행복해진다는 보장이 있는가?”라고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참된 행복은 세상 사람들의 행복과 다른 것임에 틀림없다. 즉 그리스도인의 행복이란 평온하고 흔들리지 않으며 깊은 곳에서 흐르는 내면적인 기쁨이지, 무슨 흥분이나 경박한 즐거움 따위가 아니다. 또한 이는 아무리 즐거움에 젖어도 죽음과 심판과 영원 그리고 다가올 세계를 결코 잊지 않는 자들이 누리는 건전하고 평온한 기쁨이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이 회심에 대하여 좋지 않게 말하는 것은 회심한 사람들의 겉에 드러난 무겁고 고요한 인상만 볼 뿐, 내적인 평화는 전혀 못 보기 때문에 회심한 사람들을 불행하다고 생각해 버린다. 그들은 일을 가장 많이 하는 사람이 자랑하지 않으며 진정으로 최상의 행복을 누리는 사람이 행복하다는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회심한 사람은 하나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리기에 행복한 것이다. 그의 죄는 사함을 받았고, 그의 양심은 죄책감에서 해방되었으며, 죽음이나 심판이나 영원을 생각할 때도 두려울 것이 없다. 또한 회심한 사람은 그 심령에 질서가 있음으로 행복하다. 온갖 격정은 통제되고, 온갖 감정도 바르게 쏟아지게 된다. 비록 약한 인간이지만 그의 심령 속에서는 모든 것이 혼란스럽지 않고 제자리를 찾는다. 그리고 회심한 사람은 환경을 초월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질병이나 실패나 죽음이나 그 어떤 일이 다가와도 그가 하늘에 쌓아둔 보화를 건드릴 수도 없고, 그에게서 그리스도를 빼앗아 갈 수도 없다. 그런가 하면 회심한 사람은 준비가 되어 있어서 행복하다. 인생에 있어서 중대한 문제인 구원의 문제가 해결되었으므로 그의 삶에 어떠한 일이 닥쳐와도 그는 얼마간 준비가 되어 있는 셈이다.
이와 같은 것들이 진정한 행복의 원천이다. 그러나 회심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감추어진 것들이다. 진정한 행복을 얻으려면 반드시 회심해야 한다.
6. 눈으로 볼 수 있는 일이다.
많은 신자들이 스스로 회심했다고 말한 뒤에 회심이라는 이름을 더럽히는 삶을 살았다. 그들은 일종의 황홀감이나 자신감 따위를 진정한 하나님의 은혜로 여겼으며, 그러한 동물적인 감정이 있기 때문에 자신을 회심한 사람이라고 믿은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분명하고 진정한 회심을 요구하고 있다. 진정한 회심이 일어난 곳에는 언제나 그 열매가 나타나게 마련이다.
물론 회심한 사람이 완벽해진 것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들과는 구별되는 차이점이 있음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즉 회심한 사람은 죄를 미워하고, 그리스도를 사랑하며, 거룩함을 추구하고, 성경 말씀을 즐거워하며, 기도에 전념하는 것을 볼 수 있으며, 또한 그의 인내, 겸손, 믿음, 온유, 자비, 신실, 정직, 고상함, 친절 등을 볼 수 있다. 사람마다 정도는 다르겠지만, 회심한 사람들은 이러한 것을 목표로 삼고, 비록 완전한 지경에는 이르지 못해도 실행하려 한다. 어쨌든 회심이 일어나 곳에서는 합당한 열매를 찾아볼 수 있게 마련이다.
그 결과나 증거를 보여주지 못하는 회심은 아무 소용이 없다. 나의 이런 태도를 율법적이라고 부를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혀 무분별하고 제멋대로인 사람이 되느니 율법적이라는, 사실과는 다른 소리를 듣는 편이 훨씬 낫다. 성령의 열매가 전혀 보이지 않는 사람 속에 성령께서 거하실 수는 없는 것이다.
7. 맺는 말
1) 무엇보다 자기가 회심했는지를 살펴보기 바란다. 당신이 교회에 다니거나 세례를 받고 성찬식에 참석하는 것은 전혀 그 대답이 될 수 없다.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당신의 심령은 변화되었는가? 당신은 진정 하나님께 돌아왔는가?
2) 회심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는 회심할 때까지 결코 안심할 수 없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짧고 영원이 다가오고 있다. 인생은 불확실하지만 심판은 분명한 것이다. 하나님을 찾으라!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결코 자신이 회심한 사람임을 알게 되기 전에는 안심할 수 없다.
3) 그 복스러운 변화를 체험한 이들에게 찬사를 보내고 싶다.
당신이 회심한 사람이라면, 당신의 소명과 회심을 확증하라. 성령으로 하여금 당신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보증하도록 하라. 우리는 이 세상에서 확고한 보증을 얻어야 한다. 단지 소망이 있기만 해도 좋은 일이지만, 확신을 갖는 것은 훨씬 더 좋은 일이다.
당신이 회심한 사람이라면, 이 세상에서 낙망할 일은 없을 것이다. 물론 심령 가운데 여전히 연약함이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회심 그 자체로 완전해지는 것도, 천국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당신 속에는 아직도 옛 사람이 살아 있으며, 지금도 이 세상은 위험으로 가득하고, 마귀는 아직 죽지 않았다. 그러므로 회심한 죄인이라도 여전히 연약한 죄인이며, 날마다 그리스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면 당신은 결코 낙망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회심한 사람이라면, 해마다 은혜 안에서 성장하기를 힘쓰라. 지난 일을 바라보지 말아야 한다. 다만 말씀의 신령한 젖을 사모하여 그 가운데서 성장해야 한다. 신앙생활에 게을러지거나 잠들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의 학교에서는 성적이 가장 높은 사람과 가장 낮은 사람 사이에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기억하라. 당신이 사는 날까지 삶의 표어는 “더 앞으로, 더 높이”가 되어야 한다.
당신이 회심한 사람이라면, 부지런히 다른 사람들에게 선을 행함으로써 당신의 회심이 지닌 가치를 보여야 한다. 회심이야말로 형용할 수 없는 축복이라고 생각한다면, 다른 사람들의 회심을 위해 전심전력으로 노력하여 당신의 그러한 생각을 나타내 보여야 할 것이다. 단지 그들을 교회에 데려오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최소한 그들이 회심할 수 있도록 노력하라.
'성경도 아카데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서창원, "청교도 신학과 신앙", 1장 왜 청교도인가? 2장 청교도 운동의 역사적 배경과 특성 (0) | 2019.02.20 |
---|---|
[스크랩] 존 C. 라일, "옛 길", 13장 마음 (김영희) (0) | 2019.02.19 |
[스크랩] 로이드 존스, `하나님 나라`, 8장 하나뿐인 희망 (0) | 2019.02.19 |
[스크랩] 존 오웬, "그리스도의 영광", 2부 2장 영적 후패에서 벗어나게 하는 방식 (0) | 2019.02.15 |
[스크랩] 로이드 존스, `하나님 나라`, 7장 세 사람 (0) | 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