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02 주일설교
본문: 계 2:1-5
제목: 에베소 교회
주님은 요한 사도에게 일곱 교회에 편지하라고 하신다.
각 교회마다 칭찬과 책망과 위로가 있다.
성경에서, 일곱은 완전수이기 때문에 모든 교회에 보내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에베소 교회의 모습이다.
에베소 교회는 사도 바울이 3년간 머물면서 세우고 목회한 교회이다.
에베소는 소아시아에서 가장 주된 도시였다.
매우 부유하며 상업이 발달한 도시였다.
우상 숭배와 미신이 성행했으며 특별히 아데미 신전으로 유명했다.
에베소 교회에는 여러 명의 사역자들이 있었다.
바울 디모데 여러 장로들이 있었다.(행20:17)
그들은 모두 그 사역에 있어 하나였기 때문에 단수로 ‘사자’라고 불린다.
1.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계2:1)
에베소 교회를 대하는 주님의 특징적인 모습의 묘사이다.
각 교회마다 특징적인 주님의 모습이 다르다.
별은 교회의 사자요, 촛대는 교회이다.
주님은 일곱 교회의 사자들을 오른손으로 붙잡고 계신다.
주님은 자신의 사역자들을 존귀케 하며, 특별한 은총을 나타내며, 보호하신다.
사자는 사신 혹은 대사를 의미한다.
오른손은 권능의 손이며(시21:8), 호의의 손이며(시44:3), 영광과 존귀의 손이다(시110:1).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28:20)
주님은 일곱 금 촛대, 교회 사이를 거니신다.
교회가 촛대로 비유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교회들의 본질과 임무를 보여준다.
촛대는 스스로 빛을 내지 않고 단지 빛을 품을 뿐이다.
하나님의 순전한 말씀을 지키는 것이 교회들의 본질적인 의무이다.
교회는 교리적인 모든 오염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야 하고,
그 지체들의 행실을 정결하게 지켜야만 한다.
촛대는 교회를 ‘진리의 기둥’으로 표현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것은 교회들이 스스로 빛을 발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로부터 빛을 받기 때문이다.
주님이 일곱 금 촛대 사이에 계신다는 것은, 교회와 모든 지체들과 함께 거하심을 의미한다.
항상 가까이 계시면서 교회들을 도우시고 보호하시고 지키심을 의미한다.
2.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아노라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계2:2-3)
주님은 에베소 교회의 행위와 수고와 인내를 칭찬하고 계신다.
전지전능하신 주님은 우리의 행위와 수고와 인내를 아신다. 인정하신다.
행위를 아심으로 행한 대로 갚으시고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신다.
“나는 그들의 행위와 그들의 손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렘25:14)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마16:27)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계22:12)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이고 정의이시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7-9)
수고는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을 알고, 복음을 전파함에 있어서의, 그들의 수고이다.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빌3:7-9)
버려야 얻을 수 있다. 버리질 않으니 얻지를 못한다.
주님을 만났으면 유익하던 모든 것을 해로 여기고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기는
결단과 회개가 필요하다.
그리스도를 알려면, 가장 고상한 그 지식을 알려면,
그동안 내가 지니고 살았던 모든 생각 이론 사상들을 다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시켜야 한다.
하나도 버리지 않고 끌어안고 사니 변화가 없고 진전이 없다.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경계에 경계를, 교훈에 교훈을 더해 봐야, 뒤죽박죽이 될 뿐이다.
가다가 뒤로 넘어져 부러지며 걸리며 붙잡히게 되고 만다.(사 28장)
가장 고상한 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지식을 알려면
배우는 수고를 해야 하고, 배우는 데 시간을 바쳐야 한다.
새로운 배움으로 밀어내지 않으면 가라앉아 묵은 찌꺼기들을 내보낼 수가 없다.
새 것이 될려면, 옛 것, 지나간 것을 버려야 하고,
새 사람을 입을려면, 옛 사람을 벗어버려야 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베드로 사도는 알아야 자라고 성숙할 수 있다고 한다.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벧후3:18)
베드로는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헤와 평강이 더욱 많을 것이라 하고,(벧후1:2)
우리는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아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주셨다고 한다.(벧후1:3)
말씀을 배우려 하지 않는 자가 가장 교만한 자이다. 스스로 배부른 자이다.
말씀으로 사는 그리스도인이 말씀을 배우지 않으면 떡으로만 살게 될 것이다.
그것은 결국 심은 대로 저주와 멸망을 거두게 될 것이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계3:17)
인내는 십자가를 짊어짐에 있어서의 그들의 인내이다.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시고 칭찬하신다.
‘때가 이르매’ 거두게 된다. 낙심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다면 잠잠하고 참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으라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약5:10-11)
우리 주님도 때가 차매 여인의 몸에서 나셨다.
공생애에 앞서 30년을 말구유 나사렛 목수 생활로 기다리셨다.
아브라함도 25년을 기다려 이삭을 받았고,
모세도 기다림의 40년이 차매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천사가 나타났다.
우리에게 주어진 십자가도 인내의 수고로만 온전히 짊어질 수 있다.
약속을 기업으로 받은 사람들은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본을 보였다.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주님은 가르치셨다.
불의한 재판장도 간청하는 과부의 원한을 풀어주었는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하셨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셨다.
주님은 또한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을 칭찬하신다.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드러낸 에베소 교회를 칭찬하신다.
청교도 아카데미는 이 일을 특별한 사명으로 알고 사역하고 있다.
에베소 교회는 열심과 뜨거운 믿음으로
잘못된 교리를 전파하며 패역하게 행동하는 자들을
자신들의 교제 안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요즘 교회들은 말씀과 교리에는 관심이 없다. 그래서 분별력이 없다.
듣기 좋고 재미 있으면, 성과(실용)가 있다고 하면, 다 받아들이고 섞고 혼잡하고 혼음한다.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고 하신다.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요이1:10)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될 수 있겠는가?
영을 다 믿지 말고 분별해야 한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요일4:1)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딤전4:1)
3.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희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2:4-5)
처음 사랑을 버렸다는 것이다.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라 하신다.
처음 믿을 때 가졌던 뜨거운 믿음과 사랑과 헌신과 열심이 다 식었으니
회개하고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는 것이다.
예전의 뜨거움과 예전의 헌신을 회복하여 처음 사랑으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처음 사랑은 기본으로 돌아가 열심을 다하는 것이다.
주일 성수와 성경 읽기와 기도생활, 십일조와 예물은 믿음 생활의 기본이요 처음 사랑이다.
주일예배를 다른 일 때문에 빼먹고, 성경 읽기와 기도를 멀리하고,
십일조와 예물에 인색해지면, 처음 사랑을 버린 것에 틀림 없다.
회개는 마음의 변화와 행동의 변화를 다 포함한다.
심령을 새롭게 하지 않으면 지어먹은 행동은 오래 갈 수 없다.
말씀과 성령으로 새롭게 하고 주님의 보혈로 다시 양심과 마음 깊은 곳을 씻어야 한다.
회개하고 처음 사랑을 회복할려면 다시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워질려면 세 가지를 해야 한다고 바울은 말씀한다.
첫째, 모든 지혜로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6:6-7)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일러주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주의하여 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히13:7)
둘째, 우리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는 성령의 역사를 따르고 힘입어야 한다.
죄와 육체와 세상과 사탄에 대한 우리 믿음의 선한 싸움은 성령의 능력으로 하는 것이다.
성령을 구하고 성령을 근심시키지 말고 성령을 소멸하지 말아야 한다.
셋째, 성령의 능력을 따라 우리도 힘을 다해 수고를 해야 한다.
이 세 가지를 순서대로 조화롭게 하여서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성숙한 자로 세움을 받기 바란다.
그리스도를 주로 받았으면 그 안에 뿌리를 박고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야 한다.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사로잡을까 주의해야 한다.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다.
처음 사랑을 회복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주님 찾아오셔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신다고 하신다.
너를 교회로부터 쫓아내면서 ‘내 백성이 아니라’는 뜻으로 ‘로암미’라 부를 것이다.(호1:9)
에베소 교회의 촛대는 이미 오래 전에 옮겨지고 말았다.
회개하지 않은 나는 교회로부터 쫓겨나는 신세가 되고,
회개하지 않는 교회는 촛대를 옮기고 없어지고 마는 것이다.
회개하지 않는 자에게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신 것이다.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너희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간절히 사모하라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벧후3: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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