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8-25 주일설교
본문: 롬 12:1-2
제목: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1. 너희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12:1)
성경은 우리의 몸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라고 하신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6:19-20)
이 말씀 바로 앞에는 음행을 피하라는 말씀이 있다.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녀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창녀와 합하는 자는 그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부부가 합하여 한 몸이 되고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한 영이 된다.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
정상적인 관계를 벗어난 음행은 한 영으로서의 배신으로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고,
사탄은 그 몸이 더러워졌으니 가장 좋아하는 것이다.
기독교 초기에 희랍 철학의 영향을 받아 몸은 천한 것이고 영만 귀한 것으로 여기며
구원 받는 것은 영혼이니 몸은 무슨 짓을 해도 괜찮다는 이단이 있었다.
음행을 합리화하고 쾌락을 추구하기 위한 변명에 지나지 않았다.
기독교는 사람의 몸과 영혼의 이원론을 인정하지 않는다.
영혼만큼 몸도 귀하다.
영혼을 담는 그릇이 더러운데 어찌 그 영혼이 깨끗할 수 있겠는가?
성경에서 마음은 영혼의 중심이다.
그 마음으로 믿고 입술로 고백할 때 구원 받는 것이다.
영혼과 마음은 몸을 움직이고 몸은 영혼과 마음에 영향을 준다.
영혼과 마음의 깨끗함을 무엇으로 알 수 있는가?
일단 몸의 깨끗함을 통해서 그 영혼과 마음과 양심의 깨끗함을 알 수 있다.
바리새인의 위선적인 깨끗함은 마음의 깨끗함의 표현이 아니다.
그들은 잔과 대접의 겉만 깨끗이 할뿐, 마음은 탐욕과 방탕으로 채우고 있었다.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낙타는 삼키고 있었다.
무덤에 칠한 하얀 회일 뿐 속에는 썩은 시체가 있는 것과 같았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몸은 거룩한 산 제물이 되는 것이다.
구약 희생제사를 드릴 때 깨끗하고 온전한 제물만 받으셨다. 말라기의 말씀이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 주겠느냐 —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말1:8-10)
눈 먼 희생제물,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은 악한 것이다.
총독에게 드려도 받지 않을 예물을 하나님께 드리고 안심하는 교인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교회 문을 닫을 자가 있는게 좋을 것이다.
구약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가 강조한 것이 온전한 십일조와 봉헌물이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3:8-10)
온전한 십일조와 봉헌물은 하나님의 것임을 선언하고 있고,
그것은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제물로 드리는 것이다.
온전한 십일조와 봉헌물에 인색한 사람은 주일 예배 드리는 것도 인색하고
사는 형편도 인색한 이유를 이 말씀에서 알 수 있다.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지 말기 바란다. 그것이 저주를 불러온다.
십일조는 구약의 제도라고 부인하는 사람들은 교회 문을 닫을려고 하고
목사들로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지 못하게 하여 돈벌이하러 내 보낼려고 하는 것이다.
온전한 십일조는 모든 소득에 대하여 드리고, 다른 항목으로 분할하지 않고
거르지 않고 드리는 것이다. 봉헌물을 따로 드리는 것이다.
온전한 십일조는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는 것이고,
동시에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다.
온전한 십일조는 하나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는 것이고,
하늘 문을 열고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는가 시험하도록 허락하신 것이다.
그 축복이 어떠한 것인지를 유념하고 재물욕과 걱정에서 해방되기 바란다.
정말로 성령으로 거듭나고 회심하여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우리 몸은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요 하나님의 성전인 것이다.
그리고 주님이 흘리신 피값으로 우리 몸을 사셨으니 이제 우리 몸은 우리 것이 아니다.
왜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몸을 함부로 굴리고 함부로 더럽히는가?
첫째는, 성령이 속에 계시지 않아서일 것이고,
다음은, 성령을 받았어도, 내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의식이 없이 살기 때문이고,
안에 계신 성령을 근심시키는 일을 서슴치 않기 때문이다.
우리 육체와 성령은 서로 거스르는 관계이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갈5:16)
육체를 따르지 않고 성령을 따라 행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할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이다.
성령으로 살았으면 성령을 따라 행하며 살아야 한다.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릴 수 없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도 않고 할 수도 없다.
육신의 생각을 따라 살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면, 사망과 멸망에 이르고 만다.
영의 생각을 따라 살 때 생명과 평안을 누릴 수 있다.
하나님의 나라도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리는 것이다.
“우리가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8:12-14)
우리 몸을 깨끗하게 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릴 때
하나님은 이를 영적 예배로 받으시고 축복하신다.
영적인 것은 몸을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이지, 따로 영적인 것을 찾아 헤매는 것이 아니다.
2.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롬12:2)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이 세대를 본받아 유행 따라 세상 따라 육신 따라 살기 때문이다.
이 세대를 본받아 세상의 가치관과 사고방식을 따라 옛 사람의 습관대로 살기 때문이다.
이 세대 이 세상은 떡으로만 살고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사는 세대이다.
재물과 하나님은 겸하여 섬길 수 없고, 돈을 사랑하는 것은 일만 악의 뿌리이다.
떡만으로 재물로 돈으로 쌓은 바벨탑은 오래지 않아 무너지고 만다.
하나님은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신다.
그것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을 따라 살게 하고, 이생의 자랑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사탄이 예수님에게 시험하신 것도 이 세 가지이다.
돌로 떡을 만들라는 것은, 육신의 정욕, 성전 꼭대기에 뛰어내리라는 것은 안목의 정욕,
세상 영광을 보여주고 절하라고 한 것은 이생의 자랑이다.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하지 않으면 참된 변화는 없다.
겉을 아무리 바꾸고 치장하고 거룩하게 하여도 마음이 새롭게 되지 않으면 도로 그 자리이다.
속을 깨끗이 해야 겉도 깨끗해진다고 주님은 말씀하신다.
무엇으로 마음을 새롭게 할 수 있는가?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새롭게 할 수 있는가?
오직 성령으로 거듭나고 말씀으로 새로워지기 전에는 마음을 새롭게 할 수가 없다.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말씀을 통해 새 영, 새 마음을 주셔야만 한다. 다윗의 기도이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51:10)
그리스도의 피로 세운 새 언약은 새 마음과 새 영을 주신다는 약속이다.
“내가 그들에게 한(새)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 내 율례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겔11:19-20)
교회 다니면서도 새 마음 새 영을 받은 적이 없다면,
돌 같은 마음이 제거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받은 적이 없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 적이 없고,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 된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성령으로 거듭나고 회심한 사람은 어떤 형태로든 새로운 변화를 경험한다.
부흥주의가 아닌 참된 부흥의 시대에는 이 변화의 열매가 있는지 여부로
참된 회심인지 거짓 회심인지를 분별하였다.
화려하고 요란한 경험을 자랑하지만 새로운 변화가 없다면
그것은 부흥주의의 회심일 뿐이고, 그 사람은 유사 그리스도인일 뿐이다.
이면적 유대인이 참 유대인이고 할례는 마음에 받아야 하는 것이다.
부흥주의는 인간이 부흥을 조작하고 회심자를 양산하여 교회를 크게 세우고 숫자를 자랑한다.
그러나 그것은 많은 사람들을 멸망으로 인도하는 큰 문, 넓은 길일 뿐이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다고 하셨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는 자들만 구원을 받는다. 주님 말씀이다.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이다.(사6:13)
다 황폐하여진 가운데 겨우 남아 있는 거룩한 씨가 그루터기 곧 교회인 것이다.
회심하였으면 변화를 받아 새롭게 되어야 한다.
이 과정은 평생 동안 광야 길을 걷는 변화의 길이요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성화의 길이다.
주리게도 하시면서 낮추기도 하시면서 주님은 우리를 주의 형상으로 만들어 가신다.
떡으로만 살던 사람에서 말씀으로 사는 사람으로 만들어 가시고
땅의 체질의 사람을 하늘의 체질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신다.
내 나라 내 의만을 구하던 사람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가신다.
3.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라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라”(롬12:2)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은 사람은 내 뜻 내 야망 내 영광 다 버리고
하나님의 선하신 뜻, 기뻐하시는 뜻,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여 알려고 하고
그 뜻에 순종하는 것을 남은 생애의 가장 우선적인 의무요 책임으로 여긴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에 순종할 때 하나님은 축복과 영광을 주신다.
우리 인생의 성패와, 복과 저주는 오직 이 뜻을 분별하고 순종하는 데 달려 있다.
하나님의 이 뜻은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진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복 있는 사람은 성경을 즐거워하고 주야로 성경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지켜 행하는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형통의 길로 말씀하신 길도 바로 이 길이고,
다윗이 아들 솔로몬에게 형통의 길로 유언한 길도 바로 이 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교인들은 성경을 멀리하고 복을 발로 걷어차고 있다.
베뢰아 사람들은 바울의 설교의 말씀을 간절한 마음으로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였다.
성경을 최고의 보물로 여기고 성경을 하나님 만큼 높이며 경외하며 존중히 여길 때
성경을 쓰신 성령께서도 함께 역사하시며 그 말씀을 살 수 있도록 능력을 부어주신다.
성령이 임하시면 아버지도 아들도 함께 임하시는 것이다.
청교도들처럼 성경을 “진리의 보고요 성령의 서재”로 여길 때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올바로 분별할 수 있고,
그 말씀을 지켜 행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설려면
성령이 가르친 지혜를 따라 성경을 연구하고 배우고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따라 나도 힘을 다해 수고를 해야 한다.
그것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길이고 축복의 길이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길이다.
이렇게 살 때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이고,
하나님은 참된 영적 예배로 받으신다.
성경을 가까이 하지 않으면 성령과도 멀어지고 악한 영에게 사로잡히고 만다.
이 세대를 본받아 살고 육신을 따라 육신대로 행하여 사망의 길로 가고 만다.
정말 하나님의 축복을 원한다면 성경으로 돌아가시라, 성경을 즐거워하시라.
성경을 멀리하면서 오직 성령 성령 하는 사람들을 조심해야 한다.
성경 없는 성령은 항상 사탄의 영을 뒤집어쓴 가짜 성령이었다.
성경의 말씀이 성령의 지혜로 해석될 때 곧 영이고 생명인 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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