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15 주일설교
본문: 고후 4:16-18
제목: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
1. 잠시 받은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을 이룸을 확신하라.
고난 없이 축복을 받고 고난 없이 영광에 이른다면 그보다 좋은 것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형통의 신학, 믿음의 신학들이 나와서 고난 없는 형통을 조장하고 미혹한다.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더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미혹의 역사에 넘어간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살후2:11-12)
불의를 좋아하고 진리를 믿지 않는 모든 사람들이라고 하셨다.
진리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불의를 좋아하게 되어 있다.
진리에 관심 없는 사람들도 은연중에 불의를 좋아하고 있다.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하늘로부터 나타난다고 롬 1:18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성경에 기록된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한, 사람의 지혜와 세상 초등학문을 좋아하니까
하나님은 그에 대한 심판으로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어
거짓 것을 믿게 하는 것이다.
고난 없는 축복, 고난 없는 형통은 영혼을 사냥하는 사탄의 사탕발림일 뿐이다.
사탄과 그 하수인들은 금방 축복이 이루어질 것처럼 사람을 속이고 미혹한다.
성경은 결코 그러한 약속이나 성취를 말씀하지 아니한다.
구원의 여정은 출애굽하여 광야에서 고난의 훈련을 거쳐 가나안에 이르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의 선물을 받아 세상으로부터 구원을 받지만,
그 속은 여전히 세상과 세상을 사랑하는 것들로 가득하다.
떡으로만 살아왔던 옛 사람과 옛 습관들은 광야 훈련을 통해
주리게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시는 훈련의 과정을 통해
말씀으로 사는 사람으로 만들어 가신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도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8:2-3)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오직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를 먹고 살았다.
우리는 현재도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를 통해 살고 있다.
내가 벌어서 내가 가진 것으로 사는 것 같지만 그 모든 것을 공급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주시는 것은, 내려준 그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만나를 주시는 그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게 하시려는 것이다.
우리 영혼의 만나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말씀을 듣지 못하면 영혼은 기갈이 들고 만나를 먹지 못한 육체와 같게 된다.
그리스도인에게 고난은 그 자체가 목적이거나 그걸로 끝일 수가 없다.
뜻이 있고 목적이 있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도 통과하게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낮추기도 하시고 주리게도 하실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부족한 떡, 없어진 떡만을 목말라할 것이 아니라,
마음에 부족한 하나님의 말씀에로 돌이키는 것이다.
하나님이 고난을 통해, 주리게도 하시고 낮추시는 훈련을 통해, 이루시고자 하는 뜻은
오직 하나, 떡으로만 살지 않고 하나님의 모든 말씀으로 사는 사람을 만들고자 하시는 것이다.
예수 믿은지 오래 되었는데도 여전히 떡만으로 사는 사람들이 있다.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돈과 권력과 명예만을 추구하고 말씀과 진리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다.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면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육신의 생각은 사망인 것을 말씀은 분명히 하고 있다.
세상과 떡은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 살 때 인생은 저주와 멸망에 떨어지고 만다.
하나님은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즐거워하고 묵상하며 지켜 행할 때 축복하시고
말씀에 순종하지 않을 때 저주를 내리시는 분이시다. 이것은 불변의 진리이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우선으로 살 때 하나님은 모든 것을 더해 주시고
자기를 위해 땅에 쌓아둔 보물들은 좀과 동록이 해하고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해 가게 하신다.
땅의 계산법으로 살아서는 소망이 없다.
맨날 부족한 떡에만 매달리고 허덕이다가 인생을 허망하게 종치고 만다.
말씀으로 산다는 것은 하늘의 계산법으로 사는 것을 의미한다.
하늘의 계산법으로 살아야 소망이 있고 복이 있고 영광이 있다.
하늘의 것을 구해야 땅의 것을 차지할 수 있다고 성경은 말씀한다.
말씀으로 성령으로 성결해지지 않으면 성공도 성취도 축복도 없다.
영의 생각으로 살 때 생명과 평안이 있고 보장 된다.
믿음으로 하지 않는 것은 모두 죄이다.
말씀을 믿고 하나님을 믿고 하지 않는 모든 것이 죄라는 것이다.
말씀이 없으면 그 믿음은 허황되고 공허하고 무능하고 생명력이 없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광야생활의 고난을 허락하시는 것은
오직 우리의 영광을 위해서이다.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무거운 것을 이루게 하기 위해서 이다.
우리가 받을 영광에 비하면 우리의 고난은 지극히 짦고 가벼운 것이다.
“생각하건데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롬8:18,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그분과 함께 받는 것이다.
떨기나무 가운데 꺼지지 않는 불꽃은 이것을 상징한다.
주님도 죽음의 고난을 받으심으로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셨다.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하신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주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우리를 안위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만나와 생수를 공급해주시고 옷이 해지지도, 발이 부르트지도 않게 하신다.
2. 환난 중에 겉사람은 낡아지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니 낙심하지 말라.
우리는 고난 중에도 왜 낙심하지 말아야 하는가?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벧전5:10)
‘잠깐’ 고난은 ‘영원한’ 영광에 비할 때 하시는 말씀이다.
고난은 우리가 볼 때 잠깐이 아니고 오랜 기간이다.
모세는 40년, 아브라함은 25년, 요셉은 13년이었다.
우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모든 은혜의 하나님이시다.
그 하나님이 친히 고난을 통해 온전하게 하시고 굳건하게 하시고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는 것이다.
말씀을 통해 고난을 잘 통과한 사람들을 보면 어떤가?
온전하고 굳건하고 강하고 터가 견고하여 흔들림이 없는 것을 볼 수 있다.
고난 없는 영광은 사울과 솔로몬의 종말과 같이 되고 만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1)
고난에서 유익을 얻지 못하면 사사시대, 포로시대, 멸망의 시대를 만들고 만다.
고난을 통해서 주의 율례, 곧 말씀들을 배우고 깨닫고 하늘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세상의 떡으로만 살던 사람이 고난이 유익하면 말씀으로 사는 사람으로 변화된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고 말씀으로 온전하게 된다.
그 말씀은 우리가 끊임없이 바라보고 믿고 본을 받을 분이 누구인지를 알게 한다.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12:2)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믿는 믿음의 주이시고, 우리를 온전하게 하시는 분이시다.
그분 자신이 고난을 통해 온전하게 되시는 본을 보이셨다.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시더니
하나님의 보좌 우편, 영광의 자리에 앉으셨다.
누구라? 그리스도인이라 하면서, 고난 없이 영광에 이른다고 하는가?
그가 믿는 예수는 십자가도 없이 영광에 이르셨는가?
NO CROSS, NO CROWN! 십자가가 없으면 왕관도 없는 것이다.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리스도를 닮지 않은 사람들,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지 않은 사람들이
어떻게 그분과 함께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을 누릴 수 있겠는가?
사람은 오래 함께 한 사람을 닮게 되어 있다.
입술로만 닮고 마음은 먼 사람들은 마음 속에 있는 우상의 형상을 드러낼 것이다.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해산하는 수고를 한다고 하였다.
오랜 고난은 우리의 겉사람을 낡아지게 만든다.
그러나 우리의 속사람은 그 고난을 통해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며 날로 새로워진다.
온전해지고 굳건해지고 강해지고 터가 견고해진다.
그러니 우리는 고난 중에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아니하고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게 된다.
고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고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
내 영혼아, 어찌하여 낙심하며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여전히 찬송하게 되리라.
겉사람 낡아지는 것 때문에 걱정이 많은 사람들은,
날로 새로워지는 속사람을 못보거나, 새로워지지 않고 있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세상은 워낙 겉사람에 매달리고 거기에 운명을 거는데 우리는 그러지 말자.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을 바라본다면 그 낙심과 걱정은 사라질 것이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면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 생애 중에도 나타나 도우신다.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을 이 땅에서도 그 일부를 맛보게 하신다.
모세는 40년이 차매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천사가 나타나서 영광스럽게 쓰기 시작하였다.
그의 기도대로, 괴롭게 하신 날수대로와 화를 당한 연수대로 40년을 기쁘게 하셨다.
오랜 고난을 거친 저와 여러분에게도 그 날이 올 것이다. 요셉을 보고, 다윗을 보라.
세상 건축자들은 쓸모없다고 버린 돌을 하나님은 모퉁이의 머릿돌로 쓰실 날이 온다.
이 일은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이다. 사람들 눈에는 기이하게만 보일 것이다.
이 날은 여호와께서 정하신 것이요 이날에 우리는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될 것이다.
시글락 시절을 마치면 헤브론에 오를 날이 온다는 것을 다윗을 통해 배워야 한다.
그 동안은 어떤 환경에도 자족하고 궁핍에도 풍부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워야 한다.
때가 되면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3. 환난 중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에 주목하라.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후4:18)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한 것에 주목해야 한다.
내 인생도 내 고난도 긴 것 같지만 영원에 비하면 그것은 잠깐이요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잠시 가볍게 받은 고난이 지극히 크고 무거운 영원한 영광을 이룸을 확신한다면,
우리는 현재의 고난 그 너머에 있는 영원한 영광을 끊임없이 바라보아야 한다.
말씀으로 살면 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을 바라보게 될 것이고,
여전히 떡으로만 살면 이 영광을 바라보지도, 주목하지도, 못할 것이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는 것을 모르고 이 땅의 주민증만 바라볼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면(하늘에 우선권을 두고 살면), 모든 것을 더해 주심을,
결코 맛보지 못하고, 생을 마칠 것이다. 여호와의 선하심을 결코 맛보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것을 주목하면, 보이는 것들이 부족함이 없이 채워지는 것을 경험하고,
보이는 것들에 주목하여 살면, 보이는 것들이 부족해지고 허덕이는 것을 경험한다.
그것이 하늘의 계산법이요, 하늘의 법도요, 하나님이 하시는 섭리이시다.
떡으로만 살면 떡이 오히려 부족해지고 떡이 없어 내내 목마르고 갈증만 심한 것을 본다.
돈을 사랑하면 일만 악의 뿌리가 되고 미혹을 받아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찌르다 멸망한다.
주님은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떠나지 않으심을 믿기 바란다.
정복자들이 힘으로 점령한 땅들은 하나님이 황폐하게 하시고 사막으로 만드신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온유해진 사람들에게 땅을 차지하게 하신다.
우리가 잠시 받은 고난의 경한 것들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이룬다는 것을,
확신하고, 소망으로 붙들고 사시다가, 좋은 날을 맞이하시기 바란다.
십자가 없이 왕관 없고, 고난 없이 영광 없다.
고난은 우리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해산의 수고이다.
그리스도를 닮는 성결만이 성공을 이루고, 고난만이 축복과 영광을 이룸을 믿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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