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교 교리는 츠빙글리, 루터, 칼뱅에게서 발생한 것이 아니다/ 권현익
19세기 스위스 신학자 비이트 폰 레베르는 그의 저서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기본적으로 개신교 교리는 츠빙글리, 루터, 칼뱅에게서 발생한 것이 아니다.
다만 이들은 이 진리가 그들에게 이르렀을 때에 이를 즐거이 수용했을 따름이다.
개신교 교리는 성인들의 저술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사도들이 전한 것으로, 이 교리는 초대 교회의 신자들로부터 보존되어 계승된 것이다.
그래서 개신교 교리의 전형적인 선언 형식, 하나를 예로 들자면
‘츠빙글리나 루터나 칼뱅주의는
바로 그 사도행전의 그리스도교 교회에 철저히 기반하므로
이들이 가르친 그 교회가 곧 그리스도교 교회다’라는 식의 표현까지도
타당성을 가질 수 있게 된다.”
동방과 서방의 중세 교회가
이 바른 전통 위에 서 있던 신앙을 변질시켰을 때(7세기 이후 특히 9세기),
각처에 흩어진 사도적 교회 전통을 간직한 증인들이
각각의 이름으로 우후죽순처럼 분연히 일어났다.
이들은 자신들을 혹독하게 억압하고 그 변질되고 왜곡된 것을 정당화하려 했던
적그리스도 세력의 폭력에 맞서 싸우면서
그 주류 세력의 현저한 힘과 수에 짓밟혀
이단자와 변절자라는 명목으로 처단당하고,
더러는 불태워지고 칼에 베이고 잘리며서 죽음을 당하고 흩뿌려졌으며
이름마저 빼앗기고 무시당하거나 존재 자체가 무자비하게 덮이고 감추어졌고,
숨거나 도망치거나 유랑하는 이주민 집단들의 모습으로
수십 수백 년간 쫓겨 다니게 되기도 했다.
정말로 히브리서 11장 33절 이하의 상황이
문자적으로 이들의 역사 현장에 장렬하게 펼쳐져 있다.
그리하여 과연 이들이 사라지고 말았을까? 이들이 역사에서 사라졌다고 해서
역사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눈앞에서도 사라지고 말았을까?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고 해서
이들이 빛 가운데로 드러내지 못한 진실과 사실이 영영 신원(伸冤)되지 못하고
역사는 종막을 맞이하게 될까?
이들의 고난과 순교로 아직 명줄이 끊어지지 아니한, 이 가느다란 진리의 생명력은,
과연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것처럼 연약하고 허술한 것이 정확한 사실일까?
우리가 논의하려는 주제와 이 논의의 목적은, 우리 자신과 관련한 엄청난 오해,
우리가 가진 것들에 대한 놀라운 몰이해와 왜곡을, 이들을 통하여 비추어 보고,
지금 우리 스스로를 재고해 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자각(自覺)을 외쳐 부르기 위함이다!
주님께서 주시고, 성령께서 나누어 주시며, 사도들을 통하여 받은
성경적 신앙과 신학에 기초한 그리스도교 신앙의 원류-
명백한 본말(本末)과 원류(原流)이면서도 오히려 지류(支流)와 가지가 되어 있는
이 부조리한 역사의 산물인 이 타이틀, 개(改)신교와 개혁(改革) 신앙-
즉 복음적 그리스도교 신앙을 재고하고,
그 기초와 기본을 현저히 망가뜨리고 구겨 놓은 역사의 실체를
오늘날의 우리가 여전히, 매우 그릇 알고 잘못 보고 있음을
다 같이 확인해 보자는 것이 우리 논의의 가장 중요한 취지다.
권현익, 「16세기 종교개혁 이전 참 교회의 역사」, PP 344-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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