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도 아카데미

"바울인들"의 지도자 2) 계시우스 3) 시므온 4) 세르기우스 / 권현익

강대식 2022. 5. 16. 21:29

2) 또 다른 지도자 게네시우스

 

실바누스가 순교할 때 탈출한 사람들 가운데 ‘바울’이라는 한 사람이 새로운 지도자로 선출되었고, 그는 죽기 전에 장남 게네시우스를 계승자로 임명한 후 그의 이름을 ‘디모데’로 바꾸었다. 레오황제의 통치 기간 동안 바울인들이 확장되면서 불만이 터져 나오자,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는 디모데를 소환한 후 이단 혐의에 관하여 취조하였다.

대주교: 너는 왜 카톨릭교회를 떠났는가?

디모데: 저는 카톨릭교회를 버리려는 그 어떤 욕망을 갖지 않는 것은 그 안에서만 구원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그에게 있어 카톨릭교회란 그리스도교 교회의 초기 순수성을 회복하려는 바울인들 공동체를 의미하였다.)

대주교: 너는 어찌하여 십자가를 경외하지 않는가?

디모데: 십자가 숭앙하기를 거절하는 모든 사람들을 저주합니다.(그는 십자가를 그리스도의 상징적 이름으로 이해하였다.)

 

이런 질문에 대한 디모데의 대답은 대주교를 만족시켰고, 그는 이런 재치 있는 대답 덕분에 황제로부터 보호를 받게 되어서 그 후 30넌 동안 활발한 활동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라센의 전진으로 바울인들은 고국을 떠나 소아시아 지역을 새로운 거처로 삼았지만, 그곳에서 심한 박해로 말미암아 멸절의 위기에 처했다.

 

3) 바울인 박해자에서 지도자가 된 시므온

 

시므온은 실바누스 공동체의 해체와 멸절을 위한 임무를 무사히 마치고 콘스탄티노플로 돌아가 3년 동안 화려한 궁전에서 생활하며 지냈지만 마음의 평안을 누리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궁중에서의 모든 직책을 버리고 미보사로 가서 그가 파괴하고자 노력했던 그 공동체로 들어갔다. 기거서 그들과 함께 거주하면서 ‘티투스’라는 새 이름도 얻었다. 티투스는 자신이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실바누스를 대신하여 복음을 전하다가 2년 정도 후에 동료 교우들과 함께 체포되고, 이단으로 단죄되어 화형 선고를 받았다. 그는 고통스럽게 화형 당하는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으며 천국을 소유한 자의 담대함을 보여 주었고,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라졌지만 더 많은 사람들에게 신앙의 용기를 더해 주었다. 그의 화형 이후에 수많은 설교자와 교사가 일어나 헌신하게 되면서 복음 증거의 사역은 중단되지 않았다.

 

당시 동, 서 로마 교회 분열의 한 축이었던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 포티우스는 867년에 이들에게 경멸의 의미를 담은 ‘바울인들’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그들은 거짓말쟁이요, 간음자들이며, 존속 살인범들인 마니교 이단”이라는 혐오스러운 죄명을 덧씌웠다. 이를 계기로 박해의 범위는 더욱 넓혀졌고 핍박의 강도는 격렬해졌다.

 

4) 또 한 사람 유명 지도자인 세르기우스

 

바울인들의 위기 상황 속에서 새로운 지도자 세르기우스가 등장하였다. 그는 갈라디아 지역의 동방 카톨릭교회에서 성장하였고, 그의 회심은 실바누스의 경우와 유사하였다. 바울인들 소속의 한 여인에게서 질문을 받았다. “당신은 과학과 학문에 뛰어날 뿐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탁월하신 분이라고 들었습니다만, 당신은 왜 복음서를 읽지 않으십니까?” 그는 대답했다. “평신도인 우리에게는 성경을 읽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고, 성경은 오직 사제들만의 책이기 때문입니다.” 여인은 도전했다. “당신들의 사제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시키고 복음서에 들어 있는 신비한 능력을 은폐시키기 위하여 성경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분의 말씀을 알지 못하고서야 어떻게 아버지의 뜻을 행할 수 있겠습니까?”

 

이 말은 세르기우스의 심장 깊숙이 박혔고, 그의 전임자 실바누스처럼 즉시 바울 서신서를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름을 ‘두기고’로 바꾼 후 목수로 일하면서 34년 동안 소아시아 지역을 횡단하며 무릎이 지칠 때까지 동서남북으로 달려가 열정적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였다. 그의 높은 도덕성과 부드러운 태도는 그의 적들에게서도 큰 칭찬을 받을 정도였다. 그의 가르침은 추종자들로 하여금 비잔틴 교회에 소홀하게 만들었고, 많은 청중들이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해 모였으며 말씀에 매료되었는데, 심지어 남녀 수도사, 사제들도 포함되었다.

 

하지만 역사가 시클루스는 두기고의 삶에 대하여 비판적으로 증언하였다. “그는 사탄이 늙은 여인의 모습으로 그에게 나타나 ‘왜 성경을 읽지 않느냐?’라고 묻는 유혹에 빠져 이단이 되었으며, 강력한 악마의 전사로 위장과 속임수에 능하여 많은 양들을 늑대로 바꾸어 놓았고, 미사와 언약의 피를 거룩하지 않은 것으로 여기도록 만들었다.”

 

미카엘 1세가 즉위하면서 피의 박해가 시작되었다. 세르기우스는 835년 생계를 위해 산에서 혼자 도끼로 목재를 다듬고 있었는데, 광신적인 헬라 교회 신자들은 그의 도끼를 빼앗은 후 그 도끼로 그의 목을 향하였다.

 

미카엘 시대를 지나 아르메니아인 레오 황제 때에도 주교와 수도원장들이 바울인들을 박해했는데, 아르메니아 키노스코라의 주민들이 일어나 그 박해자들을 살해할 정도로 큰 압제 사건들이 있었다. 결국 많은 바울인들은 제국의 박해를 피하여 그들을 환영하는 사라센 제국이 정복한 아르메니아 지역으로 피신할 수 밖에 없었다.

 

- 권현익, 「16세기 종교개혁 이전 참 교회의 역사」, pp 365-3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