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1-12 주일설교
본문: 롬 8:35-39
제목: 끊을 수 없는 사랑
1. 끊을 수 없는 사랑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8)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려면
먼저, 그리스도 예수가 우리 주, 나의 하나님이 되어야 한다.
먼저,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목사 장로 권사 집사 세례교인 되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것이 아니다.
바리새인 누룩으로 만든 낡은 가죽부대일 뿐이다. 옛 사람 그대로일 뿐이다.
자기 유익을 해로 여기고 배설물로 여기고 버린 것이 없는 사람일 뿐이다.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성령으로, 말씀으로, 거듭난 사람이다.
성품과 삶의 열매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먼저, 성령으로 거듭나서 성품과 삶이 확 달라진 사람이다.
코페르니쿠스적인 회심으로 세상의 가치관과 사고방식이 획기적으로 달라진 사람이다.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어, 지식에까지 새로워진 사람이다.
바리새인 누룩으로 입고 있던 낡은 가죽부대가 새 부대로 바뀐 사람이다.
말씀으로 거듭나서 삶이 확 달라진 사람이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이다.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이 확 달라진 사람이다.
이젠 떡으로만 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사람이다.
말씀을 교리조문 율법조문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순수하고 단순하게 영으로 생명으로 받아 삶으로 사는 사람이다.
마음과 생각에 말씀을 기록하여 행하는 새 언약의 사람이다.
성령으로, 말씀으로, 거듭나서,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성실을 먹을거리로 삼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아는 사람이다.
우리를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게 하기 위해서 주님은 십자가에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희생제물, 대속제물, 화목제물이 되심으로, ‘예수’가 되셨다.
주님은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보좌 우편에 앉으심으로
우리의 축복과 영광을 위한 만왕의 왕, 만주의 주, ‘그리스도’가 되셨다.
하나님의 모든 축복과 영광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온다.
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께 주셨다.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오직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만’,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이 사실을 잊는 순간,
그 사람은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이다. 성경과 멀어지는 것이다.
여호와의 증인이 되고, 이슬람 교인이 되고, 미신적이고 주술적인 사람이 되고 만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하셨기 때문이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은 영의 일을 생각한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은 육신의 사람이 아니라 영의 사람인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도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니다.
성령은 오직 그리스도를 증언하신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신다.
성령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우리에게 알려주신다.
2. 끊을 수 없는 사랑은 그리스도의 사랑이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8:35,37)
그리스도인에게 극심한 고난들을 왜 주실까요?
믿음을 시험하기 위함이요, 단련시키기 위함이요, 성화성숙을 이루기 위함이다.
약속의 땅, 가나안은 광야를 통과하여 들어간다. 광야의 연단을 거쳐야 한다.
왜? 자연인의 모습, 옛 사람의 모습으로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갈 수 없고,
거룩하신 그분이 약속하신 기업과 축복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미신은 굿하고 빌기만 하면 복 받는다 하고, 축복성회하면 복 받는다고 한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갈려면, 먼저, 우리의 죄부터 해결하고 의롭다 함을 받고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어야만 한다.
그 앞에 갈 수도 없는 사람이 어떻게 그분의 복을 받을 수 있겠는가?
우리의 의는 더러운 옷과 같다.
믿음은 성령으로 거듭난 자에게 하나님이 은혜로 주시는 선물이다.
성령으로 말씀으로 거듭나야 비로소 그리스도인으로 출생하고 그리스도와 사랑의 관계를 맺는다.
우리를 압박하며 짓누르는 환난도, 마음의 괴로움과 번민의 곤고도,
추방 당하며 쫓겨가는 박해도, 벌거벗은 몸. 다 빼앗긴 몸의 적신도,
생명의 위험도, 폭력적인 죽음의 칼도, 그리스도의 사랑을 끊을 수 없다.
심지어 종일 죽임을 당해도 그 사랑에서 끊어지는 것이 아니다.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다 함과 같으니라”(롬8:36)
사탄과 악인들은 어떻게든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려고 한다.
믿음과 인내가 없으면 감당할 수 없고, 약속의 소망을 붙들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
보이는 것의 소망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의 소망은 영원한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소망으로 붙들었다면, 하나님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려야 한다.
이루시는 그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환난은 인내를 이루고, 인내는 연단을 이루고, 그 연단이 약속의 소망을 이루기 때문이다.
이 이치와 과정과 결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믿지 못하면, 낙심하고 포기하기에 이른다.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게 하신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이루게 하신다.
우리가 장차 받을 영광과 축복은 우리가 현재 받는 고난과 비교할 수 없다.
하나님이 사람 만들고 쓰시는 방법, 훈련을 통해 세우시는 방법은,
하나님께 쓰임 받은 대표적인 사람들의 생애를 보면 알 수 있게 하셨다.
아브라함의 생애, 요셉의 생애, 모세의 생애, 다윗의 생애를 보면 알 수 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사람을 권력으로 의지하면 사막의 떨기나무 신세로 끝난다고 하였다.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사람은 복을 받는다고 하였다.
하나님은, 사람이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고,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게 하신다.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고, 레바논의 백양목 같이 성장하게 하신다. 그것을 믿으라.
이 모든 일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일어나는 일, 과정임을 믿어야 한다.
영광의 그 날이 머지 않았다. 팡파레의 날, 축복의 그날이 곧 다가올 것이다.
괴롭게 하신 날수대로와 화를 당한 연수대로 하나님은 우리를 기쁘게 하실 것이다.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이루게 하실 것이다.
3. 끊을 수 없는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8-39)
아무리 극심한 고난일지라도, 아무리 길고 긴 고난일지라도,
구원받은 자녀라면, 끊을 수 없는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꼭 확신하시기 바란다.
오늘 이 본문을 주신 주님은 헤브론 역사가 머지 않았음을 확신케 하신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다는 것은,
우리 생애의 모든 일과 과정이 하나님의 손 안에서 통치 가운데 일어난다는 것이요,
그 결말도 하나님의 능력과 계획과 목적 가운데 마침내 축복의 열매로 맺어짐을 의미한다.
바울처럼, 우리도 끊을 수 없는 그리스도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해야 한다.
“내가 확신하노니”(롬8:38)
우리에게 항상 부족한 것이 믿음이고 그 위의 확신이다.
확신은 믿음이 더욱 성숙한 단계이다. 확신은 믿음의 꽃이요 열매이다.
사도들은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복음을 전했다.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살전1:5)
우리에게 주신 놀랍고도 심히 창대한 ‘성경도 사명’도,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고,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을 믿어야 한다.
그러면, 흔들림이 없게 되고, 더욱 열심을 품고 사명과 사역을 준비하게 된다.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다.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을 믿었다.
그때 그의 상황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았고
사라의 태는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않았다.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롬4:20-22)
바울의 확신, 끊을 수 없는 그리스도의 사랑,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은,
승리의 찬가요 큰 나팔 소리의 팡파레이다.
이 확신 앞에서는 두려워할 것도, 낙심하고 불안해 할 것도, 있을 수 없다.
시온 산처럼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야 한다.
우리에게 주신 사명과 사역에 대하여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우리를 끊을 수 없는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굳게 연결되고, 우리의 ‘큰 확신’은 ‘능력과 성령으로’ 하나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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