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 신앙 361

'청교도'가 아닌 '성경도'가 되어야 하는 이유

‘청교도’가 아닌 ‘성경도’가 되어야 하는 이유 여기서 ‘도(徒)’는 사람 무리이면서, 제자 하인 종의 의미를 지닌다. 성경도는 오직 성경의 사람 제자 하인 종이 되는 것이다. 청교도가 그 대표로 알고 높이고 숭앙했지만, 그 일부만 그랬을 뿐 다는 아니었다. ‘성경도’는 참 그리스도인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성경도’는 청교도들 중 핵심과 중심을 이루는 사람들을 일컫고, 익히 알려진 청교도들에 대비하며, 성경 경외의 신앙을 불러 일으키기 위한 이름이다. 청교도는 종교개혁 정신을 이어 받아 완성한 무리들로 여겨 왔다. 그것은 16세기 종교개혁이 정말 초대교회의 신앙과 신학을 이어받았다는 것이 확실할 때 가능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참다운 종교개혁은 13세기에 일어났다는 것이 확실해지고 있고, 16세기 종교개..

성경적 신앙 2022.12.12

'청교도의 길' 이름을 '성경의 길'로 변경하며

성경적 믿음의 대역사에서 청교도신학이 대표성을 가질 수 없음을 초대교회의 역사적 발자취를 통해 깨닫고서 16년 동안 헌신하였던 청교도신학을 내려 놓으며, 이름을 '성경의 길'로 변경합니다. 16세기 종교개혁과 이를 이어 받은 청교도신학은, 13세기 발도인 후예들이 피흘리며 불에 타며 참된 신앙과 삶의 모범으로 전 유럽을 변화시킨 개혁에 비하면, 문서개혁이었으며 지성주의였습니다. 성경적 믿음의 참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역사로 여기서 저기서 조금씩 소수로 이어져 왔습니다.

성경적 신앙 2022.12.02

기욤 파렐은 "엘리야의 영과 능력"을 가진 모습을 보여준 사람이었다/ 윌리암 블랙번

기욤 파렐은 “엘리야의 영과 능력”을 가진 모습을 보여준 사람이었다/ 윌리암 블랙번 도비네는 이렇게 말한다. “칼빈은 16세기의 위대한 학자이고 파렐은 위대한 전도자로서 종교개혁에서 가장 두드러진 인물이다.” “파렐은 천성과 지적 능력, 은혜 면에서 풍성한 사람이었다. 파렐의 삶은 일련의 전투와 승리의 연속이었다. 파렐은 나아가는 곳마다 승리하였고 또한 승리하기로 되어 있었다.” 파렐은 몇 주간 동안 자신의 침상에서 눈물을 보이는 자들에게 죽어가는 사람에게 생명을 주시는 주님의 능력을 증명하였다. 그리고 조용히 그리스도의 품에 안겼다. 칼빈이 떠난 지 15개월 후인 1565년 9월 13일, 76세의 나이였다. 파렐은 뇌샤텔의 교회 마당에 묻혔다. 그곳은 파렐이 거리에서 설교를 한 날 이후로 가장 놀라운 ..

성경적 신앙 2022.11.30

선지자 없는 나라는 망한다/ 최덕성

선지자 없는 나라는 망한다/ 최덕성 기독교인은 가루 서 말 안에 있는 누룩이다. 누룩이 그 기능을 발휘하지 않으면 가루와 함께 썩고 만다. 로마가 멸망할 무렵 기독교회의 외형은 거창했다. 그러나 내면은 병들어 있었다. 사회의 극심한 타락을 막을 수 있는 힘이 없었다. 교회 수가 많고, 교인 수도 많았으나 로마의 몰락과 함께 로마기독교는 수치를 당했다. 기독교가 외형상 번창하고 교회 수와 기독인 수가 많아도 짠맛을 잃으면 밖에 버려지고 짓밟히게 된다. 교회가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킬 만큼 성장하고, 기독인의 수가 괄목하게 증가해도, 짠맛을 잃으면 존재가치가 없다. 복음은 창조력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전파되는 곳에는 개인의 삶이 변하고, 도덕성이 고양된다. 복음은 사회를 변혁시키고, 도덕성을 고취하며, 문화..

성경적 신앙 2022.06.05

발도인들과 루터, 칼뱅과의 관계, 화형 당하는 목사들의 신앙 고백/ 권현익

발도인들과 루터, 칼뱅과의 관계, 화형 당하는 목사들의 신앙 고백/ 권현익 신학자 요하네스 에크는 루터를 향하여 “그는 오래 전에 정죄받았던 알비인들, 위클리프, 후스의 이단 사상을 새롭게 드러냈을 뿐이다”라며 비난하였다. 리옹의 역사를 기록하였던 클로드 루비는 “루터의 주요 사상적 원리들은 이단 발도인들의 교리적 기초에 충실한 발도인들의 유산에 불과하다”고 말하였다. 겐트 주교 린다누스는 1560년경 로마 교회의 교리를 변호하는 자신의 책에서 “장 칼뱅은 발도인들의 교리를 상속했다”고 밝혔고, 연대기 학자인 예수회의 피에르 고티에(1685-1749)는 도표를 작성하면서까지 발도인들과 칼뱅의 교리가 서로 일치함을 증명하기도 하였다. 아이네아스 실비우스(훗날 교황 바오 2세) 역시 “칼뱅이 가르친 교리는 ..

성경적 신앙 2022.04.29

16세기 종교개혁자들과 발도인들의 접촉과 언급들/ 권현익

16세기 종교개혁과 발도인들 1 박해로 인한 지도자 배출의 어려움 발생 13세기 십가군에 의해 자행된 발도인들 학살 이후에도 발도인들을 향한 박해가 계속 되었고, 자주 십자군이 조직되었다. 1487년 인노켄티우스 8세의 승인으로 이탈리아 크레모나의 부주교와 알베르토의 지휘 아래 발도인들 십자군이 소집되었다. 1507년 십자군 활동이 종료되었을 때 160 여 명의 피에몽의 발도인들이 살해되었다. 이처럼 진리는 철과 불에게 추적을 당하고 있었기에 발도인들을 이끌어 갈 새 지도자들이 더욱 절실했다. 각 세기마다 시행된 잔인하고도 믿을 수 없을 만큼의 혹독한 박해로 대부분의 지도자들이 살해당했고, 발도인들은 지도자인 바르브를 자체적으로 훈련시키지 못하게 되었기에 15세기 중엽에는 학생들을 외국의 대학에 보낼 수..

성경적 신앙 2022.04.28

발도인들이 마니교 이단으로 몰리고 화형과 대량학살을 당하는 역사/ 권현익

발도인들이 마니교 이단으로 몰리고 화형과 대량학살을 당하는 역사/ 권현익 툴루즈와 앙굴렘에서도 화형 사건이 있었다. 프랑스 역사학자 플뢰리에 따르면 1025년에 프랑스 끝자락인 아라스에서도 이단(개혁자)이 발견되었다. 17세기 로마 교회의 뒤팽에 따르면 “캉브레 및 아라스의 주교 제라르는 이탈리아로부터 유입된 새로운 이단 사상에 감염된 자들을 붙잡았다면서, 그들은 칸둘프와 간둘프의 제자들로서 다른 학문에 관해서는 그 어떤 것도 접하지 못했고 오직 복음과 사도들의 계명만을 배웠다. 그러나 재판정에서 피고인들은 그들의 신앙을 버리고 로마 교회의 품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화형은 선고되지 않았다.” 11세기 역사학자 라돌프에 따르면 “1028년 피에몽의 아스티 교구 몽포르테 성에서 이교도와 유대교 의례를 되살린 ..

성경적 신앙 2022.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