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시 73:17-28
1 악인들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라
시편 73편은 이렇게 시작한다.
(시73:1-3)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
악인들이 형통함을 보고 그 오만한 자에게 질투가 일어났다.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신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말씀이 힘을 받지 못하고,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다.
거의 넘어질 뻔하고 미끄러질 뻔하면서도 왜 ‘뻔’으로 끝났느냐?
주께서 항상 내 오른 손을 붙드셨기 때문이다.
(시37:24)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뻔으로 끝나는 것은, 내 의지가 강하고 믿음이 좋아서도 아니다.
우리가 하는 주님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시험에 들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여주시기 때문이다.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은 우상을 섬기고 다른 종교를 믿는데도 잘만 되는데
어찌 오래도록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어온 나는 이 모양 이 꼴인가?
이 시를 쓴 아삽은 우리를 대변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시73:4-9)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강건하며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이 그들에게는 없고 사람들이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없나니
그러므로 교만이 그들의 목걸이요 강포가 그들의 옷이며
살찜으로 그들의 눈이 솟아나며 그들의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많으며
그들은 능욕(업신여겨 욕되게 함)하며 악하게 말하며 높은 데서 거만하게 말하며
그들의 입은 하늘에 두고 그들의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도 그들에게는 없고 사람들이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없다.
그러므로 교만이 그들의 목걸이요, 강포(포악)가 그들의 옷이 되어 있다.
그들의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많다.
원하면 다 되고 넘치도록 된다는 것이지요. 빈익빈 부익부이다.
그러니 눈은 솟아나고 말은 높은 데서 거만하게 악하게 말하고 없는 사람들을 능욕한다.
그들의 입은 하늘을 대적하고 그들의 혀는 땅에 두루 다닌다.
하늘의 하나님도 대적하고 땅의 사람들은 마음대로 휘젓고 거침없이 다니는 거지요.
하나님이고 사람이고 보이는 것이 없다. 안하무인이다.
언제부터 그렇게 잘 살았다고 특권의식과 우월감이 하늘을 찌른다.
없는 사람들은 아예 종류가 다른 저질 취급하고 자기들은 종자가 다른 양 행세를 한다.
아파트 평수만 달라도, 타고 다니는 차만 달라도, 애들까지 따로 놀려고 한다.
출신학교가 달라도, 출신지역이 달라도, 학력과 경력이 좀 달라도, 특권행세를 한다.
나는 58년도에 중학교 유학으로 서울 왔는데, 전라도 사람이라고 누나가 방을 얻기 어려웠다.
중학교 시절엔 서울 녀석이 사고를 치고 난 옆에만 있다가 정학을 맞은 적이 있는데,
그 엄마는 전라도놈 탓으로 돌리고 접근금지령을 내게 내렸다. 전찻간까지 쫓아와서 말이다.
내가 뒤늦게 목사가 되고 나서 목사의 세계를 보니까, 그런 사회의 축소판이었다.
어느 명문 신학교 출신인가? 어느 대교단에 속해 있는가? 에 따라서 사람 대접이 달랐다.
난 그래도 세상 학력이 좋아 설움을 별로 안 받았지만, 그 우월감 열등감은 세상보다 더했다.
주님은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죽기까지 복종하여 십자가에 죽으셨다.
서울에서 놀지 않으시고 천한 갈릴리 바닷가에서 어부 출신 세리 출신들을 제자로 삼았다.
그분은 나사렛에서 30년간 목수생활 하셨고, 3년 반 사역하시는 동안 머리 둘 곳이 없으셨다.
그런데 교회가 뭘 자랑하고 뭘로 사람을 기죽인단 말인가?
교회가 언제부터 이렇게 세상의 못된 축소판이 되었는지 안타깝다.
세상의 형통한 사람들이 교회 와서 여전히 행세를 하고 형통 못한 사람들에게 설움을 준다.
그런데 성경은 뭐라고 하는가?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라고 한다.
(시37:7-11)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
잠시 후에는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 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
2 성소에서 악인들의 종말을 깨달으라
아삽은 왜 넘어질 뻔, 미끄러질 뻔 하다가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깨달았을까요?
성소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집이요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기 때문이다.(딤전3:15)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순전한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성령의 역사가 있는 교회에서 우리는 진리를 깨닫고 살 수 있다.
진리가 기둥이며 진리가 터인 곳에서라야 악인들의 종말을 깨달을 수 있다.
거짓 선지자와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교회에서는 악인의 종말을 깨달을 수가 없다.
세상의 축소판이 되어 있는 교회에서는 악인들의 종말을 깨달을 수가 없다.
악인들의 형통과 특권과 오만을 보고 시달릴 뿐이지요.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뭘 깨달았느냐? 악인들의 급속한 파멸과 황폐와 전멸이었다.
(시73:18-19) 주께서 참으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그들이 어찌하여 그리 갑자기 황폐되었는가 놀랄 정도로 그들은 전멸하였나이다
시편 37편 다른 곳에서는 악인의 종말을 이렇게 말씀한다.
(2)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20)악인들은 멸망하고 여호와의 원수들은 어린 양의 기름 같이 타서 연기가 되어 없어지리로다
시편 1편도 악인의 운명을 이렇게 말씀한다.
(4)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5)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6)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성소에서도 말씀으로 깨닫지 못하면 악인들의 막강한 권세에 눌릴 수 밖에 없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씀으로 살지, 소유나 환경으로 살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일에 대한 믿음이 없고, 약속의 말씀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우리는 넘어질 뻔, 미끄러질 뻔할 수밖에 없다.
진리의 말씀을 붙들지 못하면, 아삽의 탄식이 우리의 탄식이 될 수 있다.
(시73:12-14)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들이라도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욱 불어나도다
내가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나는 종일 재난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벌을 받았도다
3 의인은 교훈으로 인도하시고 후에 영광으로 영접함을 믿으라
(시73:24-26)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하나님은 먼저 우리를 주의 교훈으로 주의 말씀으로 인도하신다.
주의 교훈으로 인도하시는 방법이 바로 우리의 광야생활이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
(신8:2-3)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상당한 세월 동안 하나님은 우리에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다.
광야 길은 고난의 길이요, 그 고난은 낮추시며 주리게 하시는 것이다.
반대로 세상 사람들은 높아지고 풍성해질려고만 한다.
떡은 돈과 재물이요 명예와 권력이다. 한마디로 소유와 환경이다.
이것이 많고 좋으면 행복하고 잘 사는 것이요, 이것이 적고 안좋으면 불행하고 못 사는 것이다.
여러분의 행 불행과 잘 살고 못 사는 것이 이 떡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면 헛 고생한 것이다.
이 떡만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알게 해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불뱀과 전갈이 있는 그 위험하고 광대한 광야 길을 걷게 하셨는데,
그 낮추심과 주리심을 겪고도 여전히 세상의 떡에 매달리고 있다면 그것은 헛고생한 것이다.
이 세상 떡의 많고 적음에 따라 흔들리고 목말라하고 있다면
교훈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광야길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 것이다.
사도 바울처럼 일체의 비결을 배울 때 광야 길은 끝나게 될 것이다.
(빌4:11-12)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자족하기를 배우고,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을 때
하나님은 능력을 주셔서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하신다고 말씀한다.
(빌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떡의 풍부와 궁핍에 일체의 비결을 배워서 자유로워야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먼저 떡을 많이 주셔야 하나님 나라를 구하겠다고 한다.
떡의 많고 적음에 흔들리는 사람들은 결국 육신에 져서 육신대로 살다가 사망을 맞이하게 된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는 생을 살다가 끝날 것이다.
우리는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우리의 눈을 하늘로 향해야 한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여야 한다.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고 하신다.
(골3:1-6)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할 때 하나님은 모든 것을 더해주신다고 하신다.
탐욕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우리는 자꾸만 이 순서를 바꾸고자 한다.
먼저 구하는 것이 달라져야 한다.
하나님이 광야 길을 통해 교훈(말씀)으로 인도하시는 것은 후에 영광으로 영접하기 위함이다.
하늘에서는 주 외에 다른 누가 내게 없고,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다는
이 고백이 우리에게서도 나와야 한다. 주가 나의 기쁨, 나의 소망이 되어야 한다.
떡은 필요하지만 그것이 우리를 구원하거나 행복을 줄 수 없다.
악인의 풍부가 얼마나 빨리 그 파멸과 전멸과 황폐가 오는지 말씀도, 역사도 증거하고 있다.
우리는 비록 광야 길 고난으로 인하여 육체와 마음이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반석이시오 영원한 분깃(내 몫)이시다.
하나님이 나를 받쳐 주시고, 하나님의 모든 것이 나의 것이다.
아삽은 오늘 말씀을 결론 짓는다.
(시73:27-28) 무릇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 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주를 멀리하고 세상의 풍부로만 살찔려고 하는 자는 망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음녀 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다.
고난 가운데서도 그 뜻과 목적을 알고, 믿음으로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다.
고난 중에 우리의 피난처는 힘있는 사람이 아니라 주 여호와이시다.
우리는 결국 영광에 이르고 하나님이 행하시고 이루신 일들을 전파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그 말씀으로 다스리신다.
권력자가 힘센 자가 다스리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그들을 쥐고 있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우리 각자의 생사화복도 주님의 손 안에 있다.
그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교훈으로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영접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란다.
아브라함과 모세, 요셉과 다윗의 생애가 이를 증거하고 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이 이를 증거하고 있다.
(히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우리도 앞에 있는 기쁨, 영광을 위하여 십자가 고난을 참고 그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다가
후에 영광으로 세워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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