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는 우리 마음 가운데서도 반역적 요소가 거하는 좌소이다. 영적 전쟁이 일어나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그래서 성경은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갈5:17)라고 말한다. 즉, 회심할 때 의지는 바른 방향으로 향하게 되지만 여전히 왜곡된 상태이며 완악하다. 그 속에 여전히 반역적 요소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이 순조로운 시기에는 그것이 종종 잠복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힘이 얼마나 강한지를 의식하지 못한다. 그것을 부드럽고도 강하게 하기 위해서는 용광로처럼 뜨거운 열이 필요하다. 어중간한 시도는 전혀 효과가 없다. 그러나 의지는 반드시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져야만 하는 것이다.
의지는 영혼의 보루이기에, 하나님께서 징계를 통해 특히 초점을 맞추고 있는 영역 역시 바로 이 의지이다. 그분은 완악한 의지를 녹이기 위해 계속해서 연단의 불을 지피시고, 그것을 바로 펴기 위해 끊임없이 망치질을 가하신다.
우리의 의지가 완전히 순종적으로 될 때까지 결코 쉬지 않고 의지에 달라붙어 있는 수많은 자아의 흔적들을 내리치신다. 그리하여 우리의 의지로 세운 계획들을 철저히 몰아내시고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계획인지를 보여 주실 때까지 자신의 손을 거두지 않으실 것이다.
수많은 고난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든지, 혹은 처음부터 엄청난 재앙으로 수년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든지에 상관없이, 특히 오랜 세월 동안 고통이 지속되는 경우가 있다. 의지를 굽히고 펴는 과정은 종종 오랜 시일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그동안 영혼은 깊은 물과 바다를 건너고 새롭게 타오르는 뜨거운 불을 통과해야 한다.
지속적인 고난은 특별히 의지를 겨냥한다. 의지의 집요함이나 완고함은 오랫동안 이어지는 고난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 의지가 완전히 순종적이 되어 하나님의 의지와 조화를 이루는 것은 점진적인 과정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보기 흉한 가지를 단번에 잘라 버릴 수도 있지만 구부러진 나무 전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수개월, 또는 수년이라는 시간과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결국 의지를 바로잡아야 한다. 아무리 의기양양하고 뻔뻔스러운 의지라고 할지라도 반드시 꺾어야 한다. 하나님은 그것을 결코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자신의 의지와 합치될 때까지 계속해서 만들어 나가실 것이다.
- 호라티우스 보나르, 「고난을 주시는 하나님」, pp 66-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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