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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영성의 산실은 교회이다/ 이태복

강대식 2017. 8. 21. 16:33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영성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개인적으로 거듭나야 하고 개인적으로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는 삶도 살아야 하지만, 하나님의 가정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지속적인 돌봄을 받고 한 믿음 안에서 형제자매가 된 다른 그리스도인들의 사랑과 돌봄을 받는 일도 반드시 필요하다. 그 하나님의 가정이 교회이다.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딤전3:15)

 

교회는 하나님 아버지의 집이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자녀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아 신령한 양식을 먹이시고 올바른 도리를 가르치시는 거룩한 집이다. 교회 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성을 형성해 주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선포되는 말씀과 눈에 보이는 성례, 특별히 주의 만찬이다. 둘째, 세상의 분주한 모든 일에서 벗어나 교회에 함께 모여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주일이다. 셋째, 한 교회에 속한 성도들이 서로의 영성을 돌보는 성도의 교제이다.

 

하나님께서는 교회 안에 가르치는 직분자들을 세우시고,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진리를 더 풍성하게, 그리고 더 능력 있게 가르쳐 주심으로써 우리를 양육하신다. 4장에서 사도 바울은 교회의 공적인 설교와 가르침을 잘 배울 때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게 된다고 선포한다. 성도가 온전하게 되고 봉사할 수 있도록 성장하는 것, 그리스도의 몸이 세워지는 것, 하나님을 믿는 일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는 것,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지거나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되는 것. 이 모든 열매가 교회의 공적인 설교와 가르침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진다고 성경은 강조한다.

 

그러므로 교회를 통하여 영성을 형성할 때, 가장 먼저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교회의 공적인 가르침이다. 우리는 교회의 공적인 가르침을 소중히 여기며 성실히 배우고, 그것이 실제로 우리의 마음과 삶에서 이러한 열매들을 풍성히 맺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한다.

 

주의 만찬은 설교를 통해 전해진 구원의 복음을 눈으로 보고 감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한다. 교회에서 선포되는 말씀의 핵심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복음이다. 이 진리가 설교를 통해서 우리의 마음에 새겨질 때 영성이 강력하게 형성된다. 그런데 주의 만찬은 이렇게 설교를 통해서 들은 핵심 메시지를 우리에게 감각적으로 보여 준다. 주의 만찬은 복음설교만큼이나 우리의 영성을 강력하게 형성해 줄 수 있다.

 

우리가 피해야 할 두 가지 극단이 있다. 한 가지 극단은 선포되는 말씀을 소홀히 여기고 주의 만찬에만 매달리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수없이 많은 설교와 가르침을 베풀어 주셨다. 그러나 성찬식은 단 한 번만 베풀어졌다. 그러므로 선포되는 말씀을 소홀이 여기고서 주의 만찬에만 매달리는 사람들은 주님의 모본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사람들이다. 또 한 가지 극단은 주의 만찬은 형식적으로 대하면서 선포되는 말씀에만 매달리는 것이다. 예수님은 친히 주의 만찬을 제정해 주시면서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22:19)라고 당부하셨다. 그러므로 주의 만찬을 형식적으로 대하는 것은 그것을 제정해 주신 주님을 모독하는 것이요, 주의 만찬이 나타내는 바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함부로 짓밟는 짓이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통하여 자녀들을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양육하실 때 주일이라고 부르는 특별한 날을 중요하게 사용하신다. 이날에 하나님은 세상에 흩어져 살던 자기 자녀들을 하나님의 집인 교회로 불러 모아 교회 안에서 그들을 특별하게 돌보신다. 이날을 지키는 것이 얼만 중요한지,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십계명 중 네 번째 계명으로 삼으셨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지키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선물을 많이 약속하셨다. 이사야 56장 말씀은 비록 이방인일지라도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들에게는 어마어마한 복이 약속되어 있음을 보여준다(56:5,7). 이 세상에서의 영성 생활에 특별한 은혜를 주고, 또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살 수 있는 복을 주겠다고 약속하신 것이다.

 

반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지 않는 것은 언제나 영성의 퇴보와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온다. 특히 구약의 선지서를 자세히 읽어 보면, 이스라엘의 영성이 땅에 떨어져 있을 때마다 그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올라가 보면 언제나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지 않았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하여 자기 자녀들을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양육하실 때 중요하게 사용하시는 또 하나의 방법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서로의 영혼을 돌보고 격려하며 세워 줄 수 있는 성도의 교제이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2:42). 모든 그리스도인은 교제를 통해서 힘을 얻어야 살 수 있다. 흩어져 있던 성도들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 돌아보녀서 사랑과 선행을 격려할 때, 우리의 마음이 강건해지고 선한 일에 더 큰 열심을 품게 된다.

 

성도의 교제는 선택 사항이 아니라 명령이다. 필수 사항이다. 우리가 교회생활 가운데 만나고 대화하는 평범한 성도들과의 교제 속에도 우리의 영혼에 꼭 필요한 보화들이 담겨 있다. 헛된 대화나 세속적인 대화로 귀한 교제를 낭비하고 우리의 영혼을 더럽히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개인적인 삶에서 영성을 형성하는 세 가지 방법, 곧 성경 연구와 묵상과 기도가 반드시 함께 있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교회 안에서 영성을 형성할 때에도 중요한 세 가지, 곧 선포되는 말씀과 주의 만찬, 주일 성수, 그리고 성도의 교제가 항상 함께 있어야 한다. 삼각형이 되기 위해서는 세 변이 서로 맞닿아 있어야 하는 것처럼, 이 세 가지가 항상 함께 있어야 우리의 영성이 바르고도 강력한 영성으로 성장할 수 있다.

(pp 249-259)

 

교회 중심의 영성 형성: 설교의 중요성

 

교회를 중심으로 영성을 형성하고 실천한다고 할 때, 청교도들이 강조한 바는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그들은 교회생활 중에서도 특별히 교회의 설교와 성례, 안식일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지키는 것, 그리고 성도의 교제를 가장 핵심으로 여겼다.

 

청교도들은 그리스도인의 영성 형성에 교회의 공적인 설교와 성례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믿었다. 특히 그들은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이 죄인의 구원과 신자의 영성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확신하였다. 리차드 십스, “교회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은 우리 안에 믿음을 심어 주는 유일한 통로는 아니더라도 하나님께서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하시는 방법이다.”

 

존 다우네임, “4:11,12에 기록된 말씀처럼, 설교는 성도들을 이 세상에서 불러내어 하나님의 교회를 더 강건하게 세우기 위해 하나님께서 친히 제정하신 규례이다. 일반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자녀들을 참으로 회심시키시고 그들 가운데 성령이 거룩하게 하는 은혜가 역사하도록 하는 데 다른 방법을 사용하지 않으신다.”

 

성도의 영성에는 설교만큼 좋은 보약이 없다. 리차드 십스, “집에서 성경을 읽는 것도 우리에게 효과적이지만,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을 듣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다. 따뜻하게 데운 우유가 우리 몸에 더 좋은 것처럼, 또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가 땅에 있는 물보다 양분도 많고 더 특별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처럼, 설교에는 다른 방편에 없는 생명력과 효력과 복이 있다. 설교는 그런 것들을 얻을 수 있는 가장 일반적인 방편이다.”

 

청교도 설교자들은 성도들의 영성 형성을 위하여 그 무엇보다도 설교에 목숨을 걸었고, 설교 듣는 일의 중요성을 늘 강조하였다. 존 로저스, “하나님의 말씀은 죄인들을 회심시킬 뿐 아니라 회심한 사람들을 성장시킨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아 있는 한 선포되는 말씀을 항상 주의 깊게 들어야 한다. 우리가 제아무리 많은 성경 지식을 가지고 있고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하더라도 끊임없이 선포되는 말씀을 주의 깊게 들어야 한다.”

 

리차드 십스, “이 세상에서 런던만큼 설교가 많이 행해지는 곳도 없고, 또 런던만큼 수많은 설교가 아무런 효력 없이 잊혀지는 곳도 없다. 왜 그럴까? 설교를 듣는 사람들이 자기가 들은 설교를 마음에 간직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설교를 듣는 사람들이 주의 깊게 설교를 경청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설교를 듣는 사람들이 자기가 들은 설교를 마음에 오래 간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청교도들은 설교를 유익하게 듣기 위해서는 성경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가장 필요하다고 여겼다. 윌리엄 가우지, “설교를 들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기록된 것 외에는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성경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으로 우리가 듣는 설교 내용을 점검할 수 있어야 한다. 17:11에 기록된 베뢰아 사람들처럼, 우리가 듣고 있는 것이 과연 하나님의 말씀인지 아닌지를 점검할 수 있어야 한다.”

 

설교를 듣는 유익한 방법에 대하여 조지 스윈녹은 매우 자세한 지침을 만들어 가르쳤다.

 

1. 설교를 듣기 전에 준비해야 할 일

1) 당신의 마음에서 악한 생각과 편견을 비우라

2) 먼저 당신의 마음으로 설교의 필요성과 탁월함과 효력을 확신하라

3) 당신이 듣게 될 설교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라.

4) 세속적인 생각들을 버리라

 

2. 설교를 듣는 자세

1) 설교를 듣는 내내 당신이 하나님의 임재 앞에 있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생각하라

2) 선포되는 말씀을 들으면서 그 말씀을 자신의 영혼에 적용시키라. 말씀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우리 영혼을 치료하는 약이다.

3) 선포되는 말씀이 권위와 능력으로 당신의 양심에 역사하게 하라

 

3. 설교를 들은 후에 필요한 행동

1) 기도- 들은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혼에 복을 주시도록 기도하고, 당신에게 말씀을 듣게 해 주신 은혜에 감사하라

2) 실천- 설교자가 말씀을 끝내면, 회중은 들은 말씀을 실천하기 시작해야 한다.

 

청교도들은 설교를 유익하게 듣는 일을 가정 안에서 서로 체크해 주고 격려하게 했다. 루이스 베일리는 <경건의 실천>에서 주일 예배에 참석하러 가기 전에 온 가족이 한자리에 둘러앉아 그날 듣게 될 설교 위에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기를 기도하라고 권면하였다. 또 주일 예배를 드리고 나서 집에 돌아오면 점심 식사를 한 후에 온 가족이 오전에 들은 설교를 함께 복습하도록 권면하였다. 실제로 많은 청교도 가정들이 이 권면을 성실하게 준행하였다.

 

존 로우의 삶에 관한 짧은 전기를 읽어보면, 경건한 청교도 가정이 주일 설교를 얼마나 소중하게 들었는지를 엿볼 수 있다. “주일이 되면, 그는 아침 일찍 일어나 대부분의 시간을 개인 기도와 묵상에 사용하고 가족들을 불러 모아 가정 경건회를 진행하였는데, 평일보다 짧게 했다. 그는 가족들이 예배 시간보다 일찍 교회에 도착할 수 있도록 신중을 다하였다. 오전 설교가 끝나면 점심 식사를 하기 전까지 설교 요약을 읽어 보고 묵상하였다. 점심 식사가 끝나면, 그는 오전 설교를 가족들에게 복습시켜 주었고, 다시 저녁 예배에 참석하였다. 저녁 설교가 끝나면, 그는 상당 시간 은밀하게 하나님과 교제하였고, 저녁 시간의 대부분은 그날 들은 설교를 복습하고 가족들을 불러 모아 설교를 통해서 배운 바를 나누는 데 사용하였다.” (pp 265-270)

 

교회 중심의 영성 형성: 신비주의 영성과 다르다

 

청교도 영성은 신비주의 영성과 현저하게 달랐다. 신비주의 영성은 교회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과 집례되는 성찬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았으며, 그것을 중심으로 영성을 형성하지도 않았다. 거기에도 물론 설교와 성찬이 있다. 그러나 신비주의 영성은 개인적인 묵상과 관상을 통해서 더 깊고도 풍성한 영성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만 강조할 뿐이다.

 

신비주의 영성이 설교를 강조하지 않는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개인적인 묵상이나 관상을 통해서 직접 하나님을 만나고 연합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가르침이나 설교는 직접 하나님과 연합하는 데 장애물이 된다고 생각한다. 휴즈 올리펀트 올드, “신비주의는 다른 어떤 수단을 거치지 않고 직접 하나님을 만나고자 몸부림친다. 그래서 성경을 강조하는 것도 신비주의가 추구하는 바에는 걸림돌이 될 뿐이다. 신비주의에서는 성경, 성례, 교회의 사역 등과 같은 모든 것이 너무나 자주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교통을 받해하는 장애물로 취급된다.”

 

주의 만찬에 관해서는 그들이 좋아하는 상징적인 요소가 많고, 언어가 아니라 감각으로 체험하고 감정으로 느끼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어느 정도 관심도 보이고 때로는 중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한다. 그러나 청교도들처럼 영성 형성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도날드 블로쇠, “기독교 신비주의자들은 일반적인 신비주의들과는 달리 믿음의 삶에서 성례나 예식의 중요성을 언제나 인정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들이 없어도 되는 것들로 간주하거나 꼭 필요하지는 않는 것들로 생각하였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성례가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적인 형체보다 훨씬 더 영적 성장을 방해하는 것이라고 간주하였다. 신비주의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는 것을 뛰어넘어 보이지 않는 실체를 붙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비주의 경향을 나타내는 공동생활 형제단의 창시자인 게르트 그로테에 따르면, 성경이나 성례처럼 눈에 보이는 것들을 과감하게 떨쳐 버릴 수 있는 용감한 영혼이야말로 믿음의 완전을 향하여 진보를 이룰 수 있다.”

 

신비주의의 이러한 특징은 리차드 포스터의 <영적 성장과 훈련>이라는 책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특히 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영성 훈련과 관련이 있는 예배라는 세부 항목에서 포스터는 설교나 성찬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다만 영적 지도라는 항목에서 설교에 대하여 단 한 문장으로 설명하고 지나가는데, 이 설명조차 신비주의 영성의 특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는 말한다. “설교는 영적 지도의 한 가지 형태이다.”

 

과거나 현재나 신비주의 영성은 종교개혁으로 회복된 개신교회가 늘 중요하게 여겼던 말씀 선포와 성찬에 대한 강조와 구체적인 훈련이 결여된, 전혀 다른 영성 형성 방법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설교만 강조하고 개인적인 묵상 훈련이나 영성 생활을 구체적으로 가르치지 못하는 개신교회의 메마른 영성도 경계해야 하지만, 개인적인 묵상 훈련이나 영성 생활에만 치중하고 하나님께서 그토록 소중하게 여기시는 설교나 주의 만찬을 무시하는 신비주의 영성도 경계해야 한다. - 이태복, 영성 이렇게 형성하라, pp 276-279

 


출처 : 청교도 아카데미
글쓴이 : 강대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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