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롬7:6) / 마틴 루터

강대식 2012. 3. 16. 12:00

율법 조문의 묵은 것은 덕스러운 삶이 무엇인가를 규정하는 모든 가르침을 말한다.

은혜의 성령 없이 그런 것을 받아들여서 마음 깊이 새긴다면,

그것은 공허한 문자요 영혼을 죽이는 것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어거스틴은 <영과 문자에 관하여> 4장에서 말했다.

“우리에게 절제 있고 덕스러운 삶을 영위하라고 명하는 가르침은 문자이다.

이 문자와 아울러 그것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성령이 없다면, 그 문자는 사람을 죽인다.”

 

많은 것들을 읽고 많은 책을 쓴 아주 박식한 사람이 가장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박식한 자들이 책을 통해서 가르치는 내용을 자발적으로 기꺼이 행하는 자들이 가장 훌륭한 그리스도인들이다.

 

하지만 성령으로 말미암아 사랑을 소유하고 있을 때에만 사람들은 이러한 일들을 자발적으로 기꺼이 행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많은 책들이 출판되어서 사람들이 인간으로서는 아주 유식하게 되었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는 아주 무식하게 되어 버린 우리시대를 경계해야 한다.

 

복음을 성령의 말씀, 영적인 가르침, 은혜의 말씀, 구약의 말씀이 예언한 것의 드러남, 감춰진 지혜 등등으로 부르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사람들이 묻는다면, 우리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인데, 복음은 우리가 어디에서 그리고 어디로부터 은혜와 사랑을 얻을 수 있는지를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복음은 율법(구약 성경)이 약속한 예수 그리스도를 제시한다. 율법은 우리에게 사랑을 가지라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으라고 명하지만, 복음은 우리에게 이 두 가지를 제시하고 나눠준다. 율법은 사람의 힘으로 지킬 수 없고, 그것은 오직 성령을 우리 마음 속에 부어주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서만 가능하다. 그러므로 복음을 좋은 소식 이외의 다른 그 무엇으로 해석하는 자들은 복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 마틴 루터, 『로마서 주석』, p 1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