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에서 경건을 강조한 칼뱅/ 조엘 비키
칼뱅은 참된 종교를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교제로 이해했다. 칼뱅은 하나님의 편에서 인간에게로 나아가는 교제의 움직임을 계시로, 인간의 편에서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교제의 움직임을 경건으로 불렀다. 그리고 이 경건에는 그분을 향한 우리의 순종과 응답이 담겨 있었다. 경건은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믿음으로 작용하며, 그 속에는 하나님을 어린아이처럼 신뢰하면서 겸손히 경배하는 일, 그분을 신실하게 경외하며 변함없이 사랑하는 일 등의 헌신적인 섬김이 포함되어 있었다. 칼뱅은 자신의 설교에서, 종종 이런 섬김을 격려하는 데 적용의 목표를 두었다.
칼뱅에게 설교자의 목표는 경건을 장려하는 데 있었다. 설교자는 회중 스스로가 경건을 만들어 낼 수 없음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회중은 성령님의 은혜로 경건을 받아들일 뿐, 경건의 창조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칼뱅은 성령님이 말씀과 함께 임하셔서 회중에게 경건한 은혜의 은사들을 베풀어 주신다고 보았다.
칼뱅의 경건은 그의 신학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분리될 수 없다.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은 경건한 섬김을 낳으며, 그런 섬김의 목표는 단순히 개인이 구원받는 수준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데 있다. 그러므로 회중이 하나님의 영광을 받들지 않는 곳에서는 참된 경건이 존재한다고 할 수 없다. 이같이 하나님을 알 때, 신자들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절제와 순종, 사랑으로 그분께 응답하게 된다.
칼뱅에 따르면, 율법은 우리에게 사랑을 명령하며, 생각과 말, 행동으로 그 사상을 어떻게 나타낼 것인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에 따라 우리는 절제된 삶을 통해 하나님께 순종하며, 그분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게 된다. 실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다. 그러므로 칼뱅에게 참된 경건은 사랑과 율법이 서로 관계 맺는 가운데 나타나며, 이 일은 하나님을 향한 수직적인 측면과 인간을 향한 수평적인 측면 모두에서 이루어진다.
칼뱅의 경건은 ‘초월적인 경건’으로 언급될 수 있다. 이 경건은 은혜에 기초한 것이기에 피조물인 우리의 수준을 초월하는 성격을 지니지만, 동시에 그 속에는 우리 자신도 포함되어 있다. 이는 바로 우리가 그 신실함을 드러내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경건의 주체인 우리는 결코 자신의 번영을 우선시해서는 안 된다. 전반적으로 칼뱅의 경건은 늘 하나님을 향해 나아간다. 하나님이 베푸시는 선을 통해 우리가 얻는 유익은 경건의 주된 목적을 받들 때 따라오는 부산물일 뿐이다. 그 주된 목적은 곧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데 있다.
- 조엘 비키, 「설교에 관하여」, pp 169-171
'성경도 아카데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앙의 체험’은 성령께서 말씀을 통해 이끌어 내시는 창조적인 결과물이다/칼뱅/ 조엘 비키 (0) | 2021.08.02 |
---|---|
칼뱅과 체험, 체험은 성경의 가르침과 조화를 이룬다/ 조엘 비키 (0) | 2021.07.20 |
종교개혁자들은 아우구스티누스를 거쳐 신약성경으로 교부들의 설교로 돌아갔다/조엘 비키 (0) | 2021.07.19 |
환하게 타오르는 빛, 츠빙글리, 불링거, 외콜람파디우스/ 조엘 비키 (0) | 2021.07.19 |
우리는 오직 쇠퇴함을 통해서만 성장하게 된다/ 조엘 비키 (0) | 2021.07.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