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과 진리”의 예배는 성경의 진리를 밝히고 깨달아 믿음으로 동의하며 고백하는 예배이다/ 장대선
신앙에서 유일한 권위이자 최고 최종의 권위는 어떤 사람이나 조직, 기구가 하니라 오직 하나님께 있다. 그 실천은 모든 신앙의 문제를 오직 성경의 권위에 최후 또는 최고로 호소하는 것이다. 교황주의와 같이 사람에게 특별한 권위를 두는 것을 배제하는 것으로, 가시적인 권위를 향하지 않는다. 교황주의에서는 모든 신앙의 실천이 가시적인 것에 대한 신앙 행위로 채워지는 데 반해, 참된 종교개혁의 신앙은 성경의 진리 가운데서 영이신 하나님에 대한 신앙으로 점철된다.
참된 신앙은 영이신 하나님 외에 어떤 사람이나 가시적 대상에 권위를 두지 않고,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께만 권위를 두는 것이다. 영이신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제사”와 같은 가시적인 방법이 아니라, 복음의 진리로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요4:24)하는 것이 마땅하다. 흔히 영적이라는 말을 신비적이거나 비가시적인 것으로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영적이라는 말은 진리, 곧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진리와 연관된다. 그러므로 영이신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에서 중요한 것은 성경의 진리를 온전히 드러내고 고백하며 찬양하는 태도이다. “영과 진리”의 예배는 하나님 말씀인 성경의 진리를 밝히고 깨달아 믿음으로 동의하며 고백하는 가운데 이뤄지는 것(진리의 지식)이다. 감정을 자극하는 음악적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고, 성경의 진리에 깊이 동의하고 고백함을 밝히 드러내는 것이다.
말씀하시는 분이 하나님임을 식별하는 것은 인간의 이해력을 초월하는 일이다. 1559년판 신앙고백 첫째 항 후반부는 “이 교리는 그의 권위를 인간에게서 얻은 것도 천사에게서 얻은 것도 아니며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얻은 것이기 때문에 우리들은 하나님만이 그의 선택하시는 사람들에게 그의 교리의 명확성을 주시며,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저들의 심령 속에 이것을 인쳐주심을 믿는다”고 말한다. 우리의 신앙에서 “신비”란, 이처럼 성령으로 말미암아 교리를 명확하게 습득하는 것을 말한다.
영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총이란, 그 본질이 가시적인데 있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교훈(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교리”이다) 깨우쳐주시는 성령님의 사역처럼 가시적이지 않는 것에 있다. 그러므로 참된 신앙은 항상 부귀영화와 같이 가시적이고 현상적인 것을 추구하지 않고, 진리의 교훈과 같이 풍성하고 충만하지만 결코 가시적으로 표현하여 드러낼 수 없는 무한한 은헤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에 반해 로마 카톨릭의 교황주의는 철저히 모든 것을 현세적이고 가시적인 방식으로 바꾸어버렸다. 오늘날 물질적이고 현실적인 것을 추구하는 기독교의 모습 역시 신앙고백이 반대하는 교황주의와 같은 모습이지, 결코 영이신 하나님에 대한 진리를 추구하는 신앙의 모습은 아닌 것이다.
- 장대선, 『프랑스 신앙고백 해설』, pp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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